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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칼럼-남궁창성 강원도민일보 이사 겸 미디어실장] 쿠오 바디스(Quo va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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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0회 작성일 2025-01-1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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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공포의 대상은 상엿집이었다. 백석동(白石洞)에서 제방을 따라 집으로 가는 지름길 중간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어느 날 까치발을 하고 들여다 본 상엿집에는 죽은 사람을 장지까지 실어 옮기는 붉고 파랗고 하얀 천에 둘러싸인 상여가 있었다. 오싹했다. 사자를 하늘나라로 안내한다고 알려진 기괴한 모습의 꼭두 인형들도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으스스했다. 그 뒤로 상엿집을 피해 큰 길로 돌아돌아 집으로 갔다.

서낭당도 무서웠다. 고갯마루 늙은 느티나무는 항상 흰색, 노란색, 붉은색, 파란색 천을 휘감고 있었다. 앞에는 제사 음식과 타다 남은 양초들이 있었다. 어두컴컴한 나무 아래 낡은 기와의 서낭당을 눈을 감고 나살려라 뛰어 통과했다. 엄마와 함께 그 앞을 통과할 때는 치맛자락을 꼭 잡았지만 발걸음과 함께 호흡도 빨라졌다. 동네마다 새마을노래가 울려 퍼지던 1970년대 서낭당이 없어진다는 말에 얼마나 속이 후련하던지….

3세기 삼한에서는 제사를 올리는 장소를 정해 소도(蘇塗)라고 불렀다.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성지였다. 제단을 설치하고 그 앞에 방울과 북을 단 큰 나무를 세워 제를 올렸다. 죄인이 소도 안으로 도망가면 잡지 않았다. 성역이어서 세속의 힘이 미치지 못했다. 범죄자들이 도망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1970~80년대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민주화에 앞장섰던 인사들에게 소도같은 공간이 있었다. 종교시설과 대학이다. 명동성당이 대표적이다. 종로5가 기독교회관이나 조계사도 그 역할을 했다. 대학도 학생들에게 은신처가 됐다. 공권력은 지성의 공간인 대학과 지식인의 표상인 교수를 예우했다. 대학 침탈은 정권의 종말을 앞당긴다고 여겼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남동 관저가 한동안 국민들에게 소도처럼 인식됐다. 경찰의 좁혀지는 수사망에 맞서 경호처를 방패 삼아 하루하루 버티는 모습이 정말 안타까웠다. 국론은 양분되고 국정은 표류하며 국민은 지쳐간다. 대한민국이여! 정녕 어디로 가시나이까?

남궁창성 미디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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