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칼럼-이진우 매일경제 논설실장] 다시 신발 끈을 조여매는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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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3회 작성일 2025-04-03 10:51본문
펀더멘털 악화 의심해봐야
기존 국가구조 한계에 봉착
먹고사는 시스템 싹 바꿔야

2021년 4월 2일 원화값이 달러당 1127.5원에 마감됐다. 원화값이 고꾸라지기 시작한 게 대략 그즈음부터다. 그래도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4년 뒤 환율이 달러당 1500원을 육박하게 될 줄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확실한 온도계가 환율이다. 과거에는 원화값이 떨어지면 수출에 도움이 됐지만 지금은 다르다.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수입물가를 올려 내수를 움츠리게 하고, 유학비 등 해외에서 쓰는 원화 환산 비용도 늘어난다. 무엇보다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이 반영된다는 점에서 원화값 하락세는 불길한 징조다. 엔화 등 다른 통화와 따로 노는 '나 홀로 원화 약세'라면 더욱 긴장해야 한다.
원화값이 올 1분기 평균 1452.9원을 기록했다. 1998년 1분기 이후 최저다. 전문가들은 대외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의 관세전쟁, 대내적으로는 계엄과 탄핵 정국의 여파라고 분석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환율 그래프의 곡선은 냉정한 현실을 일깨워준다. 추세적으로 원화값은 2021년부터 내림세를 탔다. 다사다난했던 작년 4분기에도 1400원을 돌파했을 뿐이지 기울기가 드라마틱하진 않다. 펀더멘털 측면에서는 일찌감치 기조가 정해졌다는 뜻이다.
다만 역사적으로 원화값이 1400원대로 무너졌을 때 대형 사고가 많이 터진 것은 사실이다. 멀게는 외환위기와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때 그랬고, 가깝게는 레고랜드 사태 때 그랬다.
계엄이 선포된 지 넉 달이 흘렀다. 그동안 국론은 갈라졌고 온 나라가 정치에 정신이 팔려 있다. 그러다 보니 이상한 정서가 감지된다. 이 고비만 잘 넘기면, 4일 헌법재판소 선고가 내려지면 온갖 골칫거리들이 한꺼번에 사라질 것 같은 착각이다. 어림없는 얘기다.
한국은 한계에 봉착해 있다. 난삽한 정치판을 비롯해 추락하는 산업 경쟁력과 가계부채 증가, 사교육 광풍, 청년실업, 의정 갈등, 자영업 붕괴에 이르기까지 꾹꾹 누르고 꼭꼭 감춰 왔을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지고 있다. 트럼프와 탄핵 정국이 없었더라도 곧 터질 문제들이었다.
환율도 마찬가지다. 나는 국내외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든 원화값이 예전 같은 강세를 보이긴 쉽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약세가 심해질 수도 있다.
이제 산적한 난제들을 정리하고 갈 때가 됐다. 흔히 개헌을 해결책으로 꼽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헌법을 바꿔 국운을 되돌렸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보다는 국민들 먹고사는 시스템을 개비할 궁리를 해야 한다.
유럽식 사회적 대타협도 좋고,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말하는 '새 경제모델'도 좋다. 최근 31조원을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정의선 현대차 회장의 결정이 신호탄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세상 변화에 맞춰 먹고사는 구조를 바꾼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다.
세 나라 사례에서 위안을 얻는다. 네덜란드는 1982년 바세나르 협약을 시작으로 꾸준한 개혁을 통해 국가 대변신에 성공했다. 1970년대 유럽의 천덕꾸러기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묵직한 울림을 준다.
현재 진행형인 나라들도 있다. 석유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국가적 결단을 밀어붙이는 사우디가 그렇다. 그리고 결말을 두고 봐야겠지만 거침없이 변화를 꾀하는 트럼프의 미국도 참고 대상이다.
관건은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매는 각오다. '이러다 죽겠다. 뭐라도 해보자'는 국민적 각성에 이르렀을 때 활로가 뚫릴 것이다. 국운이 다하지 않았다면 골든타임 안에 그런 순간이 올 것이다.
모두가 위기를 외치는 요즘, 그 순간이 뜻밖에 빨리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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