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감사 칼럼- 김창균 조선일보 논설주간] 극단 충돌 부추기는 '탄핵' 미국식으로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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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4회 작성일 2025-04-03 10:56본문
국회 의결만으로 직무 정지
기각 뻔해도 날림 탄핵
파면이면 두 달 내 大選
여야 정권 교체 공방 총력
어차피 불거질 개헌 논의 때
권력 구조와 함께 손봤으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를 이틀 앞둔 2일 서울 헌법재판소 주변에 경찰버스로 만든 차벽이 설치돼 있다./고운호 기자
헌법학 최고 권위자인 고(故)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의 ‘헌법학 신론’을 오랜만에 들여다봤다. 탄핵 제도에 대해 “사회 심리적 효과를 노리는 것 이외에는 실효성이 없는 헌법의 장식물’이라고 썼다. 200년 넘게 대통령제를 운영해 온 미국에선 ‘하원 소추, 상원 심판’을 거쳐 대통령이 파면된 적이 없거니와, 이 책 13판이 나온 2003년까지는 한국에서도 탄핵이 작동한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새 한국 정치에서 탄핵은 ‘뉴 노멀’이 돼 버렸다. 1987년 헌법 이후 대통령 8명 중 노무현, 박근혜, 윤석열 세 명이 탄핵 심판을 받았다. 대통령 아닌 공직자가 탄핵 소추된 것도 전 정권까지는 딱 1건이었는데, 윤 정부 들어서만 13차례다. 야권이 대통령 아닌 공직자를 탄핵할 수 있는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적은 1988년 13대 총선(노태우 정부), 2000년 16대 총선(김대중 정부), 2016년 20대 총선(박근혜 정부) 등이 있었지만 탄핵 카드를 꺼내 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탄핵은 정치권을 그라운드 제로로 만드는 핵무기여서 함부로 쓰면 함께 파멸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재명 민주당’은 달랐다. 탄핵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30번이나 발의한 탄핵안에 국민들이 무감각해질 정도였다. 대통령이 “줄탄핵 패악질 때문에 계엄을 했다”고 하자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놀랐다. 계엄령을 계몽령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처음 망설였던 길도 몇 번 다녀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앞으로도 범야권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 거침없이 탄핵 카드를 꺼내 들 것이다. ‘실효성이 없는 장식물’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그래서 요술 항아리를 빠져나온 ‘지니’가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제도를 고쳐야 한다.
‘탄핵 소추의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 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이 정지된다’는 헌법 65조 3항이 그 첫째다. 헌법을 만든 사람들은 “국회 재적 과반 의결로 소추안이 통과된 공직자라면 심각한 결격 사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일단 직무를 정지시킨 상태에서 헌재 심판을 받도록 했다.
‘이재명 민주당’은 그 상식적 믿음을 저버렸다. 악덕 공직자를 ‘파면’하기 위한 탄핵을 멀쩡한 공직자를 일정 기간 ‘직무 정지’시키는 용도로 활용했다. 소추부터 심판까지 직무 정지 기간은 한덕수 권한대행이 87일로 짧았고, 이재명 대표 수사를 담당하던 이정섭 검사가 복귀하기까지는 270일이나 걸렸다.
민주당은 탄핵 직무 정지로 방통위를 무력화했다. 윤 대통령이 임명한 방통위원장 이동관, 김홍일, 이진숙 3명 모두에, 이상인 직무대행까지 탄핵안을 발의했다. 방통위가 친야(親野) MBC 지휘부를 교체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였다. 윤 정권이 출범한 지 3년이 다 되도록 MBC는 문 정권이 꾸려 놓은 지휘부가 그대로 자리를 지키며 반윤(反尹) 미디어로서 소임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반면 미 하원에서 탄핵 소추안이 통과된 후 상원에서 기각된 클린턴, 트럼프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된 적이 없다. 우리도 이런 제도였다면 민주당이 9전 9패할 날림 탄핵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탄핵으로 대통령이 파면됐을 때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는 헌법 68조도 극단적 정치 충돌을 부추긴다. 대통령이 쫓겨났다는 후폭풍 속에서 두 달 만에 치르는 대선에선 야당이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야당은 탄핵 인용, 여당은 탄핵 기각에 올인한다. 지난 몇 달간 국민이 목격한 대로다. 미국에선 대통령이 사망이나 탄핵으로 궐위될 때 부통령부터 헌법이 정한 순서에 따라 대통령직을 승계한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소추됐을 때 “안정감 있는 펜스 부통령이 승계하는 게 오히려 낫다”고 믿는 공화당 사람들도 있었다. 대통령과 러닝메이트로 선거를 치른 부통령이어야 승계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포드 대통령은 애그뉴 부통령이 부패 혐의로 사임하자 후임 부통령으로 임명됐다가 닉슨 대통령 사임에 따라 승계했다. 미국의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도 하원 의장이었던 주인공이 부통령과 대통령이 차례로 낙마함에 따라 대선을 치르지 않고 대통령이 된다. 대선에선 국민이 대통령과 집권당을 함께 선택한다. 그런 만큼 대통령을 탄핵하더라도 집권 세력에게 당초 임기는 보장해 주는 편이 옳다고 본다. 탄핵으로 대통령 선거 날짜가 계속 바뀌는 것도 후진적 양태다.
헌재가 4일 어떤 결론을 내리든 개헌 논의는 불거지게 돼있다. 권력 구조를 논의할 때 탄핵 관련 제도도 함께 손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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