[회원칼럼-이성철 한국일보 콘텐츠본부장] 야당도 국민의 공포를 덜어줄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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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15회 작성일 2022-10-20 09:31본문
경제-안보 복합위기에 국민들 공포
이재명 대표 '친일'공세 과연 타당한가
야당도 국민불안 덜어줄 책임 느껴야
민주당 국방위원들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국민의힘 친일사관 및 한미일연합훈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후덕, 설훈, 송옥주, 송갑석, 김병주 의원. 오대근 기자
점점 거세지는 북핵 위협 앞에서, 군사영역까지 포함해 한미일 3국의 긴밀한 협조가 필수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합동훈련에 대한 문제제기는 할 만하다고 본다. 현 한미 동맹 전력만으론 북핵 대응에 불충분한 것인지, 신냉전의 현 국제정세로 볼 때 3국의 군사적 밀착은 동북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를 공고화해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을 훨씬 멀어지게 하는 건 아닌지, 다른 곳도 아니고 일본 자위대와 손잡는 것에 대해 국민정서는 충분히 헤아려 보았는지 등등.
북한이 '레드라인' 앞에 섰다 해도 우리 정도 성숙한 사회라면 이 정도 논쟁은 해야 한다. 안보보다 더 중요한 건 없기에, 다른 어떤 의제보다 훨씬 진지하고 전문적인 토론이 필요하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는 더 그래야 하고, 특히 야당이라면 질문을 던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저렇게 묻지 않았다. 그냥 '친일'로 가버렸다.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것과, 이걸 친일로 규정하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순간 상대방은 다른 프레임으로 역공하게 되어 있다. 민주당이 '친일 프레임'을 걸자 국민의힘은 '조국과 죽창가'를 소환하며 '종북 프레임'으로 맞섰고, 지금은 뜬금없는 식민사관 공방까지 진행 중이다. 이 대표가 합동훈련을 '친일 국방'으로 선언한 그날(7일) 이후 약 일주일간 온갖 프레임이 뒤엉켜 난타전을 벌이는 사이 우리나라의 북핵 대응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군사적, 전략적, 국제정치적 토론은 사라져버렸다.
대체 어떻게 하면 중대 국가안보정책 공방이 친일에 종북, 일제와 구한말 역사논쟁으로까지 번질 수 있나.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대체 어떤 신묘한 능력을 갖고 있길래, 진지한 토론장도 금세 진흙탕으로 만드는 건가.
지금 국민들은 복합적 공포에 휩싸여 있다. 만에 하나라도 푸틴이 핵버튼을 누르는 건 아닐까. 그러면 정말 '아마겟돈'이 벌어지는 건가. 설령 푸틴의 핵카드가 소규모 전술핵시위 정도라 해도 핵사용의 봉인이 이렇게 풀린다면, 그것 자체가 북한의 오판을 고무시킬 수 있지 않나. 이젠 북한이 남한을 향해서도 공공연히 핵위협을 가하고 있는데,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경제도 매일매일이 공포다. 지금은 인플레가 공포지만, 이 인플레가 끝날 무렵이면 더 크고 센 놈(경기침체)이 올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아직 최악은 오지도 않았다"고 경고하지 않았나. 수없이 북의 도발을 겪어 왔고, 환란과 리먼 사태까지 경험했지만, 지금처럼 안보-경제위기가 복합적으로 맞물려 다가온 적은 없었다. 과거엔 국제공조를 통해 안보위기도 경제위기도 돌파했지만 지금은 그때의 미국이 아니고 그때의 중국이 아니며, 그때의 북한도 아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더 두려운 건데, 유독 정치만 일말의 공포, 한 줌의 긴장도 못 느끼는 것 같다.
국정운영에 무한책임을 지는 건 정부여당이지만, 국민의 공포감을 덜어줄 책임은 야당에게도 있다. 그런데 민주당은 안보공포, 경제공포를 느끼는 국민들을 어떻게 안심시켰던가. 불과 5개월 전만 해도 집권당이었고, 여전히 170석을 가진 슈퍼야당인데, 이 안보-경제 복합위기 상황에서 실효적 대안과 처방을 내린 적이 있기는 한가. 한미일 합동훈련을 '친일'로 몰고간 것이 안보 위협을 느끼는 일반 국민들에게 과연 어떤 메시지로 전달될까.
친일과 종북서사는 보통의 국민들에게는 더 이상 어떤 공감도 주지 못한다. 이 진흙탕 코미디의 주역은 여야 모두이지만, 시작은 분명 '친일' 공격이었다. 대통령 지지율만큼이나, 국민의힘 지지율만큼이나, 민주당 지지율이 바닥인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 싶다.
원문보기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01222410003221?di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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