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권혁순 강원일보 논설주간] 2021년 영웅, 마스크를 쓴 국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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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67회 작성일 2021-12-22 10:27본문
아파트 값은 하늘 높은 줄 몰랐던 한 해
수많은 청춘, 일자리 찾지 못해 '방황'
당장 할 수 있는 것 없어도 희망을 꿈꿔야
2021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중국 송의 시인 방악(方岳)이 “당당히 가는 해를 누가 잡을 수 있으랴(歲堂堂去誰能守)”라고 읊었다. 우리는 이제 2022년을 향해 가고 있다. 연말연시 이맘때면 직장인은 더 바쁘다. 걸핏하면 회식이 생긴다. 명분은 만들면 된다. 오는 사람과 한잔하고 가는 사람과 술잔을 기울이며, 프로젝트가 성공해 먹고 실패해 또 마신다. 인사도 투자도 구매도 마케팅도 밤에 오간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질펀하게 앉아 맞은편 상대와 맞부딪치는 술잔이 거래와 승진과 업무 협의의 마무리다. 직장 내 상사와 고기를 몇만 번 뒤집어야 승진을 한다드니, 폭탄주를 몇 잔 만들어 돌려야 임원이 된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여기서 나온다. 때로 이 자리는 보스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자리다. 또 취기를 빌려 특정지역 출신, 학교, 성별 경쟁자들을 싸잡아 비하하는 위험한 편견의 장으로 전환된다.
밤사이 마음속 은밀한 욕망을 나눈 이들 사이의 연대감은 아이디어와 문제 해결 능력을 ‘인간관계'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덮으며 낮의 조직문화를 장악한다. 그런 연말연시 풍경을 코로나19가 완전히 바꿔 놓았다. 돌이켜 보면 지난 1년 동안 너무나도 많은 일이 터지고 번졌다. 물가와 아파트 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른다. 정부에서 온갖 방책을 내놓아도 한 번 움츠러든 경기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가진 자들은 남보다 더 가진 힘으로 유세를 떨고 있는데,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가지지 못한 것을 죄로 여길 수밖에 없는 허망한 현실을 탓할 뿐이다. 수많은 젊은이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하는 일 없이 사회로 내몰리고 있지만 누구도 묘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는 치정(癡情)처럼 얽혀서 말로는 국민을 위한다고 떠들면서도 자기네 권세 유지를 위해 서로 헐뜯으면서 파당 싸움에 힘을 쏟아붓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아무도 마음 편하게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조용히 보낼 수가 없다. 하지만 모두가 그저 안쓰럽고 착잡한 심경에 사로잡혀 제야의 종소리를 흘려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내년에는 훨씬 심각한 경제·안보 난제들이 몰려오고, 국가적 결단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다. 북미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한반도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하다. 국민이 나서야 한다.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가 그 기회다. 제야를 밝히는 촛불조차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상은 각박하지만 모두가 사람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힘이 있는 자가 약한 사람을 부축해야 하고, 가진 자가 헐벗은 사람을 돌보아야 하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다. 편 가르고 다투기보다는 모두 함께 나누며 더불어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올 한 해 국민 모두는 마스크를 쓰고 여기까지 왔다. 국민 모두가 영웅이었다. 가는 세월의 자락에 매달리기보다는 새해를 맞는 기쁨을 생각하자. 세상엔 생산적이지 않아도 가치 있는 일이 많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을 강조하던 지난 세기와 달리 오늘날은 상상력과 창조성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고독과 게으름이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말도 있으니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새해 계획표에 포함하는 건 어떨까. 성과에만 매달리지 않고 삶이 어디로 가는지 짚어 보면서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가려내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 훌륭한 생존법이다. 그것은 기적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올 한해 코로나19로 얼마나 힘들었나. 힘들어 죽겠다, 죽겠다 하면서도 지금까지 살아있는 게 기적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기적 같은 삶을 살아왔다. 새해에도 기적을 만들어내야 한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풍요와 희망을 꿈꾸자. ‘바다 위로 둥근 해가 서서히 떠오르는 아침/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살고 싶고 또 살고 싶고/ 웃고 싶고 또 웃고 싶고'(이해인, 해를 보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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