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김명수 매일경제 논설실장] 人命도, 國家도 구해야 한다
페이지 정보
댓글 0건 조회 400회 작성일 2023-09-25 10:05본문
단기에 의사숫자 확 늘리고
대학엔 기업가정신 확충을
벤처 창업엔 더 큰 지원하자
미국 실리콘밸리 소재 한 한인교회는 박사 출신 교인 가정이 두 집 중 한 집꼴이다. 미국에서 이공계 박사 학위를 받고 현지 기업에 정착한 한인 교인들이다. 현지에선 "미국에서 학력이 가장 높은 교회"라고 불릴 정도다.
미국 동부 뉴욕 인근에선 2000여 명의 한국계 금융인들이 활약 중이다. 월가 주류로 불리는 유대인들에 버금가는 규모다. 이들 상당수는 하버드대학 등 아이비리그를 졸업한 인재들이다.
한국인 또는 재외동포들의 높은 교육열 덕분에 해외에서 나타난 현상들이다. 사실 한국이 10대 경제대국으로 등장한 가장 큰 요인도 교육열이다. 물적자원과 자본이 부족한 나라가 가진 유일한 자원이 바로 사람이었고, 교육열이 산업화시대 인재를 양성했다. 그동안 우수 인재들이 자기 자신과 가족 생계를 책임졌고, 나라도 구했다. 1960~1970년대엔 화학공학과 건축공학 등 공학을 전공한 인재들이 이후 경제개발을 주도했다. 1980~1990년대엔 전기전자, 기계공학 인재들이 산업화를 이끌었다.
그런데 요즘엔 인재들이 의대에 몰리고 있다. 과연 이들은 나라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더욱이 최근엔 입시제도 변화를 틈타 의대에 가려는 n수생이 부쩍 늘었다. 올해 11월 16일 치러지는 수능에 지원한 전체 수험생 3명 중 1명이 이미 졸업한 n수생이다. 지방대 의대에 다니는 의대생조차 서울 소재 의대로 옮기려고 재수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우수 인재들이 의대로 가는 건 합리적 판단이다. 안정적이고 많은 수입을 얻는데 굳이 기업이나 공직사회에 뛰어들어 적은 급여를 받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 의료기관 소속 봉급받는 의사들의 급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의사들 중 최고 수준이다. 국내 일반 기업에 소속된 근로자 임금보다도 3배 이상 많다.
그러나 n수생 급증은 학원비 추가 지출은 물론 사회 진출 지연을 초래한다. 인재들이 의료인으로서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건 좋지만, 모두 의대로만 가고 이공계열을 무시한다면 국가적으로는 낭비다. 안타깝게도 최근 외국의 한 대학 순위 조사기관에 따르면 아시아 10대 공대(컴퓨터공학 기준)에 선정된 한국 공대는 없다.
특정 학과 졸업생들의 '수익률'이 장기간 높은 것은 진입장벽이나 규제 때문에 발생한다. 의대의 높은 수익률은 의사 과소공급 때문이고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이 최선책이다. 실제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6명(한의사 포함). OECD 회원국 30곳 중 멕시코(2.5명) 다음으로 적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35년에 국내 의사가 9654명 부족하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50년까지 2만2307명이 모자랄 것으로 추산된다. 다행히 정부는 2025년부터 의대 정원을 늘리기로 하고 다양한 전문가들과 협의에 들어갔다. 의대 정원을 늘리면 당장 의대 쏠림 현상은 더 심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이왕 늘릴 거면 찔끔 늘릴 게 아니라 고수익률 기대가 사라질 정도로 단기에 획기적 확대가 필요하다.
동시에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공계열 학과 졸업생의 수익률 향상. 물론 시간도 많이 걸리고 불확실하다. 그 불확실성, 즉 위험을 줄여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금보다 더 활기찬 벤처창업 생태계 구축이다. 누구나 창업에 도전할 수 있고, 성공하면 큰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실패해도 실패 자체가 큰 자산이 될 수 있는 구조를 짜줘야 한다. 여기에다 대학을 기업가정신이 넘치는 곳으로 바꿔줘야 한다.
실리콘밸리에 우수한 한국 이공계 박사들이 몰린 것도 그런 사연이다. 똑똑한 머리로 할 일은 의사 말고도 엄청 많다. 벤처창업 도전도 국민 생명을 살리고 나라도 구하는 길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