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칼럼-정용관 동아일보 논설실장] “이러다 韓 대행이 尹 임기 다 채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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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0회 작성일 2025-03-31 10:17본문
헌재 재판관들 ‘5대3’ 데드록에 걸린 것 맞나
마은혁 극한 대치 결국 큰 禍根이 될지…
탄핵 선고 4월 18일 이후로 넘기는 건 최악
8인, ‘이념의 잣대’ 아닌 ‘법의 잣대’ 따르길

“이러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윤석열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다 채우는 것 아냐?”
8인 체제의 헌법재판소가 ‘5(인용) 대 3(기각 혹은 각하)’의 데드록(교착 상태)에 걸렸다는 관측과 함께 이런 얘기까지 나온다. ‘인용파’로 분류되는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기각될 가능성을 우려해 평결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고, 자신과 이미선 재판관의 임기 만료일인 4월 18일 이후로 미룬 채 퇴임할 수 있으며, 후임 재판관 공백 속에 윤 대통령 탄핵심판은 ‘장기 미제’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상하기도 힘든 시나리오지만 만약 ‘5 대 3’ 구도가 사실이라면, 문 대행도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일 수는 있다. 이는 단지 인용이냐 기각이냐의 문제만은 아니다. 차라리 헌재 재판관들의 의견이 ‘4 대 4’로 나뉘고 있다면 기각이 되더라도 결정 자체엔 흠이 없다. 이 경우는 마은혁 후보자가 임명이 되든 안 되든 최종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5 대 3은 심각한 ‘혼란의 불씨’를 안고 있다. 마 후보자가 임명됐다면 6 대 3으로 인용될 수 있는 구도이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별명이 ‘마르크스’였다는 마 후보자가 헌재 재판관에 적합한 인물인지의 논란은 차치하고 어쨌든 그는 국회 추천 의결을 거쳤고 헌재는 두 차례나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했다. 정부 측이 임명을 안 하는 바람에 기각이 됐다면 탄핵 찬성파들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 마은혁 극한 대치가 큰 화근(禍根)이 될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드는 이유다.
물론 ‘5 대 3’은 세간의 관측일 뿐 헌재 기류는 전혀 다를 것이란 분석도 있다. 비상계엄 선포 요건과 절차가 헌법에 부합했는지, 국가비상사태가 맞는지, 계엄군을 국회와 선관위에 보낸 게 위헌 위법했는지 등 큰 줄기에 대해선 큰 이견이 없지만 ‘내란죄 삭제’ 등 세부 쟁점에 대한 소수 의견 문제를 어느 선까지 어떻게 담을지를 놓고 조율하느라 시간이 걸리고 있을 것이란 얘기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확인된 팩트는 없고 각자 기대감, 또는 불안감이 반영된 ‘가설’에 가깝다고 보는 게 더 객관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아전인수 해석이 난무하고 국가적 혼란이 장기화하고 있는 것은 헌재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초시계까지 등장시킨 변론 과정이 단적으로 보여주듯 지나치게 속도전을 펼치다 엉뚱하게 절차 시비의 수렁에 빠진 형국이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장기화할 경우 벌어질 혼란과 폐해는 상상만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일 터이지만, 더 답답한 것은 여든 야든 당면한 위기 상황을 국익 차원에서 해결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을 도모하는 데만 더 관심을 쏟는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일각에서 헌재 선고가 ‘4·18 이후’로 미뤄지는 게 차라리 낫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헌재 선고가 이재명 2심 이후로 나와야 한다더니 2심에서 무죄가 나오자 멘붕에 빠져 이젠 5 대 3이면 즉각 기각, 그게 아니라면 아예 선고를 늦추자며 끝없이 희망회로를 돌린다. 대법원이 이 대표에 대해 ‘파기자판(직접 판결)’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민주당도 다르지 않다. 이 대표 사법리스크가 현실화하기 전에 탄핵심판을 끝내고 속히 조기 대선 국면으로 가는 것에만 연연했을 뿐이다. 헌재 선고가 하염없이 늦어진다면 그 책임은 대권 잿밥에만 눈이 어두웠던 이 대표와 민주당에도 있을 것이다. 윤석열 탄핵이 곧 이재명 지지는 아니라는, 단지 국가의 정상화를 기대하는 합리적 민심이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그래 놓고 여야 할 것 없이 헌재 재판관들의 이념이나 개인 성향을 따지며 압박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딱하다. 특히나 국가 시스템의 안정, 대한민국 정통성의 유지 발전이란 보수의 가치는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헌정 질서를 흔드는 듯한 ‘우파 포퓰리즘’은 ‘좌파 포퓰리즘’ 못지않게 심각해 보인다. 여권의 차기 주자들 지지율을 다 합쳐 봐야 20%밖에 안 되는 것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벌써 4월인데 여권 모습을 보면 마치 금세 녹을 눈덩이만 굴리고 있는 것 같아 하는 얘기다.
어쨌든 한 대행이 윤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채우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 이제 ‘8인의 시간’이다. ‘5 대 3’ 데드록에 걸렸든, 최종 결정만 남았든 헌재는 ‘4·18’ 전에 답을 내놔야 할 것이다. 8인 모두 ‘이념의 잣대’가 아닌 ‘법의 잣대’에 따라 역사에 남을 지혜로운 결정을 내릴 것이라 믿고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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