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구 칼럼/4.9] 왜 성공한 대통령은 없을까
페이지 정보
댓글 0건 조회 8,503회 작성일 2013-04-09 09:39본문
성급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이대로 가면 박근혜 대통령은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박 대통령이 ‘내 갈 길 내가 알아서 간다’는 불통 대통령이어서만이 아니다. 비리로 얼룩진 비(B)급 인사들로 내각을 구성하고, 대선 공신들에게 전리품 나눠주듯 낙하산 인사를 자행해서만도 아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우리의 정치사회적 시스템 자체가 성공한 대통령이 나오기 어렵게 돼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성패는 사회 통합을 얼마나 잘 이뤄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사실상 무소불위의 ‘제왕적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우리의 정치사회적 환경은 구조적으로 사회 통합을 어렵게 하고 있다. 사회 통합을 이루려면 타협과 양보가 필수적인데 승자 독식형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정치세력 간 대화와 타협의 유인이 별로 없다. 선거 과정에서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삼겠다고 한 박 대통령도 한두번 그런 몸짓을 할지 모르지만 굳이 계속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승자 독식형 민주주의에 따라 모든 걸 잃은 야당은 다음 선거에서의 ‘대권’ 쟁취를 위해 투사형 정당이 돼 가고, 이로 인해 일상화된 정치적 갈등은 사회 통합의 장애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한 표라도 더 얻으면 승자가 되는 현행 선거제도는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이익을 대변할 다양한 소수 정당의 형성을 가로막아 결과적으로 사회 통합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영남패권주의가 굳어진 현실에서 지역 간 통합은 더욱 요원하다. 사회 통합을 이루는 성공한 대통령이 나오기 힘든 구조인 셈이다.
취약한 정당구조는 대통령의 실패를 부추긴다. 우리나라 정당은 이념정당이라기보다 대통령 지원 부대 성격이 강하다. 현재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특히 그렇다. 만약 새누리당이 분명한 정책 방향과 지도력을 갖고 있다면 박 대통령의 일탈을 견제하고, 성공한 대통령이 되도록 이끌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야당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이념과 정책을 명확히 하고 이를 토대로 지지 세력을 결집해가기보다는 당내 권력 싸움에다 대권 쟁취 준비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되면 설사 정권을 잡더라도 실패할 대통령을 한 명 더 늘릴 뿐이다.
과도하게 비대해진 관료집단도 대통령의 성공을 돕기보다는 실패 쪽으로 이끌 가능성이 크다. 관료집단은 이미 부처 이기주의와 엘리트주의로 똘똘 뭉친 공룡이 돼 버렸다. 정권 초기야 대통령과 측근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120% 달성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본색을 드러낼 것이다. 역대 정권은 이를 우려해 정권 초기에는 관료집단의 득세를 경계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초기부터 관료집단에 둘러싸여 있다. 박 대통령이야 관료집단을 자기 의도대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겠지만 그도 실패한 역대 대통령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선 박 대통령에게 이리저리하면 성공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조언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잘못된 방향으로 갈 경우 혹독한 비판과 조언은 필요하겠지만 그것이 그를 성공의 길로 이끌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역대 대통령들에게도 집권 초기 숱한 조언과 충고와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지내놓고 보면 거의 효과가 없었다. 대통령 자신이 이런 조언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서도 그랬겠지만 구조적으로 대통령이 성공할 수 없는 정치경제적 환경 탓이 더 컸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성공한 대통령을 갖기 위해서는 대통령 개인에 대한 비판과 조언을 넘어 성공한 대통령이 나올 수 있는 정치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의 출발은 승자 독식형 민주주의 제도 개혁, 정책과 이념에 따라 운영되는 정당 건설, 관료집단의 조직이기주의 타파 등이 될 것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이런 개혁 없이 ‘제왕적 대통령’만 아무리 비판한다고 크게 달라질 게 없다. 우리의 정치사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대한민국 구조개혁위원회’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