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칼럼/4.8] 님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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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709회 작성일 2013-04-08 09:18본문
권력은 종종 필연을 우연이라 우기고, 우연을 필연이라 주장한다. 전자는 책임을 회피할 때, 후자는 업적을 부풀릴 때 자주 그런다. 대통령비서실장의 ‘17초 대독(代讀) 사과’는 앞의 경우다. 필연이 분명한 ‘인사 참사’를 우연처럼 뭉개려 했으니 ‘사과 참사’가 필연이다.
사과 참사는 대통령님의 침묵에서 비롯됐다. 사과를 아랫사람이 대신하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다. 님이 어느 정도 잘못했다고 생각하는지를 알고 있다면 아랫사람의 사과 수위나 방법은 결정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님이 침묵하고 있으니 아랫사람이 제대로 사과를 한 건지 어떤지 여전히 캄캄하다. 이번 사과에 대한 비난을 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역시 모른다. 궁금증만 하나 더 늘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88년 전에 썼다는 ‘님의 침묵’이란 시가 요즘에도 통할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사랑하기에 귀먹고 눈멀어 님을 지지한 국민은, 정치도 사람의 일이라 언젠가는 변심할 것을 예상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이 너무 빨리 온 듯하고 님의 침묵마저 길어져 새삼 슬픈 요즘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사과를 들여다보면 국민과 대통령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는 다섯 가지쯤 된다. 전적으로 대통령이 잘못한 경우,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대통령을 돕는 사람도 포함된다)이 잘못했을 경우, 대통령이 잘못했지만 국민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는 경우, 대통령은 잘못이 없다고 하는데 국민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 책임소재는 묘한데 포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경우다.
김영삼 대통령은 쌀 개방을 막지 못했다고, 성수대교가 무너졌다고, 아들 단속을 못했다고 머리를 숙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벤처비리에 청와대 직원이 끼고, 아들들이 비리 혐의로 감옥에 들어가고, 북한에 뒷돈 보낸 게 드러나자 사과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생수회사 장수천, 형님, 탄핵, 시위진압 중 사망한 농민, 바다이야기 등등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시위, 세종시와 신공항, 형님 때문에 용서를 빌었다.
국정(國政)의 지뢰밭은 촘촘하고 다양하다. 그래서 모든 정부가 사과 없는 정부를 꿈꿨으나 실패했다. 이 정부도 댓바람에 ‘인사 참사’를 저질렀다. 첫 번째 유형, 전적으로 님이 잘못한 경우다. 빨리, 솔직하게 사과해야 마땅한데 안 했다. 집권 초기여서 사과문을 면죄부로 바꿀 수도 있었을 타이밍을 놓쳤다. 두 번째 유형, 친인척이나 참모의 경우는 아직 모르겠으나 님의 정부도 창조경제나 복지 확대, 지하경제 양성화, 대북정책 등이 제대로 안 되면 기대가 커진 국민과 얼굴 붉히는 세 번째나 네 번째 유형의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적지 않다.
‘준비된 대통령’이 탄생했을 때 오히려 국민 쪽이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걱정도 했다. 그런데 상황이 역전됐다. 우리는 님의 실수를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데 님은 요지부동이다. 그래선지 님을 지지했던 사람은 요즘 허전하다고 한다. 마음 한구석에 ‘혹시’ 하던 나쁜 예상이 맞는 게 속상하고, 그 해법의 괴리가 너무 큰 게 답답해서다. 이대로 그냥 5년이 흘러가는 건가 하는 무력감도 있다.
님은 입으로는 미래와 창조를 말하면서 본인은 과거형이고 권위적이다. 공개석상에서 입었던 갑옷을 벗고, 평상복의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 님은 취임 후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못했다(않았다). 메시지에도 가끔은 사람 냄새가 배어 있어야 감동도 주고 유통기간도 길다.
청와대 참모들에게는 작은 실수를 했을 땐 피신할 수 있는 심리적 공간과 대세에 지장 없는 범위 내에서 님의 언행을 해석할 권한을 허용해야 한다. 청와대를 향해 병정(兵丁)처럼 서 있는 각료들도 이젠 받아쓰기를 멈추고 자기 일을 하게끔 끈을 늦춰줘야 한다. 시행착오도 각오해야 한다. 당(黨)은 방풍림이다. 더 심어도 시원찮을 판에, 있던 울타리마저 건사하지 못하는 건 패착이다.
님은 바꾸는 걸 싫어해서 큰 기대 하지 말라고도 한다. 본질이 아니라 스타일을 바꾸라는 건데도…. 투자로 생각하고 좋든 싫든 시늉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국민은 고집이 세고 변덕도 심해 그래도 성공할까 말까다.
