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이재희 기자 외 2명의 ‘이순신의 바다, 옛 뱃길로 톺아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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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으로 고증한 이순신의 부산대첩
임진왜란 판세 바꾼 대첩으로 기록
가덕도 부산항 지정학정 위치 중요성
대륙의 관문, 해양의 전초기지로 부각
신선대에서 본 부산항. 멀리 부산항대교 뒤로 북항재개발지역도 보인다.
431년 전 10월 부산항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역사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을 떠올릴 것이다. 그해 10월 부산에서는 이순신 장군과 3도 수군의 연합 함대가 부산포에 머물고 있던 일본군의 본영을 깨뜨린 '부산대첩이 있었던 날로 역사에서 기록하고 있다.
그해 음력 9월 1일은 양력으로 10월 5일. 부산시는 1980년부터 부산대첩이 있었던 날을 ‘부산 시민의 날’로 기리고 있다. 특히 부산시는 지난 5월 부산항 북항재개발지역의 중심 도로 이름을 '이순신대로'로 명명했다.
이순신대로는 부산세관에서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을 잇는 주요 도로로 북항재개발 지역 중앙을 관통한다. 총연장 2.5km 왕복 8차로인 이순신대로는 북항 재개발지의 중심 도로로 활용될 예정이다.
출항을 기다리고 있는 미에리호. 부산대첩 당시 이순신 장군은 새벽닭이 울자 가덕도에서 출항했다.
<부산일보> 특별취재팀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4차 출정이자, 장군 스스로가 '대첩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고 평가한 부산포해전의 옛 뱃길을 좇아 그대로 항해하기로 했다. 이순신 장군의 호국 의지와, 부산항·가덕도의 지리적 중요성을 다시 새겨 2030부산월드엑스포를 준비하고 있는 대한민국과 부산 시민에게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서다. 조선 수군의 주력 전함 판옥선의 속도를 느끼기 위해 선박은 바람으로 가는 범선(요트)을 준비했다. 범선은 시속 6노트 내외로 움직이는데 판옥선의 속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순신 장군은 여수 전라좌수영을 출발해 부산포까지 진격했다. 취재진은 전 과정을 답습할 수 없어 거제에서 부산포까지의 항로를 직접 체험했다. 그리고 나머지 구간은 차량으로 현장을 방문해 그날의 분위기를 체감했다.
여수 이순신광장에 있는 이순신 장군 벽화.
4차 출정, 부산대첩을 일구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수영의 본영인 전남 여수에 진을 치고 있었다. 임진왜란 발발 후 이미 3차례 출정을 통해 승리의 기록을 차곡차곡 쌓았다. 왜군 본진이 있는 부산포를 공략하기 위해 이순신은 신중하게 움직였다. 전라우수영 이억기 장군과 일찌감치 연락해 약 20여 일을 합동 훈련했다. 그리고 음력 8월 24일 여수 전라좌수영을 출발해 남해 관음포에 도착한다. 남해 관음포 일대는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이순신 순국공원을 만들어 장군을 기리고 있다.
남해 관음포. 4차 출정에 나선 이순신 장군이 첫 밤을 보낸 곳이다.
통영 당포항. 이순신 장군이 둘째 밤을 보낸 곳이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 경로.
관음포에서 하루를 지낸 조선 수군은 다음 날 사량도까지 가서 원균의 경상우수영 수군과 합류한다. 바야흐로 조선 연합수군 함대가 완성된 것이다. 이어 연합 함대는 통영 당포에서 하루를 지낸 뒤 다음 날 저물 무렵 출발해 견내량을 지나서 27일에는 진해 원포까지 간다.
여수 진남관은 당시 전라좌수영의 집무실. 진남관 유물전시관 박현숙 문화해설사는 여수에서 출발한 이순신 장군이 부산까지 어떻게 진격해 갔는지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당항포에 새벽이 오고 있다. 출항의 시간이다.
당항포항에 새벽이 밝아온다
당항포는 이순신 장군이 2차 출전 당시 대승을 거둔 전적지다. 음력 6월 5일 호리병 모양의 항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적을 유인해 적선을 궤멸시킨 전투이다. 취재진이 타고 갈 배는 당항포 인근 고성한산마리나에 정박하고 있었다. 새벽부터 부산에서 차를 달려 배가 있는 마리나에 오전 6시 이전에 도착했다. 막 새벽이 오고 있다.
