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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칼럼-김영희 한겨레 편집인] 윤석열 정부가 서지현 검사를 기용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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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3회 작성일 2024-09-2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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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페이크 성범죄 아웃 공동행동이 6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주최한 ‘불안과 두려움이 아닌 일상을 쟁취하자’ 긴급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불안과 두려움이 아닌 일상을 쟁취하자’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딥페이크 성범죄 아웃 공동행동이 6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주최한 ‘불안과 두려움이 아닌 일상을 쟁취하자’ 긴급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불안과 두려움이 아닌 일상을 쟁취하자’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김영희 편집인
김영희 편집인

얼마 전 20대 아들을 통해 공공장소에서 여성들을 불법촬영하는 이들을 따라다니며 영상으로 찍어 공개하는 유튜브 채널을 알게 됐다. 얼굴을 모자이크로 가리고 음성변조 처리를 하지만 현장에서 딱 걸린 피의자의 비굴함과 뻔뻔함까지는 감출 수 없다. 빌거나 애원하고, 죽어버리겠다고 협박도 하다가 나중엔 네가 무슨 자격으로 잡느냐 화를 낸다. 정말 지질한 인간들이 범죄를 저지르는구나 싶고, 그들이 영상에 ‘박제’당해 통쾌하다는 댓글 반응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종의 사적 제재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 말이다.

최근 딥페이크(불법합성물) 성범죄가 공론화되면서 디지털 장의사를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도 한다. 클라우드에 저장된 것까지 지울 방법은 없는데도 갈 곳 없는 피해자들이 몰린다. 같은 업체가 가해자나 가해자 부모의 삭제 요청을 받는 경우도 많다. 모두 ‘국가의 부재’가 만든 현실이다.

요즘 정치권은 부산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말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국회 차원 대책 마련을 지시하며 특별위원회 설치에 나섰다. 의원들의 관련 법 개정안도 쏟아지고 있다. 국민의힘이 이 주제로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거나 티에프(TF)를 출범시키고, 문화방송 때려잡기에 분주하던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대응에 신속하게 나서는 듯한 모습은 또 어떤가. ‘딥페이크 성범죄 근절’로 꽉 막힌 협치의 물꼬라도 트일 기세다.

경찰이 검거한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의 70% 이상이 10대라는 통계가 던진 충격 때문일 것이다. 챗지피티4 이후 인공지능 기술의 명암에 대한 논의가 대중화된 영향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불법촬영을 비롯한 디지털성범죄가 연간 범죄 통계에 등장한 지 10년이다. 엔(n)번방에도 ‘지인능욕’ 대화방이 있었고, 2020년 관계 부처가 합동으로 대책을 발표할 때도 딥페이크가 언급됐다. 서울대, 인하대 사건이 올해 알려지기 전 2018년 한양대 사건도 있었다. 이런 현실을 전혀 몰랐다는 듯 분주한 정치권에 반가움보다 씁쓸함이 앞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적어도 법·제도에 대해선 답이 나와 있다. ‘미투 1호’ 서지현 전 검사가 맡았던 법무부의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 티에프와 전문위원회가 2022년 4월 펴낸 보고서다. 정부 부처의 위원회는 1년에 몇번 보고를 듣고 밥 먹고 끝내는 곳이 많다. 이들은 단 반년여 동안 40회 넘게 회의를 열어 11개의 권고안과 60여개 조문 개정 방안을 쏟아냈다. 서 전 검사와 위원장인 변영주 감독을 비롯해 디지털성범죄에 맞서왔던 추적단 불꽃·리셋, 법률·아이티업계 전문가 등이 열정과 전문성, 무엇보다 이 문제 해결에 ‘절박함’을 갖고 참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권고안 주제만 훑어봐도 최근 각계에서 제시되는 대부분이 망라돼 있다. △성범죄 피해자 원스톱 지원 △불법영상물 삭제 차단을 위한 응급조치 △언론 등 2차 가해 방지 △‘솜방망이 처벌’ 방지 △비신체적 성범죄 대응 △법정의 ‘마녀사냥’ 방지 △피해 영상물의 효율적 압수와 재유포 방지 △‘성적 수치심’ 등 부적절한 용어 개선 △성범죄 관련 몰수 개선과 피해자 지원 △피해자 알권리 보장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를 위한 형사배상명령제도 개선. 윤석열 정부가 갑자기 티에프를 해산시켜 디지털성범죄 예방교육 권고안은 공개도 못 됐기에 안타까움은 더 크다.

정부는 10월에 종합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멀리 갈 필요 없다. 서 전 검사를 기용하거나 이 권고안에 바탕해 대책을 마련하면 된다. 실효성 있는 방안을 내는 동시에 ‘여성에 대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성평등 관련 예산을 축소해온 정부라는 비판을 벗을 기회도 되지 않겠나. 정부가 못 한다면 국회가 나서라. 서 전 검사를 법무부에 발탁했던 추미애 민주당 의원과 성폭력 범죄 전문검사였던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이 중심이 돼 야권 공동으로 포괄 법률을 추진한다면 속도가 날 것이다.

물론 법·제도가 전부일 순 없다. 플랫폼의 책임성 강화나 규제는 필수지만 그것만으론 도루묵이 되기 십상이다. 실제 정치권 논의가 디지털 리터러시나 기술 쪽에 집중되는 양상은 걱정스럽다. ‘남자애들이 장난으로 그럴 수도 있지’라는 사회의 인식과 아이의 가해 사실을 숨기려고만 하는 부모들이 달라져야 한다. 피해자에게 조심하라는 성교육이 아니라, 성에 대한 관심이 넘치는 10대 시기에 섹슈얼리티와 젠더를 제대로 가르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섹스와 강간을 구분하지 못하고 이른바 ‘섹드립’을 과시하는 남성 문화에 불편함과 문제의식을 느끼는 남학생들 또한 많다. 그들이 집단 안에서 말하게 해야 한다. 그 출발은 인간의 고통에 대한 이해와 인격의 존중을 배우는 것이다. 10대들을 개탄할 게 아니라 지금 달라져야 할 건 국가와 어른들이다.

원문보기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576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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