님이 좀 바뀌어야 ‘님의 침묵’ 후반부에라도 기대를 걸어볼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청와대 대변인이 며칠 전에 청와대 기사를 쓸 땐 취재원의 이름을 밝히라고 요청했다. 선후가 잘못됐다. 지금은 언론이 아니고 님을 설득할 때다.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ksshim@donga.com
사과 참사는 대통령님의 침묵에서 비롯됐다. 사과를 아랫사람이 대신하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다. 님이 어느 정도 잘못했다고 생각하는지를 알고 있다면 아랫사람의 사과 수위나 방법은 결정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님이 침묵하고 있으니 아랫사람이 제대로 사과를 한 건지 어떤지 여전히 캄캄하다. 이번 사과에 대한 비난을 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역시 모른다. 궁금증만 하나 더 늘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88년 전에 썼다는 ‘님의 침묵’이란 시가 요즘에도 통할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사랑하기에 귀먹고 눈멀어 님을 지지한 국민은, 정치도 사람의 일이라 언젠가는 변심할 것을 예상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이 너무 빨리 온 듯하고 님의 침묵마저 길어져 새삼 슬픈 요즘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사과를 들여다보면 국민과 대통령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는 다섯 가지쯤 된다. 전적으로 대통령이 잘못한 경우,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대통령을 돕는 사람도 포함된다)이 잘못했을 경우, 대통령이 잘못했지만 국민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는 경우, 대통령은 잘못이 없다고 하는데 국민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 책임소재는 묘한데 포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경우다.
김영삼 대통령은 쌀 개방을 막지 못했다고, 성수대교가 무너졌다고, 아들 단속을 못했다고 머리를 숙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벤처비리에 청와대 직원이 끼고, 아들들이 비리 혐의로 감옥에 들어가고, 북한에 뒷돈 보낸 게 드러나자 사과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생수회사 장수천, 형님, 탄핵, 시위진압 중 사망한 농민, 바다이야기 등등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시위, 세종시와 신공항, 형님 때문에 용서를 빌었다.
국정(國政)의 지뢰밭은 촘촘하고 다양하다. 그래서 모든 정부가 사과 없는 정부를 꿈꿨으나 실패했다. 이 정부도 댓바람에 ‘인사 참사’를 저질렀다. 첫 번째 유형, 전적으로 님이 잘못한 경우다. 빨리, 솔직하게 사과해야 마땅한데 안 했다. 집권 초기여서 사과문을 면죄부로 바꿀 수도 있었을 타이밍을 놓쳤다. 두 번째 유형, 친인척이나 참모의 경우는 아직 모르겠으나 님의 정부도 창조경제나 복지 확대, 지하경제 양성화, 대북정책 등이 제대로 안 되면 기대가 커진 국민과 얼굴 붉히는 세 번째나 네 번째 유형의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적지 않다.
‘준비된 대통령’이 탄생했을 때 오히려 국민 쪽이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걱정도 했다. 그런데 상황이 역전됐다. 우리는 님의 실수를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데 님은 요지부동이다. 그래선지 님을 지지했던 사람은 요즘 허전하다고 한다. 마음 한구석에 ‘혹시’ 하던 나쁜 예상이 맞는 게 속상하고, 그 해법의 괴리가 너무 큰 게 답답해서다. 이대로 그냥 5년이 흘러가는 건가 하는 무력감도 있다.
님은 입으로는 미래와 창조를 말하면서 본인은 과거형이고 권위적이다. 공개석상에서 입었던 갑옷을 벗고, 평상복의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 님은 취임 후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못했다(않았다). 메시지에도 가끔은 사람 냄새가 배어 있어야 감동도 주고 유통기간도 길다.
청와대 참모들에게는 작은 실수를 했을 땐 피신할 수 있는 심리적 공간과 대세에 지장 없는 범위 내에서 님의 언행을 해석할 권한을 허용해야 한다. 청와대를 향해 병정(兵丁)처럼 서 있는 각료들도 이젠 받아쓰기를 멈추고 자기 일을 하게끔 끈을 늦춰줘야 한다. 시행착오도 각오해야 한다. 당(黨)은 방풍림이다. 더 심어도 시원찮을 판에, 있던 울타리마저 건사하지 못하는 건 패착이다.
님은 바꾸는 걸 싫어해서 큰 기대 하지 말라고도 한다. 본질이 아니라 스타일을 바꾸라는 건데도…. 투자로 생각하고 좋든 싫든 시늉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국민은 고집이 세고 변덕도 심해 그래도 성공할까 말까다.
님이 좀 바뀌어야 ‘님의 침묵’ 후반부에라도 기대를 걸어볼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청와대 대변인이 며칠 전에 청와대 기사를 쓸 땐 취재원의 이름을 밝히라고 요청했다. 선후가 잘못됐다. 지금은 언론이 아니고 님을 설득할 때다.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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