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이중근 경향신문 논설주간] 윤 대통령의 ‘검핵관’ 인사, 군인 대통령 인사
작성일 22-05-1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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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정부 부처들 사이에도 계급이 있다는 농담조 ‘부처 분류법’을 들은 적이 있다. 내용인즉슨, 자기 조직의 수장도 못 내는 부처가 맨 아래에 있고, 그 위로 자기네 조직의 수장 정도는 내는 부처, 그리고 그것을 넘어 남의 부처에 장까지 내는 부처가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뇌리에 남은 것을 보면 이 분류법에 꽤나 공감했던 모양이다. 그 공직자는 첫번째 부류의 대표로는 교육부를, 그리고 마지막 끗발 있는 부처로는 법무부와 국방부를 꼽았다. 국방부를 예로 든 것으로 볼 때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끝난 지 아주 오래되지는 않았던 시기인 듯싶다.
5·6공화국의 군인 출신 대통령 시절에는 청와대와 내각 요직에 군인들이 안 가는 곳이 없었다. 군인과 연결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보건사회부(보건복지부)나 감사원에까지 책임자로 갔다. 동료들에게 한 자리 준다는 뜻과 함께 권력기관들을 통제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이 부처 분류법의 정확도를 짚는 과정에서 법무부 출신들, 즉 검사들이 의외로 요직에 많이 진출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진출 부처로는 법제처와 국가정보원 등이 거론됐다. 하지만 군인들의 요직 진출이 부각된 탓일까, 검사들이 자리 욕심을 부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웃기는 분류법을 다시 끄집어낸 것은 윤 대통령의 ‘검찰 중용’ 인사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청와대의 살림을 꾸리는 자리는 물론 인사 담당을 모두 검찰 출신으로 채웠다. 검사는 물론 수사관 출신들까지 핵심 포스트에 앉혔다. 장교에 부사관들까지 데리고 간 격이다. 국정원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기조실장도 검사 출신으로 임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윤 대통령은 17일 그 정점으로 자신의 복심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권력기관의 핵심 포스트에서 윤 대통령의 뜻을 일사불란하게 시전할 체제를 갖췄다. 권력의 중심이 ‘윤핵관’에서 ‘검핵관’으로 옮아간 느낌마저 든다.
문제는 한동훈 장관 임명이 끝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차기 검찰총장 인선 등 검찰 인사의 향배는 물을 것도 없다. 과거 군인 출신 대통령들이 대규모 병력을 이끈 경험을 리더십을 갖춘 경륜으로 포장해 국가기관의 운영을 맡긴 것처럼, 윤 대통령도 법에 의한 통치와 개혁을 명분으로 검사 출신을 곳곳에 임명할지 모른다. 벌써 국가수사본부장 자리에도 검사 출신을 기용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공룡 경찰’을 견제하자는 명분이 있다. 여기에 공수처장까지 검사 출신을 세우면 공수처 설립 취지는 무력화된다. 로펌은 물론이고 기업들이 윤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법조인들을 경쟁적으로 영입하고 있다는데, 너무나 자연스러운 연쇄작용이다.
검찰에서는 흔히 중요한 수사부서장을 임명할 때 그 사람이 원하는 사람으로 진용을 갖춰주는 게 관례이다. 미군에서도 고위급 지휘관들은 자기와 일한 경험이 있는 부하들을 기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새 자리에 적응하는 시간을 줄이자는 취지다. 하지만 그것은 군대나 검찰이라는 특수한 조직 내에서, 즉 통일성을 유지하는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다양성이 필요하고 상호 견제가 필수인 국가 운영과 국가기관 간 관계를 고려하면 검찰 출신들로 국정 컨트롤타워를 꾸리는 것은 위험하다. 게다가 불길한 것은 윤 대통령 주변에 유달리 오래된 지인이 많다는 점이다. 그 인사 다양성 결핍의 폐해가 벌써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실의 씀씀이를 챙길 윤재순 총무비서관의 성비위 의혹은 어제도 새로운 내용이 나왔다. 문재인 정권의 잣대를 들이댔다면 그는 진작에 잘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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