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칼럼-이진우 매일경제 논설실장] 흔들린 주 52시간 철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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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9회 작성일 2025-03-19 10:20본문
제도 개선 공감대 커지는 성과
계속 두드리면 결국 열릴 것
노동개혁 '좋은 스타트' 삼길

'주 52시간 근무제'를 둘러싼 논쟁은 한국 사회의 병리현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남의 뒷다리를 잡는 어깃장이 제도로 만들어지고, 누군가의 기득권으로 굳어지는 패턴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이런 부조리가 가능한 이유는 경쟁 기피 세력과 포퓰리즘 정치 세력의 야합이 워낙 공고했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2018년 도입 때부터 말썽이 예고됐던 제도다. 무엇보다 예외 없는 획일성이 숱한 문제를 일으켰다. 그러다가 반도체특별법 추진 과정에서 전기를 맞는다. 고소득 연구개발(R&D) 인력에 한해 예외를 인정해주자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조항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때 야당 대표가 긍정적인 입장을 내놓기도 했으나 야당 내부와 노동계의 반발에 밀려 없던 일이 됐다.
뻘쭘해진 정부는 지난주 특별연장근로 특례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우회로를 뚫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막막한 심정은 알겠지만 민망하다. 그 또한 꼼수일 뿐이다.
비록 제도 교정에는 실패했지만 나는 이번에 중요한 첫발을 뗐다고 생각한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손봐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확 넓어졌다. 한 번 실패했다고 기죽거나 포기할 일이 아니다. 제도적 오류를 합리적으로 바로잡은 선례로 삼는다면 노동개혁의 좋은 스타트가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무제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무모한지를 끊임없이 설득해야 한다. 몇 가지 전제에 동의를 구하는 방식이면 된다.
그 첫 번째 전제는 2018년과 2025년의 일하는 문화가 판이하다는 점이다.
법정 근로시간이 주 68시간이었던 2018년 이전에는 실제로 장시간 근로자가 많았다. 게다가 일을 더 해도 수당이나 휴가를 못 챙기는 경우가 잦았다. 지금은 딴판이다. 전부는 아닐지언정 대부분의 사업장 풍경은 확연히 달라졌다.
사실 주 52시간은 상당한 격무다. 8시간 정상근무 외에 매일 2시간 이상 추가 근무를 해야 채워진다. 주변을 돌아보시라. 매일 야근과 '공짜 근로'에 내몰리는 동료가 있는지. 법의식부터 과거와는 비교 불가다. 일감이 몰리거나 몰입이 필요할 때 융통성을 발휘한다고 해서 대세가 뒤집힐 일은 없다.
두 번째 전제는 달라진 산업 구조다. 이제는 모두가 부지런히 일할 필요가 없다. 어지간한 일은 기계와 소프트웨어에 맡기면 된다. 주 52시간? 전혀 문제없다. 다만 여기서도 융통성이 중요하다.
1995년 '노동의 종말'을 쓴 제러미 리프킨은 0.1%의 창의적 인재와 그들을 알아보는 0.9%의 통찰력 있는 인재가 나머지 99%를 먹여 살린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런 인재가 더욱 절실해진다.
유능한 소수가 더 일해야 경쟁력이 생긴다. 그들의 고단함은 충분한 보상으로 응원해주면 된다. 미국, 중국, 일본, 대만 등 경쟁국에선 다들 그렇게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만 그게 안 된다. 가히 국가 차원의 자살골이다.
또 다른 전제는 현행 주 52시간 근무제가 청년에겐 '사다리 걷어차기'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물려받을 재산이 없는 청년이 투기나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남보다 열심히, 더 많이 일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이걸 국가가 금지한다. 일하는 자유를 박탈함으로써 성공할 기회, 부자가 될 기회까지 빼앗는 셈이다. 청년들은 장막 뒤에서 웃음 짓는 기득권자가 누구인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이번에 주 52시간 철옹성이 크게 흔들렸다. 불온한 야합에도 균열이 갔다. 다음에는 더 크게 요동칠 것이다. 끊임없이 두드리면 문은 반드시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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