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 언론3단체,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타당한가?’ 긴급 토론회
작성일 20-10-2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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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토론회>>
발제2 : 언론의 고민과 책무성 확보
김동훈(한국기자협회 회장)
1. 들어가는 말
법무부는 지난 9월 28일 언론 보도의 피해에 대해 최대 5배까지 배상 책임을 지우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위한 ‘상법 개정안’과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오는 11월9일까지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앞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9일 언론 보도의 피해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언론의 악의적 보도로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 법원은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않는 선에서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도록 했다.
징벌적 손배제가 거론된 배경에는 언론이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크다. 국민들의 언론에 대한 불신과 기자들에 대한 분노가 높다. 최근 미디어오늘 여론조사에서 국민 81%가 징벌적 손배제에 찬성했다. 정치적 성향에서 자신을 ‘보수’라고 밝힌 이들은 73%, ‘진보’라고 밝힌 이들은 92%가 찬성했다. 정치적 성향과 큰 상관없이 징벌적 손배제를 통한 ‘응징’의 감정으로 발현되고 있다. 요즘 국민들의 감정으로는 징벌적 손배제만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언론과 기자들이 미움을 사고 있다. 언론계가 먼저 자성하고 성찰해야 한다.
국민들의 대 언론 불신을 기자들도 잘 알고 있다. 한국기자협회의 지난 8월 회원(기자) 대상 설문조사를 보면, 기자 72.2%가 국민이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기자 26.6%만이 국민이 언론을 신뢰 한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국민이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기자들은 어떤 응답(복수 응답)을 했을까? 검증 없이 받아 쓰기(47%)와 언론의 정파성(46.2%)을 가장 많이 꼽았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징벌적 손배제가 마치 언론개혁의 완성본처럼 여기고 있는 듯하다. 검찰개혁의 공수처법과 대등하고 취급받고 있다. 이에 따라 징벌적 손배제를 찬성하면 개혁이고, 반대하면 반개혁이라는 매우 위험한 프레임이 형성되고 있다.
2. 징벌적 손배제의 두 가지 결정적 결함
이번 상법 개정안의 징벌적 손배제는 크게 두가지 결정적 결함을 지니고 있다. ‘이중 처벌’과 ‘고의성(악의적 가짜뉴스) + 중과실(선의의 오보)’ 처벌이다.
첫째, 형사적 제재에 더해서 징벌적 민사 배상 책임까지 부과하는 것은 우리나라 법 체계에서 금지하고 있는 이중처벌로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헌법소원까지 갈 경우 위헌 결정이 날 가능성이 높다는 게 헌법학자들의 일반적 견해다.
우리나라는 언론에 대한 피해 구제책이 비교적 잘 돼 있다. 언론중재위법이 있고, 명예훼손에 따른 각종 민형사 소송도 가능하다. 최근에는 기업을 비판한 기사를 쓴 기자의 급여를 가압류한 일도 있었다. 그런데 징벌적 손배제까지 시행하면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이중 처벌’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 특히 대륙법계 나라에서는 형법상 명예훼손죄만 존재한다. 영미법계인 미국도 징벌적 손배제가 일반화 돼 있는 게 아니라 몇몇 주에서는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사실 적시의 경우)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징벌적 손배제가 시행되면 우리나라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이 두 가지를 모두 시행하는 나라가 된다.
법의 근간인 체계 정당성의 원리에도 위배된다. 하도급법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민법 750조에 따라 손해가 있는 만큼 배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지금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와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언론에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입법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과잉 입법이다. 즉, 징벌적 손배제가 시행되지 않더라도 현행법으로 무겁게 처벌할 수 있다. 현재 가짜뉴스 생성·유포자는 형법상 명예훼손죄, 업무방해죄, 민법상 허위사실 공표죄, 정보통신망법에 따른 인터넷을 이용한 명예훼손죄 등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형법상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은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정보통신망법, 즉 인터넷 기사로 명예를 훼손시킬 경우 역시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그런데 그동안 법원의 판단은 공익의 목적과 사실로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위법성 조각사유를 들어 언론에 면죄부를 줬다. 이에 따라 언론 피해자들 입장에선 피해만큼 보상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징벌적 손배제라는 새로운 법을 만들기 보다는 법원이 언론 피해자에 대한 손해 배상(양형)을 현실화한다면 징벌적 손배제의 기대 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본다.
둘째, 이번 상법 개정안에는 고의성(악의적 가짜뉴스) 뿐만 아니라 중과실(선의의 오보)까지 처벌하도록 규정해 논란이다. 미국의 징벌적 손배제에서도 악의성이나 고의성만 따지지 중과실 요건은 없다. 또 지난 6월 정청래 의원이 대표발의한 징벌적 손배제(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서도 ‘악의성’만 처벌하도록 했을 뿐 중과실 조항은 없다.
가짜뉴스는 일부러 정보를 조작한 것이다. 즉, 행위에 고의성이 포함돼 있다. 반면 중과실은 실수에 따른 오보까지 포함하고 있다. 팩트 확인이 됐다고 판단해 보도했지만 결과적으로 오보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보도자료의 오타가 오보로 연결된 경우도 있다. 이것도 언론이 왜 확인하지 않았냐고 따진다면 언론 현실, 취재 현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4년 전 국정농단 사태 당시 문화계 특혜 의혹을 제기한 서울경제신문 기자가 민형사 소송을 제기당해 수천만원 배상과 함께 최근 검찰로부터 징역 10월의 징역형을 구형받는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공익에 부합하는 기사였고, 진실로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지만 위법성 조각사유도 적용되지 않았다.(사례발표)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규제대상이나 고의성 판단에 대한 기준도 불분명하다. 특히 고의성의 경우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즉, 가짜 뉴스에 대한 판단이 모호하다. 어떤게 허위이고 어떤게 진실인지.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종북, 친일파로 낙인찍힌 경우 이것이 사실 적시인지, 의견 평가인지. 자의적으로 정의 내리기가 쉽다. 그래서 ‘내진남가’(내가 하면 진짜뉴스, 남이 하면 가짜뉴스)라는 말까지 나온다. 특히 사실과 주장이 뒤섞인 기사에서 이것을 어떻게 분리해 진짜와 가짜를 판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3. 징벌적 손배제에 따른 언론 위축
기자들은 형사고소를 당하고 손해배상을 요구받며 심지어 급여가 가압류되기도 한다. 기자가 언론중재위에 불려가고, 법정에 서는 등 분쟁을 겪는 것만으로도 자괴감에 빠지고 마음을 위축시킨다. 이는 취재와 보도에 대한 심대한 제약이다.
