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칼럼-정용관 동아일보 논설실장] 때늦은 ‘내란 특검’의 허와 실 > 임원진 칼럼

본문 바로가기
회원가입    로그인    회원사 가입      

임원진 칼럼

[임원칼럼-정용관 동아일보 논설실장] 때늦은 ‘내란 특검’의 허와 실

페이지 정보

댓글 0건 조회 27회 작성일 2025-01-20 09:48

본문

불법 계엄 수사 큰 고비는 거의 넘은 셈
특검 공방, 되레 조속한 사법 심판에 혼선
그럼에도 강행 땐 ‘대선용 여론몰이’ 의심
잔머리 굴리다간 게도 구럭도 다 잃는다


정용관 논설실장

정용관 논설실장


윤석열 대통령 구속이라는 중대한 변곡점을 맞아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이른바 ‘내란 특검’ 문제다. 필자는 한동안 12·3 불법 계엄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선 여야 합의 특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권위 있는 ‘진상 규명’ 체제” “계엄 수사의 일원화” 등의 이유였다. 무엇보다 국체 위기 상황에서 헌정 질서 위협의 실체를 밝히고 역사적 매듭을 짓는 막중한 책무를 현재의 검찰이나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짊어질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있었다.

우리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었던 건 물론이다. ‘검사 정권’의 검찰이 내란 행위 수사를 주도하는 게 맞나, 제대로 수사를 하긴 할까, 무슨 장난이라도 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자기 조직의 서열 1, 2위 수뇌부가 모두 계엄의 주요 임무 종사자로 연루된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내란죄 수사권 유무 논란을 떠나,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역량도 미흡해 보이는 공수처가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내란 혐의 수사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못 미더움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과 일단의 경호 세력이 관저를 요새화하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식으로 버티고 나온 건 상식 밖이었지만,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던 공수처와 경찰도 불안불안했다. 여야 합의 특검이 가동되면 대통령 측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내란죄 수사권 논란도, 대통령 신병을 둘러싼 물리력 대치와 불안도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했던 건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질적으로 국면이 달라지는 양상이다. 전 국방장관, 군과 경찰의 고위 관련자들이 모두 구속 기소돼 재판이 시작된 데 이어 불법 계엄 내란 행위의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까지 구속됐다. 온갖 혼란과 난맥 속에서도 계엄 수사는 9분 능선을 넘어 정점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대통령에 대한 기소 여부 결정 시한이 20일도 채 남지 않았는데 빨라야 한 달이나 걸리는 특검 도입을 놓고 정치 공방을 벌이는 게 무슨 실익이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혈세 낭비 얘기는 지엽적인 문제다. 여권 일각에서 주장하는 ‘특검 무용론’과는 맥락이 다르다. 특검 이슈가 오히려 신속한 사법 절차를 방해하는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드는 것이다.

검찰이 대통령 기소 절차를 중단한다면 모를까. 그럴 리는 만무하다. 외국과의 ‘통모’를 전제로 한 외환 혐의도 합참의장의 일침 등 여러 논란을 의식한 듯 통째로 뺐다. 그러니 검찰이 대통령을 기소하고 나면 특검이 할 일은 직권남용 수사, 부화뇌동자 등 잔불 정리, 이미 검찰 등에 의해 기소된 피의자들 공소 유지밖엔 없게 될 수 있다. 과유불급 아닌가. 차라리 공수처 수사의 흠결을 주장해 온 국민의힘이 특검을 하자고 하면 논리적 타당성은 있겠지만 그럴 의지는 없고, 민주당은 신속한 수사와 기소를 주장하며 특검도 하자고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닌가.

민주당이 상황이 변했어도 특검은 무조건 해야만 한다는 게 어떤 관성이나 도그마에 갇힌 탓인지, 검찰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트라우마 때문인지, 대선용 여론몰이이자 특검의 ‘인지 사건’ 수사를 통한 여당 궤멸 노림수인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내란의 중요임무 종사자들이 이미 구속 기소된 데 이어 윤 대통령까지 구속된 만큼 공수처와 검찰의 내란죄 수사권 시비는 일단락됐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큰 줄기에 대한 수사 마무리와 기소, 공소 유지가 중요하고 차근차근 법원의 심판을 받는 시간으로 넘어가야 할 때다. 유무죄는 법원이 판단할 것이다. 이른바 부회뇌동자 등 잔가지 수사는 그리 급한 게 아니니 추후 보완해 가면 될 일이다.

이를 통해 계엄이란 예외적 상황을 통상의 시스템으로 해결하는 ‘사법 복원력’을 보여주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금의 특검 공방은 다시 법의 문제를 정치 문제로 변질시킬 우려가 있다. 특검을 하네 마네,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하네 마네 하는 동안 정점 직전의 수사 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자칫 특검 활동과 재판이 마구 뒤섞이면서 지금까지 내달려온 수사가 뒤죽박죽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국가 안위의 문제인 만큼 정치 논리나 셈법은 제거돼야 한다. 무엇보다 ‘신속히’ 법적 판단의 궤도에 올리는 게 중요하다. 그래도 규명해야 할 의혹이 많다면 그때 다시 특검을 논의해도 된다. ‘대선 잔머리’를 굴리다 게도 구럭도 다 잃을 수 있다.


원문보기 : [정용관 칼럼]때늦은 ‘내란 특검’의 허와 실|동아일보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921건 1 페이지
임원진 칼럼 목록
제목
921
920
919
918
917
916
열람중
914
913
912
911
910
909
908
907
게시물 검색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24 한국프레스센터 1311호   전화: 02-723-7443   팩스: 02-739-1985
Copyright ©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All rights reserved.
회원사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