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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백기철 한겨레 편집인] 노태우가 혀를 찰 윤 대통령 ‘독불장군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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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40회 작성일 2022-10-1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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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시절 세계는 더한 격동의 시기였고, 대통령은 외교를 모르는 군 출신인데다 정국은 여소야대였다. 윤석열 대통령 처지와 비슷하다. 노태우는 능력 있는 참모들에게 권한을 주어 북방외교를 개척했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남북통일 방안을 마련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백기철 ㅣ편집인며칠 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적들과 대화할 내용도 없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고 한 걸 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김 위원장이 말한 적은 미국일까 남한일까? 둘 다일 테지만 미국을 더 염두에 뒀을 것이다. 대화 않겠다고 콕 집어 말하니 역설적으로 언젠가는 대화하고 싶다는 걸로 비치기도 한다. ‘적’ 운운한 건 국가원수의 말치고는 너무 가볍고 삭막하다.


최근 한반도 상황은 2017년 북핵 위기의 데자뷔다. 5년 전엔 김정은과 트럼프가 막말을 주고받는 와중에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에 이어 6차 핵실험이 이어졌다. 그해 9월 미국은 B-1B 폭격기 편대를 북한 영공 직전까지 들여보내 북한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지금 상황은 어느 정도 예고된 터다. 변덕스러운 트럼프와 담판이 무산되면서 김정은의 강경 회귀는 불을 보듯 뻔했다. 위기는 되풀이되지만 내용은 악화일로다. 이젠 북한이 한·미·일을 동시에 겨누겠다고 한다. 더 우려스러운 건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대결 격화로 신냉전이 현실화하면서 북·중·러와 한·미·일 대결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는 점이다.


북핵 문제는 현재로선 북한의 시간이다. 1년일지 5년일지 10년, 20년일지 알 수 없지만 북한이 핵을 쥐고 흔들어대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 시간도 언젠가 멈춘다. 지금 북한의 나라 꼴을 보라. 핵·미사일 말고 내세울 게 뭐가 있나. 인민을 제대로 먹여 살리지 못하고 군비로 호들갑을 떠는 나라가 어찌 됐는지는 소련을 보면 알 수 있다. 북한은 귀중한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된다.


김정은 말대로 당분간 대화는 어려울 것 같다. 북한 최고 지도자가 이 정도 말했으면 대화는 상당 기간 없다고 봐야 한다. 현재로선 상황을 관리하며 기회를 보는 수밖에 없다. 특히 주변 강대국들이 크게 출렁이는 만큼 외교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지킨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져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북한의 핵놀음에 맞서 한-미 동맹 강화, 한·미·일 연합방위능력 제고로 대처하는 걸 뭐라 하기 어렵다. 지금은 북핵에 대한 모든 옵션을 원점에서 저울질할 때다. 정부가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대처한다면 힘을 실어줘야 한다.


다만 현 정부가 군사 대응 이외에 외교적 공간을 열어두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른바 ‘담대한 구상’이라는, 아니면 말고 식의 미끼상품만 내놓고 대결로 치닫고 있다. 미국 일변도, 일본과 잘 지내자고 할 뿐 그 이외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외교의 근본에 대한 천착,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찾기 어렵다. 마치 한 방향으로만 달리는 경주마 같다.


야당도 뒷다리만 잡고 있을 때는 아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거대 야당의 사령탑답게 좀 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일 군사협력 강화에 대한 근원적 문제제기는 중요하지만 사태의 본질은 아니다. 북한이 남한으로 전술핵을 쏘겠다며 전쟁연습을 해대는 상황이다. 북한에 자제할 것을 엄중히 경고하고 다양한 옵션을 검토해야 한다. 평화와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상상력 있는 방안을 진지하게 제시해야 한다.


엇보다 걱정스러운 건 윤 대통령의 독불장군식 태도다. 초당적 외교 기반을 갖춰도 모자랄 판에 대통령은 거꾸로 간다. 이른바 ‘이×× 논란’은 뭉개고 외교부 장관 해임안은 한마디로 퉁치더니 ‘외교 참사’라는 비판엔 뭘 ‘거양’했다고 한다. 이게 나라 밖 대란에 대처하는 대통령의 자세인가.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조선은 일본 침략 없이 스스로 무너졌다는 식민사관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일본이 가르쳐준 대로 ‘이씨 조선’은 비하하고 일본은 떠받드는, 일본과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보수 주류, 기득권 주류의 시대착오적 인식이다. 초당적 외교에 앞장서야 할 대통령과 비대위원장이 저러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외교에 초당적 대처가 있었냐고 하면 근래에 드물었던 건 사실이다. 굳이 따지자면 노태우와 김대중 시절 정도였다. 노태우 때 세계는 더한 격동의 시대였고, 대통령은 외교를 모르는 군 출신인데다 정국은 여소야대였다. 윤 대통령 처지와 비슷하다. 노태우는 능력 있는 참모들에게 권한을 주어 북방외교를 개척했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남북통일 방안을 마련했다.


노태우 이후 보수 세력이 무언가 창의적으로 나라 외교를 개척한 걸 본 적이 없다. 김영삼·이명박·박근혜 때 제대로 된 외교가 있었나. 반북 대결주의와 친미 일색뿐이었다. 북핵을 저지하지도 못했다. 윤 대통령에게 외교에 관한 한 노태우한테 배우라고 하면 너무 어려운 주문일까.


원문보기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623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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