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백기철 한겨레 편집인] 윤 대통령, 5·18에 진심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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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73회 작성일 2022-05-20 09:23본문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의원 대부분이 18일 5·18민주화운동 42년을 맞아 광주행 특별열차에 오른 건 특기할 만하다. 지방선거를 의식한 행보일 테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5·18에 대한 보수 정부의 분명한 태도 전환이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가 정당과 지역을 넘어 온 국민이 5·18에 대해 보다 성숙하고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윤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들은 손을 맞잡거나 주먹을 흔들며 시민들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소리내어 불렀다. 42년 세월 동안 보지 못한 풍경이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는 노랫말은 생경할 수 있지만 영령들을 기리는 데 그만한 표현도 없다. 노래에는 5·18이 ‘폭동’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되기까지 지난한 투쟁의 역사가 담겨 있다.
윤 대통령은 “오월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라고 했다. 대선 때 5·18 헌법 전문 수록 공약의 연장선상인 셈이다. 개헌에 방점이 있다기보다 5·18이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기념비적 위상을 명확히 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오월 정신을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이라고 했는데 부자연스러웠다. 본질적 개념으로만 보면 전혀 손색이 없지만 우리 현실에선 자유민주주의는 종종 극우 냉전 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하는 데 쓰였기 때문이다. 오월 정신은 통상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와 인권’ 정도로 해석돼왔다. 가급적 5·18을 기리는 쪽의 해석을 존중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싶다.
윤 대통령은 대학 시절 1980년대 민주화의 한복판을 건너온 세대다. 그가 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 모의법정에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한 건 잘 알려진 일화다. 이명박, 박근혜 전임 보수 대통령들과는 광주를 보는 결이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보여주기식 의전이 아니라 작으나마 실질적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광주 그 자체에 오롯이 다가서는 것, 그렇게 성심성의껏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한 ‘대학생 모의 검사’ 윤석열의 책무라 생각한다.
특히 80년 5월 북한군 특수부대가 사태의 물줄기를 틀었다는 지만원류의 주장은 5·18의 뿌리를 흔드는 위험천만한 주장이다. 근래 들어 북한군 개입설은 미국이나 우리 자료를 통해 근거 없음이 확인되면서 기세가 한풀 꺾이긴 했다. 지만원이 광수1호라며 간첩으로 지목한 이가 평범한 시민군이었음도 최근 밝혀졌다.
보수 대통령이 적당한 기회에 5·18 북한군 개입설은 근거가 없다고 언명하는 건 분명한 진전일 것이다. 북한군 개입설은 역사 문제인 동시에 현실 정치의 문제다. 대통령이 역사 문제를 단언해서 해결할 순 없지만 상당수 역사 문제는 과거를 바라보는 현재의 시선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이다. 광주의 진실과 명예 문제에 대해 여러 증거와 정황을 토대로 합리적 방향을 제시하는 건 보수 대통령이 5·18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그간 국민의힘 안팎에서 5·18을 폭동으로, 북한군 개입에 의한 내란으로 몰았던 이들에겐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김진태 강원지사 후보는 지만원을 등장시킨 5·18 포럼이 문제가 돼 지방선거 공천에서 배제됐다가 얼렁뚱땅 사과한 뒤 구제받았다. 합당한 결정으로 보기 어렵다. 5·18을 폄훼하고 왜곡한 이들에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해야 한다. 되풀이될 경우 일벌백계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능력 위주 인선이라며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를 빼고는 호남 출신이 0명인 내각을 짠 것도 문제다. 더욱이 한 후보자는 시류에 따라 출신 지역을 전북과 서울로 왔다 갔다 한 이다. 특정 지역 출신을 많이 기용하란 얘기가 아니다. 성, 연령, 지역의 범주에서 대표성을 가진 이들이 사실은 더 효용성이 크고 능력도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호남에 나름 공을 들였지만 20%에 크게 못 미친 득표율에 서운했을 수 있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호남이 지역주의에 묶여 있다고 생각하면 오판이다. 응어리진 한이 여전히 풀리지 않은 탓이다. 개혁적이고 민주적인 호남 유권자의 눈높이에 크게 못 미쳤기 때문이다.
다음번엔 무슨 날을 맞아 특별열차 타고 떠들썩하게 갈 게 아니라 주말 강남에서 쇼핑하듯 허허롭게 망월동 묘역을 찾아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대통령의 모습도 보고 싶다. 마음으로 다가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문보기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434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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