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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이하경 중앙일보 주필] 여기가 윤석열의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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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53회 작성일 2022-05-3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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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주필·부사장

이하경 주필·부사장

윤석열 대통령의 언행은 일치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남성 위주 각료 인선을 지적한 뒤 여성 장·차관 네 사람을 연속으로 지명했다. 김상희 국회부의장이 젠더 갈등을 거론하자 “제가 정치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시야가 좁아서 그랬던 것 같은데, 이제 더 크게 보도록 하겠다”고 했고, 약속을 바로 이행했다. 정치 고수인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순발력이 보통은 아니다”고 놀라워할 정도다.

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상징색에 가까운 하늘색 넥타이 차림으로 국회 시정연설을 했다. 여야 의원 전원과 악수하며 인사했다. 파격의 6분이었고, 감동의 시간이었다. 그는 “정부가 추진할 정책이 있으면 의회 지도자들과 사전에 상의하겠다”고 약속했다. 초당적 협치를 하겠다는 강력한 신호였다.

‘제 시야 좁다’ 파격적 자기 혁신
입법 권력 여전히 야당에 있기에
의견 경청해야 초당적 협치 가능
윤석열다운 통 큰 정치가 승부수

중소기업인들을 초대해 5대 기업 총수와 함께 만난 것도 전례 없는 일이었다. 대통령은 비를 맞으면서 테이블 60여 곳을 돌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했다. 참석자들은 “대통령이 옆집 아저씨처럼 소탈했다”고 했다. 10대 기업이 5년간 1000조원 이상을 투자해 38만여 명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한 것은 ‘민간주도 성장’이라는 합리적 기치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여당 의원, 장관들과 광주에 내려가 5·18 묘역에서 유족들의 손을 잡고 흔들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것도 새 대통령의 진심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솝 우화의 허풍쟁이는 로도스섬을 다녀온 뒤 “내가 올림픽 선수보다 더 높이 뛰었다”고 자랑한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은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Hic Rhodus, hic salta)!”고 요구한다. 헤겔과 마르크스도 허언(虛言)이 아니라 지금, 여기라는 현실 세계에서의 구체적 행위가 중요하다며 인용했던 서늘한 명령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정치 세계에 툭 튀어나온 새 대통령 윤석열이 하루하루 전력질주하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현실을 부정하고 철 지난 이념의 노예가 된 지도자가 소득주도 성장, 탈원전의 허상을 향해 몸을 던졌던 시대에 마침표를 찍고 있다.

낡은 시대와 결별하려는 새 대통령의 결의는 단호하고 진심으로 넘쳐난다. 그러나 입법 권력은 여전히 세계관이 다른 야당의 손에 쥐어져 있다. 그들은 내로남불의 위선으로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고, 검수완박 폭주로 지지율을 까먹었다. 그러나 폭압의 시절 자기 희생으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민주화 세력이었다. 시대 흐름에 둔감한 기득권의 관성이 남아 있는 일부의 집권세력보다는 치열한 집단이다. 근본적으로 달라진 나의 인식을 보여주어야 마음을 얻고 협치를 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의 “제 시야가 좁았다”는 고백은 전환적 인식을 보여준다. 초당적 협치를 위해 동굴의 사고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요리사가 무서움을 느낄 정도로 거대한 80평짜리 침실이 있는 제왕의 처소를 거부한 최초의 시민 대통령다운 자기 혁신 선언이다.

협치 의지의 첫 시험대는 ‘소통령’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과도한 권한을 둘러싼 갈등 전선이 될 것이다. 윤 대통령은 법무부에 공직자 인사검증 업무를 담당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하기로 했다. 그는 “대통령 비서실은 정책 등을 중심으로 해야지 사람에 대한 비위나 정보를 캐는 건 안 하는 게 맞다. 그래서 내가 민정수석실을 없앤다고 한 것이다”고 했다. 인사 추천은 비서실, 검증은 법무부에 맡겨 상호 견제시키고 대통령의 과도한 역할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시행되기도 전에 그의 진심을 의심할 이유는 없다.

원문보기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7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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