언론중재위의 ‘언론관련 판결 분석보고서’를 보면, 민사 소송의 경우 2008년 116건에서 2019년 334건으로 11년 새 무려 3배나 늘었다. 또 언론조정도 2008년 954건에서 2019년 3544건으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런데 언론의 승소율은 평균 50%가 넘고, 심지어 최근 11년 중 6년간은 3건 중 2건을 이겼다.
그런데 승소-패소를 떠나 기자들 입장에선 소를 제기 당하는 것은 물론 언론중재위에 불려 가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이며 압박이다. 소송에서 패소하기라도 하면 엄청난 자괴감에 빠진다. 더욱이 회사가 기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회사의 책임 회피다. 실제로 몇 년 전 거대 언론사에서 구상권 얘기가 나왔다가 기자들의 반발로 취소된 적이 있다.
징벌적 손배제는 기자들의 정상적인 취재 및 기사작성 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다. 기자들이 위축되면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 기능도 느슨해 질 수밖에 없다. 불과 4년 전, 국정농단 사태 당시 언론은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징벌적 손배제가 시행되면 기자들은 이처럼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 파장이나 논란, 법적 분쟁까지 휘말리는 취재와 보도 행위에 쉽사리 뛰어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비단 권력 감시 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호소에도 기사쓰기를 망설일 수 있다. 사회적 약자가 언론사에 피해를 제보했지만 보도 이후 가해자의 항의와 법적 대응 등이 예상될 경우, 즉 징벌적 손배가 예상될 경우 기사쓰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회부 기자 시절에 수천억원대 재건축 비리를 제보받고 취재해 사회면 톱기사로 두 번 게재된 적이 있다. 그러나 기사가 보도된 뒤 엄청난 항의와 법적 대응 압박에 시달렸다. 만약 징벌적 손배제가 시행된다면 제보를 외면했을 것이다. 열심히 일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가뜩이나 우리 기자들은 자괴감에 빠져 있다. 해마다 실시하는 기자협회 설문조사에서 올해 기자 직업 만족도가 46.6%로 조사 이후 처음으로 50% 이하로 떨어졌다. 이직도 심하다. 기자 4명 중 1명(26.6%)은 기자를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갖고 싶다고 응답했다.
4. 마무리
이처럼 결정적 결함을 지니고 있는 징벌적 손배제가 과연 언론개혁의 ‘완성본’이고 ‘끝판왕’일까? 언론인이 김영란법 적용을 받는 것은 공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김영란법 적용을 받는 직업군(공무원, 교사, 군인 등) 중 유일하게 연금은 없다. 의무는 짊어지고 있는데 혜택은 없다. 그런데 이번엔 회사원이라고 상법으로 규제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징벌적 손배제를 가지고 소목적인 논쟁을 이어가기 보다는 더 큰 그림에서 언론개혁을 논의해야 한다. 언론개혁은 1)언론계의 자정, 2)법과 제도의 개선, 3)시민 대응 지원 등 삼박자가 이뤄져야 완성될 수 있다.
우선 언론계 내부의 자성과 성찰, 그리고 자정운동, 자율적 규제가 필요하다. 언론사 윤리강령 강화와 엄격한 적용, 언론사의 자체적인 팩트체크 강화, 알고리즘 변경 등 기술적 조치, 적극적인 정정보도와 반론보도, 명확한 출처 표기 등으로 언론의 신뢰를 높여야 한다.
둘째, 언론 보도가 개선될 수 있는 법과 제도의 개선이다. 기자협회 여론조사에서 언론개혁의 전제라고 할 수 있는 ‘미디어관련법 개정’에 65.9%가 찬성했다. 반대는 찬성의 절반도 안되는 29%였다. 또 언론 피해자들을 위한 현행법이 부족하다면 위헌의 소지, 악용의 소지가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대신 허위조작 정보와 혐오표현, 선정적 보도에 대한 규제가 보완책으로 거론될 수 있다.
셋째, 언론 소비자들의 미디어 리터러시, 즉 시민들의 대응 지원과 교육이 필요하다. 시민들의 미디어 리터러시는 인지적 차원이 아니라 행동적 차원까지 가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세 가지가 트라이앵글을 이뤄야 언론개혁이 완성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뉴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확증편향’에 빠져 있다. 정파적 보도가 난무하고, 소비자들도 정파적 보도에서 쾌감을 느낀다. 뉴스 소비자들이 좋은 뉴스를 많이 소비해야 뉴스 생산자들도 다시 좋은 뉴스를 생산한다. 이러한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기자협회장으로써 국민들에 대한 당부는 우리 기자들을 대상화하지 말아주셨으면 한다. 전화 응대할 때 많이 나오는 이야기지만 우리 기자들도 누군가의 딸이고, 아들이다. 우리 사회의 공기가 되기 위해 박봉에도 열심히 일하는 기자들이 훨씬 더 많다는 점을 기억해 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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