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권혁순 강원일보 논설주간] ‘설화(舌禍)’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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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39회 작성일 2023-08-09 14:47본문
“미래 짧은 분들이 1대1로 투표해야 하느냐”
김은경 민주당 혁신위원장 말 ‘여진’계속
“미래가 청년들에게만 열려 있나”비난 봇물
“귀는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입이 너무 오래 열려 있으면 공격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이 당하는 시련의 대부분은 입에서 비롯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아낀다.” 말의 중요성을 이르는 경구다. 법정 스님은 이렇게 일갈했다. “내가 두 귀로 들은 이야기라 해서 다 말할 것도 못 된다. 들은 것을 들었다고 다 말해 버리고 본 것을 보았다고 말해 버리면 자신을 거칠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궁지에 빠지게 한다. 현명한 사람은 남의 욕설이나 비평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또 남의 단점을 보려고도 않으며 남의 잘못을 말하지도 않는다. 모든 화는 입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입을 잘 지키라고 했다. 맹렬한 불길이 집을 태워 버리듯이 입을 조심하지 않으면 입이 불길이 되어 내 몸을 태우고 만다. 입은 몸을 치는 도끼요. 몸을 찌르는 칼이다. 내 마음을 잘 다스려 마음의 문인 입을 잘 다스려야 한다. 앵무새가 아무리 말을 잘한다 하더라도 자기 소리는 한마디도 할 줄 모른다. 사람이 아무리 훌륭한 말을 잘 한다하더라도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예의를 갖추지 못한다면 앵무새가 무엇이 다른가.” 요즘 유래 없는 무더위에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의 말이 불길이 돼 뭇사람들의 가슴을 새까맣게 태우고 있다.
김 위원장이 지난 7월 30일 청년들과의 좌담회에서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1대1로 투표해야 하느냐”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고령자가 선거에서 젊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1표를 행사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것이다. 숱한 희생과 고통의 역사를 관통한 끝에 인류가 쟁취해낸 존엄과 평등의 가치에 바탕한 ‘1인1표’제를 새털만큼 가볍게 이렇게 말해도 되는 것인가. 김 위원장이 해명 과정에서 한 말이 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일 대한노인회를 방문해 자신의 노인 폄하 발언에 대해 사과하는 과정에서 “시댁 어른들도 남편 사후에 18년을 모셨다”고 말하며 노인을 비하할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후 온라인상에서 김 위원장의 시누이라고 밝힌 인물이 해당 발언을 ‘거짓말’이라고 주장하고 나섰고, 김 위원장의 아들도 반박글을 올렸다. 김 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의 혁신 동력은커녕 스스로 혁신 대상이 돼가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인의 말은 중요하다. 말이 곧 정치이기 때문이다. 말이 곧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는 툭하면 노인 폄화 발언이 튀어 나와 파장을 일으킨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60대 이상은 투표 안 해도 괜찮다. 집에서 쉬셔도 된다”고 말했다가 선거를 망쳤다. 같은 해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은 “50대에 접어들면 멍청해지고, 60세가 넘으면 책임 있는 자리에 있지 말아야”라고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든다는 것은 또 다른 지혜의 축적이기도 하다. 체력은 나이가 들수록 쇠퇴하지만 정신력은 다르다. 삶에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혜는 노년에 더 발달한다.
막말로 노인들을 폄훼하나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나는 이번 선거전에서 나이를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상대가 어리고 경험이 없다는 점을 공격하지 않을 생각입니다”라는 재치 있는 TV 토론으로 역대 최고령인 73세에 재선됐다. 그러나 늙음은 피할 수 없다. 즉, ‘시간의 흐름’보다 세상에 더 확실한 것이 어디 존재하나. 무심하게 제 갈 길을 가는 시간을 당할 자 아무도 없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잡아보겠다던 진시황은 불로장생약이라 믿은 수은에 중독돼 사망했다. 청춘의 푸르름과 비교할 때 노년의 잿빛은 더 도드라진다.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영화 ‘은교’ 속 명대사 그대로다. 열정적이고 성공적인 젊음을 보내도 힘겨운 노년의 삶을 피할 수는 없다. 마음의 상처가 되는 막말로 더 이상 이나라 노인들의 삶에 덧칠을 해서는 곤란하다. 세치의 혓바닥이 여섯자의 몸을 살리기도하고 죽이기도 한다.
원문보기 : https://www.kwnews.co.kr/page/view/2023080815573518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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