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권혁순 강원일보 논설주간] 이태원 참사에 강원도가 떠 오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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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94회 작성일 2022-12-30 09:35본문
주민들의 응급의료시설 평균 거리 22.32㎞
강원도, 전국 평균 11.89㎞보다 2배 정도 멀어
긴급한 구호 못 받는 지역이 미래의 땅인가
또 한해가 저문다. 반성과 후회가 따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속에서 국민의 삶은 고달 펐다. 역사는 흐르지만 후세에서 반드시 기억된다. 대한민국의 2022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2022년의 화두는 단연코 이태원 핼러윈 참사(이하 이태원 참사)였다. 10월 29일 밤 10시 15분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일어나 158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2014년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사태 이후 역대 최대 참사다. 꿈 많은 청년들이 도심 한 복판에서 비명횡사 했는데도 진상 규명은 지지부진하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에게는 그런 청천벽력이 없었다. 이태원 참사는 세계 10위 경제대국 한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믿기 어려운 치욕적인 사건이다.
안전은 곧 국격(國格)의 가늠자다.‘한국 속 작은 외국’이란 이태원에서 벌어진 이번 참사는 대한민국의 안전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우리는 다시는 세월호를 겪지 않겠다던 다짐에도 또다시 튼튼한 팔다리를 맥없이 늘어뜨린 채 심폐소생술을 받는 젊은이들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익숙한 무기력감이 부끄럽고 참담하다. 고달 펐던 대한민국의 역사 현장에 2022년 강원도의 사정이 오버랩 되면서 가슴은 또 답답해진다. 산이 높아 물이 깊다는 것은 아름다운 경관과 더불어 강원도 사람들에게는 오지의 소외감을 함께 보존해 주었다. 무공해 청정지역이라는 자부심 이면에는 낙후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미래의 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고 감추어지지 않는다. 냉전의 바다로 고립되고 휴전선으로 양분된 강원도의 모습을 일컬어‘안보의 첨단도’라고 미화해 보았지만 그것이 강원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는 없다. 여기에다 주민들의 삶은 과거 수십년 전에 비해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건강상의 문제로 병원을 찾기도 힘들다. 주민들이 병원을 가려면 평균적으로 무려 22㎞나 가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토교통부 국토정보지리원이 지난해 8월 발간한 2020년 국토모니터링 조사 결과에서 나타났다. 주민들의 응급의료시설 평균 접근성(거리)은 22.32㎞로 17개 시·도 중 가장 멀었다. 특히 전국 평균 11.89㎞보다 2배 정도 떨어져 있었고 2.94㎞에 불과한 서울뿐만 아니라 지역세가 비슷한 전북 14.77㎞보다도 한참 멀리 위치했다. 응급 환자가 생기면 골든타임을 놓쳐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는 지역을 아껴놓은 미래의 땅이라고 할 수 있겠나. 이태원 참사에 강원도를 떠 올리는 지나친 비약과 상상력이 필자 혼자만의 생각이었으면 좋겠다.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긴급한 구호를 받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권리에 속하는 문제다. 2017년 강원도 내 모성 사망비(출생아 10만명당 숨지는 산모 수)는 33.5명으로 2009년 이후 가장 높게 나타났다. 2016년 9.9명에 비해 3.4배가량 급증했다. 강원도에서 산모들은 출산 과정에서 겪는 위험으로부터 거의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다.
이 뿐인가. 2019년 기준 강원도의 치료가능 사망률은 46.73명으로 충복(46.95명)에 이어 전국 17개 시도 중 2번째로 높았다. 의료 분야가 이럴진대 다른 부문은 말할 필요가 없다. 집권 세력이 누구냐에 상관없이 그간 강원도가 희생당한 부분에 대한 정당한 보상 없이는 강원도 발전과 국가균형발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제 밥그릇 챙기기에 바빠 국가와 국민의 장래를 외면하고 있다. 새해 예산안 법정 기한내 처리는 남의 나라 얘기다. 말로만 민생을 외친다. 이들의 행태는 치유가 불가능한 고질병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일을 언제까지 계속하려 하는가? 사필귀정이라고 했다. 모든 일은 반드시 옳은 방향으로 결말이 난다는 뜻이다. 인기에 영합하는 작은 정치는 버리고 역사를 두려워하는 큰 정치를 해야 한다. 그것이 집권의 문을 여는 유일한 열쇠다.
원문보기 : http://www.kwnews.co.kr/page/view/2022121910500690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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