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이중근 경향신문 논설주간] 감사원의 폭주를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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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79회 작성일 2022-10-06 09:17본문
감사원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놓고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서면 조사하겠다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 측이 반발하자, 감사원은 1993년 노태우, 1998년 김영삼 전 대통령도 감사원 질문서를 받아 답변했노라고 해명했다. 두 사건을 직접 취재한 기자로서 감사원의 터무니없는 궤변과 퇴행이 씁쓸하다.
당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진실을 밝히는 데 핵심적이고도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노태우는 대규모 군수비리인 율곡사업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았고, 김영삼은 외환위기의 책임 문제가 불거져 있었다. 두 사안 모두 양 대통령이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었기에 조사는 피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진상을 밝히라는 시민들의 요구가 거셌다. 그렇다면 이번 감사는? 감사원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직후부터 전 정권 사람 찍어내기 감사를 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를 수개월째 털고 있다. 서해 공무원 피살을 놓고도 국방부와 해양경찰청, 국가정보원 등 9개 기관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 감사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한다. 그리고 서해 공무원 피살의 진상을 밝히는 데 문 전 대통령 조사가 핵심일까. 오히려 문 전 대통령을 딱 겨냥해 놓고 하나씩 절차를 밟아온 감사라는 느낌이 든다.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시간의 문제였을 뿐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감사원이 본류를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감사원의 기능은 크게 회계감사와 직무감찰로 나뉜다. 회계감사는 나랏돈이 새는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보면서 업무의 효율성을 따진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데, 이 부분에서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는 감사관이 많다. 반면 직무감찰은 공무원의 비위를 캐는 것이다. 둘의 비중을 따지자면 70%가 회계감사이고, 30%가 직무감찰이다. 선진국 감사원들은 대부분 회계감사 기능만 갖고 있다(우리 감사원도 원래는 회계감사를 하는 심계원으로 출발했다가 1963년 직무감찰기관이었던 감찰위원회와 통합됐다). 그런데 지금 감사원은 회계감사가 아닌 직무감찰에 집중하고 있다. 국정의 효율성을 따져 시스템을 개선하기보다 전 정부 허물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감사원이 진정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다면, 감사의 칼끝은 청와대 이전 과정부터 겨누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윤석열 감사원은 국가가 아니라 정권에 복무하고 있다.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감사원 조사 방침은 새로운 의심의 지점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수사는 그 사람의 행동의 적법성을 따지는 반면, 감사는 그 사람이 직무와 관련한 행위의 적절성을 판단한다. 감사원이 정말 편견 없이 독립적으로 감사를 진행한다면, 수사와 감사는 방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게 없다. 그런데 감사원이 처음부터 문 전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검찰의 본격 조사에 앞서 사전 정지작업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검찰이 보다 편하게 문 전 대통령을 부를 수 있도록 명분을 축적하는 일도 된다. 이런 의심은 감사원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감사원이 검찰의 하청기관으로 전락한 게 아니냐는 강력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문제는 이런 ‘감사원 파괴’ 행위가 한 사람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유병호 현 사무총장이다. 유 총장은 문재인 정부 당시 최재형 감사원장(현 국민의힘 의원)의 지시로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감사를 지휘하던 중 좌천됐다. 그러다 현 정권이 들어선 직후 바로 두 계급을 뛰어넘어 사무처를 지휘하는 총장 자리에 올랐다. 문재인 정권이 임명한 최재해 감사원장을 제치고 감사원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 감사원 내부 회의에서 간부들에게 “잘할 수 있는 사건에 집중하자. 고래·대어를 잡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 정권의 비리, 그것도 대형 사건을 캐내라고 노골적으로 독려한 것이다. 직무감찰로 잔뼈가 굵은 사람답다. ‘감사원의 한동훈’을 자임한 셈이다. 유병호도 차기 총선에서 최재형처럼 여당 공천을 받을 것이란 말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에서 감사원이 우리 헌정사의 한 금기의 선을 넘어서고 있다. 좀처럼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지 않는 감사원 직원들 사이에서 이상 조짐이 감지된다. “사무총장을 견제할 수 있는 TF를 구성하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감사원의 일탈이 더 이상 용납되어선 안 된다. 감사원 사무총장의 국회 청문회는 당연하고 여야 합의 임명 등 보완책도 강구되어야 한다.
원문보기 :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1005030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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