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 입법권의 횡포 “기자, 지들도 당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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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300회 작성일 2015-03-04 09:18본문
다른 산업은 놓아두고 언론 기업만 규제하는 것은 형평성 어긋나
유예기간에 위헌적인 과잉 입법 요소 걷어내야
황호택 논설주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현 서강대 로스쿨 교수)이 당초 김영란법을 제안할 때는 현재 대통령령으로 돼있는 ‘공무원 행동강령’을 법률로 격상하자는 뜻이었다. 공무원 행동강령은 처벌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졌다. 이제 직무관련성이 없는 금전이나 선물, 식사 대접도 100만 원이 넘으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벤츠 검사나 스폰서 검사처럼 대가성이 없는 금품을 받았다고 무죄 판결을 받고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진다. 김영란법이 공직사회에서 뿌리를 내리면 우리 사회의 투명성이 몇 단계 뛰어오를 것이다. 이 법의 정상적인 안착을 위해서도 무리하거나 과도한 요소는 걸러내는 것이 좋다고 본다.
대통령령인 공무원 행동강령은 행정부 공무원들에게만 적용되고 입법부와 사법부 공무원들에게는 적용할 수 없었다. 행정부뿐 아니라 모든 공직자에게 적용하는 법률을 만들자는 것이 국민권익위의 본래 취지였다. 그러나 국회 정무위원회로 넘어간 뒤 법안 논의 과정에서 김영란법을 통과시키라고 압박하는 언론이 얄미웠던지 언론기관과 사립학교 교직원으로까지 외연을 확장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인 이상민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은 “당초 김영란법 원안의 입법 취지가 공직사회 비리 부패를 막기 위한 차원인 만큼 원안대로 그 대상을 공직자에 한정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말했다. 김영란 교수도 인터뷰나 이런저런 자리에서 발언을 통해 “공무원과 세금을 쓰는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했다. 전 대법원장 A 씨는 “민간 영역에서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까지 형사처벌하는 것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관 B 씨는 “민간 언론기관을 포함시키면서 ‘공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이유를 들었는데 이 공적 기능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위헌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신문사 방송국도 보도라는 공적 기능을 수행하지만 영업을 잘해 흑자를 내야 지속 가능한 사(私)기업이다. 다른 기업들은 놔두고 언론기업만 김영란법에 끌어들인 것은 가뜩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꾸려나가는 신문 방송사의 영업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
요즘 언론의 심각한 문제는 인터넷 언론기관이 난립해 시장경제와 상관없이 생존해 간다는 것이다. 취재와 편집 인력 3명을 모아 시도에 등록하면 인터넷 언론사를 차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이비가 창궐한다. 그러나 공직자를 규율하는 김영란법으로 기자 사회를 한 묶음으로 규율하면 언론 탄압에 활용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날 것을 뻔히 내다보고서도 국회가 입법을 강행하는 횡포를 자주 부리면 우리도 프랑스처럼 입법 과정에서 위헌성 심사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사립학교 교원도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교원과 그렇지 않은 교원을 구분해야 한다. 김영란법의 당초 취지에 비추어 정부의 임금 지원이 없는 자립형 자율형 사립고나 사립대학은 제외돼야 맞다. 국가가 부부간 이불 속 문제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헌재 결정이 나오는 판에 국가가 월급을 주지 않는 민간 영역에 끼어들 때는 절제가 필요하다.
공무원 행동강령에는 11조에 공무원은 자기 또는 타인의 부당한 이익을 위하여 다른 공무원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해치는 알선 청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런데 국회 정무위의 김영란법 논의 과정에서 ‘국회의원이 민원을 전달하는 것은 부정청탁이 아니다’라는 조항이 슬그머니 들어갔다. 국회의원은 입법을 하고 정책과 제도를 개선하는 기관이지 민원을 전달하는 기관이 아니다. 자기들에게 불리한 사안은 슬그머니 제외시킨 것이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총리 후보자 시절에 연차가 어린 기자들을 상대로 털어놓은 발언은 김영란법에 대한 상당수 의원의 본심을 노출했다. 이 총리는 언론의 검증보도에 불만을 토로하며 “김영란법에 기자들이 초비상이거든. 안 되겠어, 통과시켜야지. 지들도 당해봐”라는 요지로 말했다. 나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을 맡아 이런저런 언론인 회합에 많이 참석하지만 기자들이 김영란법 때문에 초비상이 걸렸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기자들에게 국민연금 대신에 공무원연금을 지급하고, 기자 월급을 정부 예산으로 주면서 김영란법을 적용하면 좋겠다”는 자조적(自嘲的)인 말까지 나온다.
1년 반의 유예기간에 김영란법에서 위헌적 과잉입법의 요소나 법리 체계에 맞지 않는 부분을 가려내는 것이 국회의 소임일 것이다.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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