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김창균 조선일보 논설주간] 이재명이 깔봤던 ‘초보’ 젤렌스키, 세계를 놀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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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26회 작성일 2022-09-22 09:22본문
동북부 대반격 영토 탈환… 전쟁판도 우크라 쪽 기울어
러 낙승 전망 뒤집은 건 젤렌스키 용기와 리더십
남의 불행 정쟁 삼았던 前정권 부끄러워해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4일(현지 시각) 러시아군으로부터 탈환한 하르키우주 이지움을 방문해 병사들과 함께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차대전이후 처음으로 예비군 동원령을 내리면서 핵 협박까지 들고 나왔다. 그만큼 상황이 다급하다는 얘기다. 우크라이나의 동북부 대반격으로 영토를 탈환하면서 전쟁 판도가 급변하고 있다. 이번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 머리기사는 ‘푸틴의 전쟁은 실패하고 있다. 더 빨리 실패하도록 도와야 한다’였다.
당초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나라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쟁’이 아닌 ‘군사 작전’이라고 불렀다. 내부 소요 사태를 진압한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에 잠깐 산책하러 다녀오면 된다는 분위기였다. 푸틴만 그렇게 생각했던 게 아니다. 전문가들도 일주일 안에 수도 키이우가 함락될 것으로 봤다. 러시아는 영토가 우크라이나의 28배고, 인구는 3.5배며 군사력은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미국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당신과 가족의 목숨이 위태롭다”며 도피를 권했을 때 이를 받아들였다면 실제 전쟁은 싱겁게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내가 필요한 것은 차량이 아니라 탄약”이라며 거부했다. 그 지점에서 세계사는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그는 개전 다음 날 어두컴컴한 정부청사를 배경으로 동영상을 촬영했다. “대통령, 총리, 대통령 고문, 군 수뇌부가 모두 여기 있다. 우리는 국가와 독립을 지켜 낼 것”이라고 선언했다. 전쟁 초기 자리를 버리고 달아났던 관리들도 대통령의 항전 의지를 확인하고 속속 복귀했다.
이번 동북부 반격도 젤렌스키의 아이디어였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이 절실한 겨울이 다가오면서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타협을 종용했다. 결국은 러시아가 이길 전쟁인데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는 게 전쟁만 장기화시킨다는 피로감도 쌓여 갔다. 젤렌스키는 반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군 최고 장성들에게 전세계가 깜짝 놀랄 반격 드라마를 주문했고 성공했다. 젤렌스키는 “미군의 지원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지만, 미군 수뇌부는 “젤렌스키의 전략적 판단이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군의 충격적 패퇴를 목격한 뒤 “승산은 우크라이나 쪽에 있다” “무기 공급이 제값을 한다”는 두 가지 여론이 힘을 받고 있다. 젤렌스키가 노렸던 그대로다.
승전에 맞춰 젤렌스키는 소셜 미디어에 연설문을 올렸다. “러시아, 너희가 가스, 빛, 물, 음식으로 협박하면 그것 없이 살겠다. 추위, 어두움, 갈증, 배고픔이 너희에게 굴종하는 것보다는 견딜 만하다. 그리고 우리는 끝내 가스, 빛, 물, 음식도 되찾을 것이다. 그것도 너희의 도움 없이.” 이 연설문을 영국의 더 타임스는 “우리 시대의 게티스버그 연설”이라고 극찬했다. “시적(詩的)이면서도 단호한 정서가 담겨 수십년간 읽힐 명문”이라고 했다. 개전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각국별 맞춤 연설로 협력을 이끌어냈다. 미국엔 “우리는 매일 9·11과 진주만을 경험하고 있다”고 했고, 영국엔 “숲에서, 들판에서, 거리에서 계속 싸울 것”이라며 처칠의 2차 대전 연설을 패러디했다.
젤렌스키의 용기와 통찰력, 그리고 공감 능력에 전 세계가 감탄하고 있다. 그의 리더십이 우크라이나 국민을 피 끓게 만들었고, 서방 국가들이 돕지 않을 수 없도록 유도했다. 조약돌을 쥔 소년 젤렌스키가 도끼를 휘두르는 거인 푸틴을 비틀거리게 만들었다.
7개월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무단 침공했을 때 민주주의 하는 나라들은 푸틴의 만행에 놀라고 분노했다. 젤렌스키를 비난하고 조롱한 것은 대한민국 집권 세력이 유일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토론에서 “초보 정치인 대통령이 러시아를 자극했다”고 했다. 유세장에서는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에 걱정하는 분이 많은데 지도자가 무지하지 않으면 그런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을 비롯한 민주당 인사들은 “대통령을 잘못 뽑는 바람에 전쟁이 일어났다” “준비 안 된 대통령 때문에 국민이 희생된다” “아마추어 대통령을 뽑으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장단을 맞췄다. 정치 경험이 일천한 윤석열 후보를 깎아내리기 위해 남의 나라의 불행마저 정쟁 거리로 소비한 것이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우크라이나 출신 모델은 “젤렌스키에게 투표한 72% 우크라이나 국민이 바보인 줄 아느냐”고 분노했다. 북한의 비핵화 사기극을 대변하다가 동맹과 우방들로부터 핀잔을 들은 정권이 세계를 놀라게 한 영웅을 깔보며 ‘훈계질’을 한 것이다. 그들이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북녘 김씨 남매의 표현을 빌리자면 삶은 소대가리가 앙천대소할 일 아닌가.
김창균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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