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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칼럼-이진우 매일경제 논설실장] 헌법재판소 '만장일치'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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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2회 작성일 2025-03-0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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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내주 탄핵심판 판결
만장일치로 분열 못막아
재판관 찬반 공개가 순리
'국민 통합' 메시지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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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만장일치로 결정하자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많은 국민이 잊고 있지만, 이날 시위로 인해 5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민 대다수가 박 대통령 탄핵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던 그때도 그랬다.

지난달 25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변론이 종결되면서 이제 최종 결론만을 남겨놓고 있다. 전례를 감안하면 늦어도 다음 주중에는 결판이 날 것이다.

나는 헌재 평의가 어떤 기류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재판관들의 헌법적 판단이 자연스레 일치됐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됐다. 하지만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심판 과정 등을 보면 재판관들의 의견이 엇갈릴 개연성은 충분해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이번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만큼은 만장일치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았으면 한다.

법도 재판관들의 숫자 대결을 상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법은 심판 정족수를 따로 정해놓았다. 재판관의 다양한 판단을 염두에 뒀다는 의미다. 만장일치가 더 가치 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법에 따라 현재 8명인 재판관 가운데 6명 이상이 비상계엄의 위법·위헌성을 인정하면 윤 대통령은 파면된다. 하지만 3명 이상이 정당한 통치행위로 판단하면 윤 대통령의 직무 정지는 즉각 해제된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헌재가 만장일치 결론을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본다. 헌재가 딱 부러진 결론을 내려주는 것이 정치적 논란과 사회적 분열을 최소화하는 길이라는 통념 때문이다. 불복의 여지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국민적 공감대가 있고, 절차적 논란이 없었다면 일리가 있는 얘기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현재 여론 구도는 대략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은 탄핵에 찬성하고, 4명은 반대한다는 것이다. 정치 성향·세대·지역별로 민심이 양분돼 있다. 서로를 극우 내란 세력과 반국가 좌파 세력으로 손가락질하며 매 주말 광장에서 아슬아슬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상대편의 씨를 말리겠다는 섬뜩함까지 느껴지는 분열 양상이다.


이런 마당에 인위적인 헌재의 만장일치는 큰 효능감을 주기 어렵다. 충돌과 갈등의 불쏘시개가 될 소지마저 엿보인다.

물론 헌재는 여론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다만 재판관들의 엇갈린 판단을 굳이 감추거나 분칠할 필요는 없다. 헌재의 고민을 드러냄으로써 탄핵 찬반 양측이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인정하고, 최소한 눈치라도 보도록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존중까진 못하더라도 말이다.

만장일치로 몰아가려는 분위기가 있다면 그 자체로 폭력적일뿐더러 의심을 사는 길이기도 하다. 재판관 개개인의 양심을 희석시키는 기회주의적 연출로 비치기 십상이다. 헌재와 정치권은 박 전 대통령 만장일치 탄핵 결정에 대해 뒷말이 무성한 이유를 되새겨봐야 한다. 찜찜한 대목이 여럿인데 소수의견 유무도 그중 하나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당시 소수의견이 끝내 공개되지 않자 논란이 빚어졌다. 결국 이듬해 법이 개정돼 '재판관은 결정서에 의견을 표시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추가됐다. 소수의견을 실명으로 명시하라는 것인데, 이게 재판관들에게 부담을 줘 만장일치 선호로 이어졌다는 시각이 있다. 박 전 대통령 만장일치 파면의 배경이라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치철학자 샹탈 무페의 말마따나, 문제는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있다. 관건은 다양한 생각을 받아들이는 자세다. 헌재도 그랬으면 좋겠다. 갈라선 국민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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