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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이재희 기자 외 2명의 ‘이순신의 바다, 옛 뱃길로 톺아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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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운대에 있는 정운 장군 순의비. 

몰운대에 있는 정운 장군 순의비. 


낙동강하구, 화준구미, 다대포


드디어 음력 9월 1일. 새벽닭이 울자 이순신의 연합함대는 배를 띄워 진시(오전 7시~9시)에 몰운대 앞에 다다른다. 몰운대 앞에서 강풍을 만나 간신히 노를 저어 화준구미에 이르러 왜선 대선 5척을 박살 낸다.


전 원장은 "부산 바다 인근에 파도가 세기로는 가덕도 남단 등대, 몰운대, 태종대 앞이라고 말했다." 취재진이 낙동강하구를 통과할 때는 서기가 가득한 구름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화준구미와 다대포항은 인접한 포구였다. 다대포에서 이순신 함대는 왜의 대선 8척을 수장시킨다.


아침 일찍부터 사실상의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특히 다대포는 임진왜란 발발 당시 윤흥신 장군이 목숨을 바치며 지키려 했던 곳이다. 다대포에서의 승리는 그날의 아픔을 되갚는 값진 승리이기도 했다.


몰운대에는 부산대첩 당시 순국한 정운장군을 기리는 비가 세워져 있다.


옛 절영도. 바다에서 본 영도 풍경. 영도 목장원에는 부산대첩을 기리는 안내비가 설치돼 있다. 
옛 절영도. 바다에서 본 영도 풍경. 영도 목장원에는 부산대첩을 기리는 안내비가 설치돼 있다. 

서평포, 절영도해전

서평포는 지금의 감천항이다. 서평 앞바다에서도 왜의 대선 9척을 만났다. 모두 전투 의지는 없었던지 기슭에 줄지어 머물고 있었다고 한다. 3도의 수사와 조방장 정걸 등이 힘을 합쳐 모두 깨뜨렸다고 부산포 승첩을 알리는 이순신 장군의 보고서에 기록돼 있다.

취재진이 항해하는 배도 거침없이 서평포를 지나 영도앞바다에 도착했다. 흰여울 마을이 선명하게 보인다. 절영도에서도 왜의 대선 2척을 수장시킨 조선 수군은 주변을 정탐하면서 숨을 고른 뒤 적의 본영을 공격하기로 결정한다.

배가 서서히 초량목으로 향한다. 남항대교를 지나자 한껏 가까워진 육지. 해안도로 인근의 건물과 차량, 사람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선봉 왜선 4척이 초량목의 좁은 물길에서 마주 나온다.' 이순신은 원균, 이억기와 의논했다. 그리고 결론을 낸다. "우리 군사의 위세로 만일 지금 공격하지 않고 군사를 돌이킨다면 반드시 적이 우리를 멸시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독전기를 휘둘렀다.

영도와 초량 사이 초량목 입구. 지금의 영도대교 자리가 초량목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좁은 수로를 따라 이순신 장군은 장사진(일렬진)을 펼치고 진격했다. 
영도와 초량 사이 초량목 입구. 지금의 영도대교 자리가 초량목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좁은 수로를 따라 이순신 장군은 장사진(일렬진)을 펼치고 진격했다. 


초량목 좁은 물길 치열했던 해전

왜의 선봉선 4척은 조선 수군을 만나자 도망치기 바빴다. 그러나 초량목 양안 언덕 밑에 진을 치고 있던 왜군의 저항은 거셌다. 초량목 양안의 폭이 너무 좁다 보니 육지에서도 충분히 배를 공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전선이 돌진하자 배 안과 성안, 산 위 굴속에 있던 적들이 총통과 활을 갖고 산으로 올라 내려다보면서 철환과 화살을 빗발과 우박같이 쏘았다." 이순신 장군의 기록이다. 그런데 편전과 철환은 우리나라 무기. 포로로 잡힌 조선인이 우리 무기를 쏘아대는 것을 보고 여러 장수는 더욱 분개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다투어 돌진했다고 그날의 기록을 적었다.

장군전과 피령전, 철환 등 있는 모든 무기를 일제히 발사한 조선 수군에 의해 적의 기세기 크게 꺾였다. 그래서 적선 100여 척을 여러 장수가 힘을 모아 깨뜨렸다.

날이 저물자 적의 소굴에 머물러 있다 역습 당할 것을 우려한 장군은 배를 돌려 한밤중에 가덕도로 돌아와 밤을 지냈다. 전 원장은 천성항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녹도 만호 정운 장군이 이날 전투에서 전사했다. 이순신 장군은 애통함을 조정에 보고했다.

