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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칼럼-신종수 국민일보 편집인] 개헌론이 공허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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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0회 작성일 2024-07-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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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개헌할 때 됐다고 하나
개헌하면 정말 정치 좋아질까

제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와 성정

거시적 사회구조 이어 미시적
심리구조도 민주화돼야 한다


내기 골프에 ‘조폭’이란 것이 있다. 동반자들끼리 골고루 돈을 나눠 갖는 ‘뽑기’나 ‘스킨스’와 달리 조폭 게임은 버디를 하면 다른 사람 돈을 모두 뺏어오는 방식이다. 실수라도 해서 더블이나 트리플을 범하면 딴 돈의 절반이나 전부를 내놓게 한 뒤 1등이 다 갖는다. 일종의 승자독식 제도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 관계가 목적이라면 조폭 게임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접대골프를 하면서 이 내기를 했다간 영업을 망칠 가능성이 높다. 조폭들이 좋아해서 이 명칭이 붙었는지, 게임 방식이 조폭 같아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혹시 승자독식의 이 내기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성격을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정치인 중에도 조폭 게임을 유난히 좋아한다는 이가 있는데, 정치권 내에서나 유권자들 사이에서 평판이 별로다.

대통령제는 승자독식 제도다. 대선 승리를 위해 사생결단의 극한 대결을 벌일 수밖에 없다. 대화와 타협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개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지난주 제헌절 때도 개헌 필요성이 제기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2026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을 목표로 개헌 추진 방침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공식 대화를, 여야에는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1987년 개헌 이후 37년 묵은 헌법을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는 주장의 배경에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정치 양극화가 있다. 제왕적 대통령이 얼마나 많은 권한을 갖고 있는지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겠다. 예를 하나 들면,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정부 요직 인사권만 7000개 정도 된다고 한다.

정치 양극화 문제는 여야 간에는 물론 지지자들까지 서로 적대시하고 증오하는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 크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총으로 테러를 당한 것도 상대를 적으로 생각하고 악마화하는 정치 양극화의 산물이다. 나쁜 정치는 지지자들의 심성까지 나쁘게 만든다. 정치 양극화가 계속되는 한 정치인들 간의 적대감은 유권자들에게 전이돼 테러는 또 일어날 것이다.

정치 양극화 중에서도 요즘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강성 지지자들만 바라보는 정치다. 일반 시민이나 중도층이 뭐라고 하든 말든 강성 지지자들이 좋아하는 언행을 하는 정치인이 부쩍 많아졌다. 이들이 활개치는 정치는 민주주의의 퇴행과 위기를 불러온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신중하고 사려 깊은 사람은 정치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 품위와 실력을 갖추고 대화와 타협, 조정을 잘하는 정치인이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강성 지지자들의 환심을 사려는 극렬 정치인들이 유튜브나 팟캐스트, 종편 같은 데서 떠들어댄다. 이런 여론정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에 가깝다. 일반 신문이나 방송에서 아무리 문제점을 지적해도 강성 정치인과 강성 지지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치 조폭들이, 일반 시민들이 눈살을 찌푸리든 말든 보스와 조직을 위해 행동하는 것과 비슷하다.

개헌 논의는 필요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공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통령 4년 중임제, 분권형 대통령제,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등 어떤 것이든 권력 구조만 바꾼다고 우리 정치가 근본적으로 달라질까. 그동안 우리는 수많은 정치 개혁과 입법, 제도 개선을 해왔다. 하지만 지금 우리 정치는 어떤가. 결국 민주주의의 완성은 헌법이나 제도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히틀러도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를 보장한 바이마르 헌법에 따라 민주적인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됐다.

결국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이 중요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누적적이고 점진적인 개선 논의와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제도만 바꾼다고 정치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마음가짐, 성정이 중요하다. 지금 국회 법사위에서 벌어지는 일만 봐도 국회 상임위 제도나 법률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누가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종전에 칼럼에서 썼던 얘기를 또 해야겠다. 우리 사회는 거시적인 사회구조는 민주화됐지만 미시적인 심리구조는 아직 민주화가 되지 않았다. 거시적인 사회구조와 함께 미시적인 심리구조도 민주화될 때 우리 민주주의는 완성될 것이다.

원문보기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21632715&code=11171414&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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