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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이중근 경향신문 논설주간] 윤석열식 ‘당정 일치’의 종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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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50회 작성일 2023-03-0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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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는 자기부정의 결정판이다. 가장 확실한 사례가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20대 대선 이튿날인 지난해 3월10일 “대통령이 된 저는 모든 공무원을 지휘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당 사무정치에는 관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에서 한 말인데, 이보다 더 당정 분리를 확실하게 선언할 수는 없었다. 한동안은 이 말을 지키는 듯했다. 이준석 당대표와 의견이 엇갈릴 때마다 “당이 하는 일에 일일이 언급할 수 없다”거나 “바빠서 챙겨보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슬금슬금 당에 손을 쓰더니 이번 전대에 이르러서는 노골적으로 당무에 개입하고 있다.

이중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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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과 이를 등에 업은 김기현 당대표 후보의 당정 인식도 자기부정의 연장이다. 처음에는 전대판에 대통령을 끌어들이면 안 된다고 하더니 다급해지자 그 자신이 끌고 들어갔다. ‘안철수가 당대표 되면 윤 대통령이 탄핵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해놓고 이를 수습하느라 궤변을 늘어놓았다. 종국에는 내년 국회의원 공천 때 대통령 의견을 듣겠다고 천명했다. 윤핵관의 중심 장제원 의원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과 갈등한 것을 상기하며 ‘당정 분리=실패’로 규정했다. 노 전 대통령이 당정 분리의 폐해를 지적한 것을 금과옥조처럼 인용했다. 언제부터 노 전 대통령을 존중했다는 것인지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완벽한 정당제도란 있을 수 없다. 각자의 전통과 현실에 맞춰 운용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정을 강하게 분리했다가 조정하는 것을 마냥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대통령의 제1당원으로서 역할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윤핵관의 행태가 너무나 모순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점이다. 본디 정당(party)은 ‘부분(part)의 미학’을 인정하는 것이다. 정당은 일원주의가 아닌 다원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그런데 국민의힘에서 윤석열과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은 용납되지 않는다. 끝내 “질서정연한 무기력보다 무질서한 생명력이 필요하다”던 나경원은 윤핵관에 출마를 저지당했다. 여론조사에서 ‘민심 1위’로 나타난 유승민도 오로지 당원만 투표하는 방식으로 윤핵관들이 당헌을 개정하면서 출마가 좌절됐다.

윤핵관식 당정 분리의 위험성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번 전대 국면에서 윤핵관의 스피커 역을 맡은 이철규 의원은 “선거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당이 같은 방향을 보고 나아갈 수 있도록 소통해야 한다”고 했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조금만 더 확장하면 당을 대통령실의 여의도 출장소로 간주하게 된다. 여당을 민의와 소통하는 창구가 아니라 국정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위험하다. 정당을 마치 멋대로 다룰 수 있는 소유물쯤으로 여기는 태도도 엿보인다. 윤 대통령 주변에서는 당에서 자꾸 다른 의견을 내자 “(윤 대통령이) 마치 남의 집에 세들어 사는 느낌”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대통령이나 대표는 다 잠시 당에 세들어 사는 세입자일 뿐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

한국의 정당은 그 뿌리가 약하다. 군주정에서 민주정으로 가는 과정에서 별다른 희생 없이 정당제도가 도입된 탓이다. 그 결과 이들 정당은 국가 조직에 기댄 파생 정당으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이승만 정권의 자유당과 박정희 정권의 공화당, 그리고 신군부의 민주정의당이 그랬다. 집권세력이 국가를 먼저 장악한 뒤에 국회에서 자신들을 뒷받침할 당을 만든 것이 한국 보수당의 연원인 것이다. 이런 정당의 체질이 튼실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시민의 지지는 없이, 국가의 권력 자원을 활용하는 특권에 기댔기 때문이다. 그 후예인 역대 보수당이 집권만 하면 국가의 힘을 이용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국가 조직인 국가정보원이나 검찰, 경찰을 동원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힘을 가진 것은 당이 아니라 국가인데 당으로 착각한 것이다. 이런 보수당이 민주 정당으로 발전하는 길은 오직 하나, 국가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들은 지금 이것을 막고 있다(박상훈의 <정당의 발견> 참조).

윤석열식 당정 분리 재검토는 보수파 전체에도 치명적인 퇴행이다. 후과는 전대 직후부터 나타날 것이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들이 저렇게 강하게 밀고 있는데도 대세를 잡지 못하는 후보라면 설령 대표가 된다 해도 제대로 당을 이끌기 어렵다. 여당의 비극은 국가에도 불행이다. 이 당을 어이할꼬. 


원문보기 :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222030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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