취재진이 탄 배가 부산항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그날의 전투는 이제 흔적도 없다. 대신 부산포의 동쪽 기슭(지금의 우암동 일대로 추정)에 빼곡히 정박한 왜선이 있던 자리엔 부두가 들어서 컨테이너들이 도열해 있다. 그리고 매립한 항구인 북항 일대는 해양수도 부산의 랜드마크가 되기 위해 개발이 한창이다.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가덕도신공항 예정지를 지나며 바라본 낙동강하구 장림포 방향. 상서로운 구름이 취재진을 반긴다. 
가덕도신공항 예정지를 지나며 바라본 낙동강하구 장림포 방향. 상서로운 구름이 취재진을 반긴다. 

가덕도신공항 그리고 부산항 미래

부산항은 이제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부산항만공사(BPA)는 부산 중구·동구 일원 북항을 국제해양관광 거점과 친환경 워터프런트로 조성해 부산의 랜드마크로 만드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08년부터 시작된 이 사업은 2027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부산항의 기존 무역 기능은 가덕도 인근 부산항 신항에서 대부분 담당하고 있다. 부산항만공사 이응혁 국제물류지원부 부장은 "부산항은 수출입만 1000만TEU(TEU는 20피트 컨테이너)가 넘는, 허브 기능이 강하고 정기노선이 많은 항구"라며 "전 세계를 보더라도 최고 수준의 엄청난 하역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부산항은 환적화물이 늘고 있는 추세다. 환적화물이 늘어나는 것은 화주들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라며 "부산항은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인근 가덕도신공항이 들어서면 해운과 항공, 육상을 다양하게 결합한 복합화물 운송이 가능해 부산항의 미래는 더 밝다"고 말했다. 특히 2030월드엑스포가 부산에 유치되면 부산의 관광 효과가 극대화되기 때문에 엄청난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부산항처럼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항구는 드물다고 한다. 그것은 이순신이 지키고 대한민국이 키웠기에 그 자양분으로 가능할 것이다. 431년 전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바쳐 구한 선현들의 피와 땀으로 우리는 존재한다. 그렇기에 부산은 여전히 나라의 관문으로, 세계로 향하는 교두보로 지속성장할 것이다.

고성한산마리나를 모항으로 삼고 있는 미에리호. 
고성한산마리나를 모항으로 삼고 있는 미에리호. 

▲요트 미에리호

미에리호는 핀란드 노티캣(Nauticat) 요트 회사에서 1997년 제조한 케치(Ketch)형 38피트급 모터세일러다. 케치형이랑 2개의 마스트를 갖춘 범선 형태를 말한다. 즉, 메인 세일이 두 개란 것이다. 일반적으로 케치에는 헤드세일(Jib) 별도로 있는데 미에리호는 두 개의 헤드세일이 있어 다중헤드세일 케치로 보면 된다.

전장은 11.43m이고, 폭은 3.4m다. 배수량은 11톤. 엔진은 100마력 디젤 엔진으로 기주는 6~7노트의 속도가 나온다. 세일을 펼칠 때의 범주 속도는 4~5노트다.

임진왜란 당시 판옥선의 크기는 길이 32m, 선폭 8.7m, 높이 5.56m이며, 선체 중량은 140톤 정도였다고 한다. 미에리호를 판옥선과 비교하면 3분의 1 크기다. 미에리호는 판옥선이 아니라 부속선인 협선과 크기 면에서 유사하다.

기록에 따르면 협선은 승선 인원이 3인 정도였다고 한다. 반면 판옥선은 격군만 110명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조선 군함이었다.

미에리호는 이번 답사 항해에서 손현중 선장과 요트 면허에 소형해기사 면허까지 취득한 이우교 선장이 키를 잡았다. 가덕도 천성항에서 부산으로 가기 위해 파도가 심한 가덕도 남쪽 등대를 지날 때는 선박 면허가 있는 전재문 원장이 잠시 키를 잡기도 했다.

미에리호가 모항으로 돌아오는 항해는 부산 해양대 부두에서 출발해 중간 기항지 없이 논스톱으로 당항포 고성한산마리나까지 진행했다. 이 항해에는 해양 탐사 첨단 기기 전문업체인 (주)볼시스의 이주홍 부장과 카타마란 요트 선주 부자가 동참했다. 볼시스 이주홍 부장은 해군 소령 출신으로 올해 예편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은 특히 격군과 휘하 장수를 아꼈다. 전투 중에도 오직 전투에 신경 쓸 것을 주문했다. 왜군의 수급을 베는 일보다 싸움에서 이기고 아군을 돕는 일이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바다 위에서의 전투나 작업은 육지의 그것과 다르다. 바다를 제대로 알고, 부하와 혼연일체 하는 정신의 이순신 장군이 있었기에 임진왜란 이순신 수군 전승 신화가 가능했다.



※이 기사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주관한 지역신문 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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