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양권모 경향신문 편집인] ‘백신 전쟁’에서 뒤처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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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56회 작성일 2020-12-23 10:33본문
“절대”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돌연 출마를 선언했다. 뜻밖에도(?) 결심을 바꾼 이유를 “정부의 백신 구매에 대한 분노 때문”이라고 했다. ‘바보야, 문제는 백신이야.’ 영국, 미국, 캐나다 등에 이어 유럽연합 27개국이 주말부터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 30여개 나라가 연내에 백신을 접종하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는 백신 없이 이 혹독한 겨울을 나야 하는 궁지다. 정부의 책임을 추궁할 수밖에 없다.
연일 신규 확진자가 1000명 안팎으로 쏟아지고 사망자도 늘고 있다. 거친 확산세에 철옹성 같던 방역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다. 이른바 K방역은 모든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 감염 의심자를 대상으로 ‘신속 검사-역학 추적-격리 치료’를 한 틀로 해 이뤄지는 방역 시스템이다. 지금처럼 확진자가 급증하고 무증상 감염자가 많아지면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 보건계량분석연구소는 국내 확진자가 앞으로도 계속 증가해 내년 봄에는 일일 신규 확진자가 5000명에 이를 것이란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확산세가 꺾이지 않으면 거리 두기는 봉쇄 수준으로 진입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희망을 갖고 봉쇄의 터널을 건너가려면, “(백신을 사용할 수 있게 돼) 터널의 끝에 빛이 보인다”(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고 말할 수 있어야 했다. K방역으로 코로나를 성공적으로 통제하고 있을 때, 충분한 백신을 확보해 코로나를 종식시킬 준비를 해야 했다.
정부는 시종 백신 확보와 접종이 늦어진 이유에 대해 “다른 나라의 부작용 사례를 확인한 뒤 접종하기 위해”라고 했다. 이건 안전성이 검증됐을 때 접종할 백신이 확보되어야 성립될 수 있는 얘기다. 백신의 단기 안전성은 접종 한 달 뒤면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백신 접종 국가들에서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의 안전성이 내년 1분기 내에 실질적으로 확인되었을 때도, 우리는 맞을 백신이 없는 상태다. 현재 구매 계약이 확정된 것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1000만명분)뿐이다. 계획대로면 내년 2~3월부터 ‘순차적’으로 접종이 시작된다. 화이자와 얀센, 모더나 백신은 추후 구매 계약이 성사되어도 언제 접종이 가능할지는 불투명하다. “내년 인플루엔자 유행 시기 전에 완료”가 정부가 희망적으로 내세운 목표다. 코로나 대유행 국가들만이 백신을 조기 확보한 게 아니다. 하루 발생하는 확진자가 두 자릿수인 호주는 인구 대비 269% 분량의 4종류 백신을 확보했다. 안전성과 생산 차질 등 위험부담을 분산시키기 위해 여러 종류의 백신을 “과도하게” 확보한 것이다. 그 ‘과도함’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 일종의 보험인 셈이다. 물량도 부족하고 당분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하나의 안전성에 목매야 하는 한국과는 차원이 다르다.
백신 전쟁에서 도저히 만회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시간이다. ‘충분한’ 백신을 ‘빠르게’ 확보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사이의 되돌릴 수 없는 격차는 필연이다. 백신 접종을 시작한 나라들이, 예상대로 내년 상반기에 집단면역을 획득하게 되면 코로나 봉쇄를 풀고 일상에 복귀하게 될 터이다. 그때 백신접종이 늦어져 코로나 유행이 멈추지 않는 나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백신 선도국들이 터널의 끝에 도달할 때 여전히 어두운 터널의 복판에서 아우성치는 나라, 끔찍하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용감하게(?) 고백했다. “정부가 백신 도입 논의를 시작할 당시 확진자 수가 적었기 때문에 백신 의존도를 높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오판으로 백신 확보가 늦어졌다는 것이다. 안일한 대처로 백신 조기 확보에 실패했다면 그 실상을 솔직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어설픈 변명과 앞뒤 안 맞는 해명이 불신을 키운다. 많은 국가들이 접종까지 하고 있는데 왜 기본 확보조차 할 수 없었는지, 실질적인 백신 확보는 어디까지 되어 있는지, 부족한 백신을 도입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접종은 언제 얼마만큼 가능한지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신뢰가 무너지면 만사휴의(萬事休矣)다.
늦었어도, 길은 하나다. 모든 자원을 동원해 효과적인 백신을 가급적 빨리, 충분히 확보해 접종하는 것밖에 없다. 외교력을 통해 ‘넉넉하게’ 백신을 공급받는 국가들로부터 일부를 확보하는 방법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치료제와 백신을 도입하는 데 현 정부의 명운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일하고 늑장이라는 지적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 더는 실기하지 않는 백신 확보, 문재인 정부의 명운이 걸려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223030004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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