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백기철 한겨레 편집인] ‘떴다방’식 단일화가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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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05회 작성일 2022-01-17 10:04본문
백기철 ㅣ 편집인우리나라 선거판은 정말 역동적이다. 불과 일주일 전 국민의힘 내분 사태로 온통 시끌벅적하더니 어느새 야권 단일화가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선거 때면 등장하는 단일화는 잘 쓰면 특효약이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된다. 이번 대선의 단일화는 어느 쪽일까.후보
단일화는 1987년 대선 때 처음 등장했다. 당시 양김의 분열로 대선에서 패하면서 민주당 계열 정당에 단일화는 필수로 여겨졌다. 실제로 민주당 계열이 몸집이 큰 국민의힘 계열에 단일화로 맞선 경우가 많았다. 결과적으로 유의미했던 건 1997년 김대중-김종필의 ‘디제이피(DJP) 연합’,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정도다. 2012년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는 실패했다.
형세가 바뀌어 이젠 국민의힘 쪽에서 단일화는 필수라고들 한다. 여태껏 국민의힘 계열의 의미 있는 단일화는 지난해 4월 서울시장 보선 때 오세훈-안철수 단일화가 유일하다. 1997년 이회창-이인제, 2017년 홍준표-안철수는 단일화 논의 없이 각자 출마해 패했다.
논점은 단일화가 이번 대선에서 필승카드냐는 것이다. 단일화 얘기가 나온 지 벌써 35년이 됐고, 그나마 대선에서 유효했던 건 20년 전이 마지막이다. 단일화는 어쩌면 흘러간 옛 노래인지 모른다.
성공했다는 단일화도 들여다보면 속 빈 강정이다. 1997년 디제이피 연합은 발표 직후부터 노추, 야합이라는 비판에 휩싸였다. 후보를 양보하는 대신 국무총리와 내각을 반분하는 갈라먹기의 명분은 내각제뿐이었다. 내각제도 개헌 뒤 제이피에게 총리를 보장하는 것이었으니 노정객들의 철저한 나눠먹기였던 셈이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더 허약하고 급조됐다. 두 사람의 전격 합의로 단일화가 일사천리로 진행됐지만 한달여 뒤 파국을 맞았다. 합의문에는 정치개혁, 남북관계 발전, 경제개방과 같은 추상적인 구호밖에 없었다. 승리를 위한 동상이몽이었을 뿐 내용 없는 단일화였다.
단일화가 대선 승리의 필요충분조건이던 시절은 지난 것 같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힘을 합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맞서 괜찮은 구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승리가 보장되기 어려운 게 시대 흐름이다.
단일화가 원래 험난한 과정이지만 이번 역시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2012년에 이어 지난해 서울시장 보선까지 단일화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신 안철수 후보로서는 ‘남 좋은 일 시키는’ 단일화엔 전연 뜻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윤석열 후보나 주변 세력이 안 후보에게 제1야당 후보 자리를 쉽사리 내줄 것 같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단일화가 돼도 그게 끝은 아니다. 국민들은 정권을 바꾸고 싶어 하지만 바뀐 새 정부가 실력을 갖추길 원한다. 실력을 갖춘 정부냐는 지점에서 정권교체 욕구는 이리저리 굴절된다. 야권은 단일화로 정권이 바뀌면 그다음이 어떻게 되는지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윤석열, 안철수 후보가 이 대목에서 충분한 설득력을 갖춘 것 같지 않다.‘
단일화+알파’가 없다면 단일화는 성공하기 어렵다. 단일화와 함께 국민의 다양한 기대와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단일화는 승리의 보증수표가 아니다. ‘멸공’과 ‘여성가족부 폐지’ 구호로 퇴행하고, 새 정치를 외치다 가만히 앉아서 점수 따는 식으론 ‘단일화 너머’를 기약하기 어렵다.
단일화의 새 버전, 업그레이드된 단일화는 조율되고 합의된 가치와 비전,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먼저고, 나눠먹기는 그다음이다. 윤석열, 안철수 후보가 파괴력 있는 단일화를 이루려면 그 내용을 채우는 데 진력해야 한다.
야권 단일화 변수가 현실화한다면 진보개혁 진영도 단일화 논의에 빨려들 가능성이 있다. 범여권 역시 예전의 호흡 짧은 단일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책과 가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명히 하고 합의 가능한 정책 공조 리스트를 짜야 한다. 단일화를 넘어 연정에 준하는 정부 운영의 틀을 제시해야 한다. 흘러간 ‘떴다방’식 단일화로는 달라진 국민 눈높이를 맞추기 어렵다.
또한 이번 기회에 결선투표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선거 때마다 국민의 여러 요구와 지향을 단일화 프레임에 가두어서는 곤란하다. 국민의 다양한 선택을 보장하고, 결선투표를 거쳐 과반 리더십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번에 도입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차기부터라도 이를 제도화해야 한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270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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