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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백기철 한겨레 편집인] 서훈 구속, ‘30년 빈손 외교’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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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69회 작성일 2022-12-1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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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뀌면 손바닥 뒤집듯 전 정권의 청와대 안보실장, 국가정보원장, 국방부 장관 등을 마구 잡아넣으려 달려드는 나라 꼴이야말로 지난 30여년 우리 외교 실패의 현주소다. 남북 대화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 미·일 우방들도 신뢰한다는 북한통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짓밟는 나라가 또 있는가.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2일 오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2일 오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백기철 ㅣ편집인


지난주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구속 기소는 충격적이었다. 두명의 전 정부 인사들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구속된 뒤 적부심에서 석방됐는데도 서 전 실장 영장이 발부되고 적부를 물을 틈도 주지 않고 검찰이 전격 기소했다. 고도의 외교안보 행위가 몇몇 검사와 영장 전담 판사들의 손에서 재단되는 창피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섣불리 단정하긴 어렵지만 영장 등을 통해 드러난 서 전 실장 혐의를 보면 이게 법의 잣대를 들이댈 일인지 의문이다. 희생된 이아무개씨가 월북인지 아닌지, 정부가 피살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는지 여부는 당시 대북 첩보, 남북 간 채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외교안보적 정무 판단에 속한다. 무 자르듯 법으로 따질 일이 아니다.


서 전 실장 구속이 단순히 서훈 개인에 대한 단죄일까? 검찰은 서 전 실장이 은폐를 주도했다며 개인 비리 식으로 몰아가지만 대북 관련 일이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판단을 주도할 순 있지만 혼자서 다 할 수는 없다. 결국 서훈 구속은 문재인 정권 대북정책에 대한 단죄인 셈이다. 


서훈 구속은 우리 외교를 우리 스스로 짓밟는 짓이다. 남북 대화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 미·일 우방들도 신뢰한다는 북한통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짓밟는 나라가 또 있는가.


문재인 정부 역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을 구속한 만큼 서 전 실장 구속에 불만을 터뜨리는 건 일종의 내로남불이라는 주장이 일각에 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김 전 장관은 대북 문제가 아닌 댓글 부대와 관련해 국내 정치 관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그가 박근혜 정부에서 북한이 가장 경계하는 군사 전문가라는 평을 들었던 만큼 그의 구속 역시 외교안보 자산의 손실로 볼 수 있다.


정권이 바뀌면 손바닥 뒤집듯 청와대 안보실장, 국가정보원장, 국방부 장관 등을 마구 잡아넣으려 달려드는 나라 꼴이야말로 지난 30여년 우리 외교 실패의 현주소다. 서훈 구속은 ‘30년 빈손 외교’의 상징적 사건이다.


지난 30년 남들은 통일하고 평화를 찾는데 우리는 여전히 분단의 고통과 전쟁의 위협 속에서 허송세월했다. 우리 스스로 발등을 찍고 서로의 뒷다리를 잡아온 탓이다. 북한의 광적인 핵 벼랑끝전술, 미국의 변덕과 고집 탓도 크지만 우리 내부 역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독일은 우리와 다른 길을 걸으며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뤄냈다. 독일 통일의 교훈은 1989년 동서독 통일을 전후한 때가 아니라 냉전 직후부터 꾸준히 89년이라는 운명적 시간을 준비했다는 데 있다.


독일 통일의 기반은 굳이 말하자면 ‘정-반-합 외교’다. 콘라트 아데나워의 이른바 ‘힘의 정책’, 즉 서방 중심, 동독 불인정, 경제 재건은 나라의 기본 역량을 튼튼히 쌓았다.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은 친서방 기조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평화체제를 토대로 소련·동독·동유럽과 화해하고 교류했다. 브란트 이후 기민당도 명분뿐인 ‘즉각 통일 노선’을 사실상 포기하고 평화공존을 이어갔다. 사민당과 기민당이 빠른 통일을 포기하고 공존을 모색한 것이 역설적으로 통일의 기반이 됐다.


지금 세계의 풍향은 크게 변하고 있다. 미-중 대결과 우크라이나 전쟁, 북핵의 완성 등으로 동북아와 세계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세계 정세의 대전환기인데 우리는 뭘 하고 있나.


이제는 30년 실패한 외교를 리셋해야 한다. 대체로 보수 정권이 외교정책 전환에서 좀 더 자유롭다고 하는데, 윤석열 정부에도 일말의 기대가 없지 않았다. 미국도 닉슨 때 큰 변화가 있었고 우리도 노태우 시절 외교의 큰 줄기가 바뀌었다. 또 지난 30년 보수, 진보 정부의 누적된 잘못을 극복할 때도 됐다.


그런데 서해 공무원 사건을 두고 통일부 장관이 앞장서서 진상을 밝히고 처벌해야 한다고 하는 데서부터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미, 대일 일변도 외교가 가시화됐고, 마치 대북 평화공존 정책이 친북인 양 마녀사냥식 몰이가 이어졌다. 참으로 한심하고 걱정스럽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도 북한, 중국, 일본과의 외교에서 흘러간 레퍼토리를 붙잡고 있는 것 아닌가. 중국은 크게 변했고 북한은 대놓고 핵으로 남녘 동포를 겨누고 있다. 일본을 언제까지 경원시만 할 순 없다. 외교의 판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는 만큼 버릴 건 버리고 채택할 건 새로 채택해야 한다.


독일이 그랬듯 우리도 이승만과 박정희, 김대중과 노무현의 외교를 정-반-합으로 이어 계승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외교도 새 길을 열 수 있다. 최소한 정권이 바뀌었다고 전 정권 외교안보 인사들을 마구잡이로 단죄하려 드는 아마추어 행태에선 벗어나야 한다. 


원문보기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715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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