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칼럼-김영희 한겨레 편집인] ‘875원 대파’라는 방아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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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03회 작성일 2024-04-17 15:22본문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정권에서나 대통령 방문에 과잉의전이나 보여주기식 홍보는 있어왔다. 그런데도 특별히 지지 당이 없는 사람들까지 분통을 터뜨리는 사안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물가 현장점검을 위해 18일 서울 양재 하나로마트 채소 코너를 찾아 대파를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김영희 | 편집인
지난달 중순 보수 성향 지인들은 총선 기류가 확 바뀌었다며 여권 내부의 전망치를 전했다. 그러면서도 “김건희 여사가 자중하니 다행이지만 안심할 수 없다. 또 언제 나설지 몰라”라고들 말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들도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이 정도 ‘리스크’가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지금 여권은 초비상 분위기다. 이종섭 주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사의 조기 귀국이 상당 부분 반영된 3월 3주차 갤럽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서울지역 지지율은 다시 올랐지만 대전·세종·충청에서 큰 폭으로 빠졌다. 군대에 간 청춘을 지키지 못한 국가의 문제, 수사 과정에 대한 외압·은폐 의혹은 그 자체로 폭발력이 크다. 망명도 아니요, 대통령이 중대 사건의 피의자를 ‘특명 전권대사’로 내보내며 공정과 상식을 뒤엎은 초유의 사태는 사람들 뇌리에서 쉽게 지워질 순 없다.
지난주 보수지들 지면에선 연일 탄식이 흘렀다. 권력에 대한 ‘감시견’이 아니라 기득권화된 미디어가 지배시스템이 흔들릴 땐 위협이 되는 존재를 향해 짖는 ‘경비견’ 역할을 한다는 지적(‘장면들’, 손석희)을 떠올린 이들도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 때인 2015년에도 그랬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기류의 변화를 이 대사 건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국민들의 인내가 이미 임계치 가까이에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조국혁신당의 약진 또한 그 결과지, 원인은 아니다.
요동치는 민심은 ‘875원 대파’ 파장에서 분명히 읽힌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정권에서나 대통령 방문에 과잉의전이나 보여주기식 홍보는 있어왔다. 할인에 할인에 할인을 거듭해 그렇지 아예 없는 가격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특별히 지지 당이 없는 사람들까지 분통을 터뜨리는 사안이 됐다. 보수 진영에서도 “총선 이후 재개하라”고 할 정도로 노골적 선거개입이 뻔한 민생토론회를 22차례 강행하며 개발 공약을 남발하지만 정작 국민들 형편은 모르는 대통령. 가끔 해맑게 아이들과 술래잡기하는 모습의 대통령실발 사진까지 더해지니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심정이 되는 건 당연하다. 3월 3주차 갤럽 조사에서 정부 견제론은 정부 지원론보다 15%포인트 높았는데, 중도층에선 그 차이가 더 컸다.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의 경우 든든한 지지층이던 60대에서조차 지난달 초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논란이 최고조일 때에 이어 다시 긍정과 부정이 엇비슷해졌다.
대통령이 ‘공산전체주의 세력’을 꺼내든 지난해 8·15 경축사를 기점으로 홍범도 장군 동상 이전 등 국민 갈라치기와 이념 전쟁을 본격화하는 사이, 생활 물가는 치솟고 과학기술계 연구개발 예산 삭감, 출판계 예산 축소 같은 일이 줄줄이 벌어졌다. 뒤늦게 민생토론회를 돌고 당이 민생특위를 설치한다고 진정성이 전해질까. 의료계 파업에 대한 국민들 불안감이 커지자 일요일 저녁 불쑥 ‘의사와의 대화’를 꺼냈지만 지뢰밭이다. 무엇보다 이미 구조화·고질화된 윤 대통령의 리스크가 사라질 가능성은 낮다. 비례 후보에서 뒤 순위를 배정받자 사퇴한 검찰수사관 출신 20년 지기를 보란 듯이 바로 대통령실 특보에 임명했다. 누구나 사과와 제2부속실 설치 정도는 최소한의 조처로 예상한 김건희 여사 ‘명품 백’ 수수는 애당초 뭉갰다. 리더의 고집은 때론 돌파력과 추진력이 되지만, 법치와 상식을 뒤집을 땐 아집과 독단일 뿐이다.
민주당이 잘해서 나타난 기류의 변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결과는 두고 봐야 한다.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막말’을 한 후보 논란에 ‘정치인에 대한 공격은 문제되지 않는다’면서도 이재명 대표는 당내 비판적 의원 하나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후보가 줄줄이 바뀐 지역구 유권자에게 사과도 없다. 나라를 책임지는 대통령 자리의 무게를 야당 대표의 그것에 비할 순 없다. 하지만 민주당의 이런 모습에 앞으로 어떤 정치와 어떤 개혁을, 누구를 대상으로 하려는 건지 의문을 품게 된 이들이 적잖다는 점을 뼈아프게 여겨야 한다. “이념 기준으로 선을 그어볼 때 단기전인 선거는 적극 지지층을 기반으로 중도층의 일부를 끌어와 한 표라도 상대보다 더 얻으면 이긴다. 장기적인 개혁은 다르다. 적극 지지층에 너무 집착하면 이념 공방만 벌어지며 승부가 나지 않는다.”(‘개혁의 정석’, 전주성)
얼마 전 연세대 복지국가연구센터와 랩(LAB)2050이 21대 국회에서 통과된 2877건의 법안을 분석하며 ‘삶의 질 관점’에서 입법 활동 및 정당을 평가하자고 제안한 데 눈길이 갔다. 지난 23일, 한겨레 뉴스레터팀이 ‘우리 동네 국회의원 제대로 뽑는 법’을 주제로 연 유료 행사는 참석자들이 예상인원을 훌쩍 넘고 진지한 열기로 가득했다. 대담자로 나온 이철희 전 의원은 “투표장에 갈 때만 유권자 역할을 하지 말고, 4년 내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유권자들의 무관심을 정치인들이 무서워하는 듯하지만 사실 그걸 제일 원한다”고 말했다. 내 삶을 바꾸는 정치를 끈질기게 묻는 이들이 늘 때, 정치가 민심을 두려워한다. 그것만이 희망 아니겠는가.
원문보기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337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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