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감사 칼럼- 김창균 조선일보 논설주간] '트럼프 완승'으로 머쓱해진 '트럼프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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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2회 작성일 2025-01-23 10:46본문
승리 도둑맞았다 불복하더니
4년 만의 대선 큰 표 차 승리
조작 시스템 없었다는 반증
尹도 2년 반 동안 못 했는데
이제 와 무슨 수로 규명하나
선거 불신하면 민심 못 얻어
2020년 11월 18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AFP 연합뉴스
2020년 한 해 한·미 동맹이 차례로 부정선거 시비에 휘말렸다. 두 나라의 보수정당은 개표 초반 앞서가다 막판 역전당하는 똑같은 경험을 했다. 우리 4·15 총선에서 수도권 격전지의 미래통합당 후보들은 초반 우세가 16일 새벽 사전 투표함 개봉과 함께 증발하면서 쓴잔을 마셨다. 11월 미 대선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전국적으로 앞서가다 사전 투표함이 열리면서 민주당 바이든 후보에게 역전당했다. 양국의 보수 진영은 “선거 승리를 도둑질당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전문가들은 “진보 성향 젊은 유권자들이 사전 투표에 많이 참여해서 발생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사전 투표는 우편을 개봉하는 절차 때문에 개표가 뒤로 미뤄져서 진보 정당이 뒷심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 정치학자들은 공화당의 개표 초반 리드가 시간이 흐를수록 사라져 버리는 이 현상을 공화당 상징 빨강 색깔에 빗대 ‘붉은 신기루’(red mirage)라고 불러왔다. 2020년 선거는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한·미 두 나라 모두 사전 투표율이 높게 나타났고 보수 정당의 역전패가 두드러져 보였을 뿐이다.
트럼프는 “도둑질을 멈춰라(Stop the steal)”라는 구호를 내걸고 선거 결과에 불복했다. 우편투표에 유령 유권자들이 끼어 들었고, 개표 집계기가 자신의 표를 바이든 표로 바꿔치기했다면서 60여 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안보 보좌관 출신 마이크 플린은 “계엄령 선포로 군(軍)을 동원해 4개 경합주의 개표 집계기를 압수하자”고 제안했다. 트럼프는 조지아주 국무장관에게 “패배한 표수보다 한 표 더 많이 내 표를 찾아내라”며 개표 조작을 지시했다. 모든 시도가 무산되자 바이든 후보의 승리를 최종 승인하는 상하원 합동 회의 날 열혈 지지자들에게 의사당을 습격해 회의 진행을 막으라고 선동했다.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1월 6일 미 의회 폭동이었다.
2022년 미 중간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주장한 부정선거를 믿는다는 응답이 40%로 ‘믿지 않는다’ 36%보다 많았다. 2023년 10월 국내 여론조사(현대 리서치)에서도 38.2%가 “선거 조작이 있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보수층 응답 비율은 52.5%에 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4년 만에 백악관으로 돌아왔다. 2020년 대선에선 선거인단 232 대 306으로 패배했는데, 이번 대선에선 312 대 226으로 승리했다. 민주당 입장에선 전당대회 직전 후보를 교체하는 무리수를 쓸 정도로 절박한 선거였다. 민주당이 야당이었던 2020년 선거를 조작으로 뒤집었다면 집권 세력으로서 손 놓고 패배를 방치했을 리가 없다. 트럼프가 취임식 후 즉흥 연설에서 “부정선거 때문에 더 큰 표 차로 이기지 못했다”라고 강조한 것은 머쓱해진 자신의 음모론에 대한 변명 내지 합리화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계엄 사태를 거치며 음모론이 더 힘을 얻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군을 국회보다 선관위에 더 많이 투입하면서 “부정선거 증거를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국민께 드리는 글’에서 “부정선거 증거가 너무나 많다”면서 “살해당한 시신이 도처에 널려 있는데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이유로 살인 사건을 음모론으로 폄하하면 안 된다”고 했다.
윤 대통령 지지층의 부정선거 확신은 워낙 강고하다. 전국 단위 선거 결과를 조작하는 것은 톰 크루즈도 할 수 없는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설득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다만 윤 대통령이 정권을 손에 쥐고 있던 2년 반 동안도 못 해낸 부정선거 규명을 이제 와서 무슨 수로 하겠냐고 묻고 싶어진다. 선거 결과가 조작된다는 의심에 빠져들면 한 뼘 한 뼘 민심에 다가서려는 노력이 헛수고로 느껴진다. 그래서 단번에 판을 뒤집을 궁리에 매달린다. 이런 자세로는 선거에 총력을 쏟지 못한다. 음모론을 황당하다고 여기는 중도층을 고개 돌리게 만드는 감표 효과도 작용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후 임기가 끝날 때까지 법무장관에게 의혹을 밝혀내라고 닦달했지만 “아무 증거도 찾지 못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래선지 트럼프는 이번 선거 기간 부정선거 이슈를 내세우지 않았다. 선거에만 집중했고 완승을 거뒀으며 백악관에 돌아왔다.
윤 대통령은 체포영장 집행을 앞두고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나는 가지만, 정권 재창출을 부탁한다”고 했다.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다면 음모론 주장은 미국에서처럼 머쓱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실패하면 더욱 극성을 부릴 것이다. 지지자들은 어느 쪽을 바라나.
원문보기 : [김창균 칼럼] ‘트럼프 완승’으로 머쓱해진 ‘트럼프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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