오늘 가야 할 바닷길은 약 58마일이라고 미에리호 손현중 선장이 미리 알려주었다. 항해에는 대략 10~12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손 선장은 국립해양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수중로봇 연구 관련 박사학위를 받은 인재. 요트는 취미이지만, 본업 못지않은 애정을 갖고 있다. 미에리(Mieli·핀란드어로 ‘마음’, ‘정신’)호는 핀란드산으로 청각과 시각 장애가 있는 손 선장이 신체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도전하려는 의지로 선명을 지었다.
배가 서서히 마리나를 벗어나자 넓은 바다가 펼쳐진다. 양안이 다 보여 실은 호수 같은 바다. 좁은 수로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니 동진교가 눈앞에 보인다. 손 선장은 "이곳 좁은 수로에서 잠복한 조선 수군이 당항포 해전의 패잔병까지 모조리 무찌른 곳"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동진교를 지나자 진해만이 펼쳐진다.
진해만에 들어선 손현중 선장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진해만 풍경은 아름다웠다
미에리호가 돛을 펼쳤다. 4개의 돛을 가진 이 배는 북유럽의 계절풍을 잘 활용하도록 설계되었다. 진해만의 바람은 방향이 일정치 않아 메인 세일과 짚 세일 하나만 펼쳐 항해를 했다. 조선 수군의 격군들도 판옥선의 돛을 펼치면 조금씩 쉬어가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을까? 여수에서 본 거북선 내부에는 좁지만 선실과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화약과 식량을 저장하는 창고가 있었다. 새벽 일찍 출발한 취재진도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배를 채웠다. 달리는 배 위에서 라면을 먹기가 쉽지 만은 않다.
남해는 모두 이순신의 바다라 해도 무방하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7년 전쟁 동안 이순신이 누비지 않은 남해는 없을 정도다. 항해하는 배의 왼편으로는 원전항 뒤로 합포해전 격전지가 있다. 오른쪽 거제도 쪽은 원균이 칠천량에서 패한 아픈 현장이 보인다.
마산합포구 쪽의 산 그림자가 산수화처럼 아늑하고 평화로웠다. 아무리 착한 전쟁도 평화보다는 못할 것일까. 멀리 가덕도가 보이기 시작하자 바다가 살짝 거칠어진다.
부산강서문화원 전재문 원장이 천성진터를 설명하고 있다.
가덕 천성진성, 천성항은 교두보
"이순신 장군은 이곳 가덕도에서 3박 4일을 머무르며 부산대첩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8월 28일 천성 선창에서 하룻밤, 그리고 다음 날인 29일 장림포해전을 치른 뒤 가덕 북변에서 하룻밤 등 이틀 밤을 보낸 뒤 9월 1일 새벽 드디어 부산포로 진격했고, 늦은 밤 다시 가덕으로 돌아와 하루를 쉰 뒤 연합 함대를 해산했습니다." 부산강서문화원 전재문 원장이 생생하게 설명해 주었다. 전 원장은 취재를 돕기 위해 가덕도 천성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천성항 정박은 가덕도 천성어촌계 구종성 어촌계장이 직접 항구로 나와 안내해 주었다. 구 어촌계장은 전 원장과 함께 이순신 장군의 얼을 간직하고, 기리고자 하는 가덕도의 주민이다. 두 사람은 2012년 강서문화원 주관 강서구가 천성진성터에서 지낸 ‘부산해전 승첩기념 대제'를 주도적으로 준비하기도 했다.
천성진성은 천성항 선창에서 도보로 10여 분 남짓 걸어서 도착할 수 있었다. 전 원장은 "천성진성은 항구와 매우 가까워 총통의 사거리에 들기에 왜적도 오래 농성하는 성이 아니었다"며 이순신 장군도 그 이유로 천성 선창에서 밤을 지냈다"고 설명했다.
가덕도에는 2029년 신공항이 건설된다. 가덕도신공항이 완성되면 영남·전라권 항공 이용객 편의 증진은 물론 지상 접근거리와 비용도 감소하고, 기존 도로나 철도의 혼잡도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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