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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 일본의 양심과 지성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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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68회 작성일 2023-03-22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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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대기자

이하경 대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모든 카드를 다 썼다. 개문발차(開門發車)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일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피해자 지원재단을 통한 

윤석열 대통령은 모든 카드를 다 썼다. 개문발차(開門發車)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일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피해자 지원재단을 통한 3자 변제’라는 해법을 서둘러 제시했다. 한·일 관계 최대 장애물의 해결 실마리가 마련됐고, 정상의 셔틀 외교가 12년 만에 복원됐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가 해제됐고,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완전 정상화가가 선언됐다.

그런데 핵심인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기시다 총리의 직접 사과는 없었다. 피고 기업도 배상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에선 “완승”이라지만 한국에선 “굴욕적인 협상”이라고 한다. 한국 대통령은 지뢰밭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 참여 좌절
전승국 아닌 옛 일본 식민지 취급
한일협정으로도 다시 상처 받아
윤 대통령 용기에 일본 화답해야

일본은 한국인이 왜 분노하는지 알고 있는가. 한국은 카이로선언문에 적힌 대로 ‘노예 상태’로 36년을 지냈다. 그래서 패전국인 일본을 상대로 한 연합국 강화회의 정식 멤버로 참가하려고 했다. 임시정부가 2차대전 이전부터 일본과 전쟁 상태에 있었고, 중국에 일본과 싸운 한국인 사단이 있었으며, 상해 임시정부가 선전포고 한 사실을 미국에 알렸다. 지성이면 감천이었을까. 장면 주미대사는 1951년 1월 26일 미 국무부 장관 고문 덜레스로부터 “한국의 참가를 지지할 것”이라는 답변을 얻어냈다. 그러나 영국과 일본의 반대로 참가 48개국에서 제외됐다. 부당하고 원통한 일이었다.

일본은 1951년 3월 27일 강화회의 초안을 받자마자 치밀하게 준비해 4월 4일 미국에 의견서를 전달했다. 전쟁 중인 한국에선 문서가 실무자 책상 서랍에서 잠자고 있었다.  홍진기 법무부 법무국장은 4월 7일 일본 신문에서 한일관계 조항이 빠져있는 초안을 확인했다. 맥아더 최고사령관만 믿고 소극적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을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참가 의사와 귀속재산 처리 문제에 대한 입장을 담은 의견서가 5월 초 전달됐지만 일본보다 한 달 늦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인된 강화조약은 한국을 대만과 함께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난 지역’으로 분류했다. 옛 식민지라는 뜻이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받고, 사과와 법적 배상을 받으려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한국이 일본의 일부였기 때문에 조선인 강제동원이 ‘합법’이 돼버린 사실이다. 심각한 상처와 모욕이었다. 사실 미국은 일본과 전쟁 중이던 1942년부터 국무부 극동반을 운영하면서 패전국 일본을 국제사회에 복귀시키는 ‘관대한 평화(soft peace)’를 준비하고 있었다. 일본에 부담이 될 한국의 요구를 들어줄 여지는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조약 조인 한 달 뒤인  1951년 10월 두 나라는 한일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초기에 일본은 자국민 50만 명이 한국에 두고 간 재산에 관한 권리, 역(逆)청구권을 제기했다. 조선 내 일본 재산은 85%였다. 일본 측의 구보타 전권대표가 “식민지 시절 유익한 일을 했으므로 일본에도 청구권이 있다”고 하자 한국 측 홍진기 대표는 “전통국제법에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의 권리가 추가돼야 한다”는 ‘해방의 논리’로 반박했다. 일본은 구보타 망언을 취소하고 역청구권 주장도 거둬들였다.

13년8개월 만인 1965년 6월 22일 협상은 타결됐다. 일본은 한국에 무상원조 3억 달러, 유상원조 2억 달러를 주기로 했다. 이 돈은 한국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식민 지배에 대해서는 “이미 무효”로 정리했다. 한국은 “처음부터 무효”로 해석했다. 일본은 “지금은 무효지만 당시에는 유효하고 합법적이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없었고, 한국인에게는 상처가 하나 더 추가됐다. 이러니 “식민 지배는 불법이며 일본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2018년 대법원 판결은 일본에 ‘65년 체제’를 뒤흔드는 쇼크였던 것이다. 일본이 강제징용 문제를 회피하는 이유다.

그래도 ‘65년 체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진화했다. 일본은 50여 차례 사과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에서는 “일본은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고 했다.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부당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일본 양심과 지성의 힘이다.

윤 대통령은 상처받은 국민 정서와 충돌하면서까지 양국관계를 위해 용기있게 결단했다. 이제 일본이 화답할  차례다. 윤석열 해법은 문희상 안과 유사하지만 국회 입법 과정을 거치지 않아 소송의 대상이 된다. 피해자의 불복 소송이 벌써 시작됐다. 법원 판결 하나로 무너질 수 있다. 윤 대통령은 피해자를 설득하고 위로해야 한다. 면전에서 욕먹을 각오도 해야 한다. 난제(難題)를 마주한 고뇌를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여론이 반전될 것이다.

한·일은 문명사적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지난 세기 유럽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충돌했지만 화해했고, 경제·안보 공동체를 만들었다. 양국도 화해와 공존의 아시아 시대를 열어야 한다.

원문보기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48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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