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칼럼-강병균 부산일보 논설실장] 부산을 북극항로 거점 항만으로
페이지 정보
댓글 0건 조회 35회 작성일 2025-03-04 09:47본문
수에즈운하 이용 선박 후티 반군 공포
대부분 아프리카 희망봉 노선 우회
항해 거리·소요 기간 늘며 비용 증가
해빙 가속화 북극해 대체 항로 부상
미 트럼프, 장악력 높일 속셈 드러내
부산 입지 장점 살려 허브항 역할을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이집트 수에즈운하. 이 운하는 전 세계 무역량의 12%가량이 오가는 국제 해상 물류 요충지다. 아시아와 유럽 간 교역 물동량 중 무려 40%가 수에즈운하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현재 아시아·유럽 간 바닷길을 운항하는 글로벌 선사들의 선박 대부분은 수에즈운하 대신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경유하는 우회 항로를 이용한다. 반(反)이스라엘 성향인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상선을 공격한 2023년 11월부터다. 후티 반군은 한 달 전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하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지지한다며 지금까지 홍해에서 상선 100여 척을 공격하거나 나포해 불안감을 조성했다.
부산항에서 수에즈운하를 거쳐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에 이르는 세계 간선 항로의 거리는 2만 2000㎞다. 세계 해운업계가 선박 안전 확보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선택한 희망봉으로 돌아가는 뱃길은 9650㎞ 정도 더 길다. 이 때문에 소요 시간이 크게 늘고 운송 비용도 대폭 올라 글로벌 공급망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적 선사인 HMM(옛 현대상선)은 희망봉 쪽으로 노선을 바꾼 뒤 부산~로테르담 편도 항해 기간이 종전 약 40일에서 50여 일로 늘어났다. 앞서 2021년 3월 수에즈운하에서 발생한 초대형 컨테이너선 좌초 사고로 7일간 양방향 통행이 전면 중단된 적이 있다. 이때도 해운회사들은 글로벌 물류대란이 장기화하는 걸 막으려고 한동안 희망봉으로 우회할 수밖에 없었다.
수에즈운하 경유 항로와 희망봉 우회 항로의 대안으로 꼽히는 게 북극해를 활용하는 뱃길이다. 이른바 ‘북극항로’다. 수에즈운하를 이용하는 수많은 선박이 1990년대부터 소말리아·아덴만 해역에 설치는 해적의 표적이 되고 있다. 여전히 선원 납치와 선박 억류 등 피해가 끊이질 않는다. 북극항로를 대체 항로로 개척해 운용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욱이 부산에서 북극해를 통해 유럽으로 갈 경우 항해 거리와 운송 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항로는 수에즈운하를 지날 때보다 약 7000㎞, 10여 일을 단축해 20~30%의 물류비 절감이 가능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 지 오래다.
이같이 매력적인 북극항로는 부산항이 세계 7위 컨테이너 항만이자 세계 2위 환적항, 동북아 중심항에서 세계 초유의 메가 허브항으로 성장하는 지렛대가 되기에 충분하다. 부산항이 북극항로 기·종점에 자리 잡아 이 항로에 선박과 물동량이 대거 몰린다면, 수에즈운하 경유 노선에 기댄 세계 1위 싱가포르항을 추월할 수 있을 테다. 지구온난화 탓에 북극 빙하가 자꾸 녹아 사라지는 건 안타깝고 경계할 일이다. 그런데, 빙하가 줄어들면서 배가 다니는 해역이 넓어지고 상시 운항이 가능한 시기가 확대되고 있어 북극항로가 활성화할 날이 머지않았다. 우리나라가 북극항로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부산이 새로운 항로의 거점 항만이 돼야 하는 이유다.
북극해를 끼고 있는 러시아의 점진적인 북극항로 개발 노력은 잘 알려져 있다. 이제는 다양한 분야의 세계 패권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극해에 쏟는 관심에 주목할 때다. 그는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차지하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명목은 자원 확보인데, 해빙이 가속화하는 북극 전체를 새로운 전략 요충지로 보고 영향력을 키울 속셈인 게다. 이는 미국이 최근 대형 극지경비함 건조에 나서고 10척에 달하는 쇄빙선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에서 감지된다. 북극해 장악에 필요한 북극항로를 선점할 요량이 분명하다.
때마침 부산시가 지난 13일 ‘북극항로 개척 TF(태스크포스)’를 조직한 건 시기적절하고 고무적이다. 반면 해양과 항만 분야 자치권이 없는 데다 전문 인력이 적은 시의 노력만으론 항로 개척과 거점항 육성에 역부족이다. 실효성 있는 과제 발굴과 추진 방안 마련, 원활한 실행을 위해 해양수산부, 부산항만공사,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같은 유관기관 간 긴밀한 협조는 필수적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북극해 주변 8개국과 협력관계를 강화해 우리가 진출하는 길을 넓혀야 한다. 특히 해운·조선업이 취약한 미국과 상생하기 위해 적극 공조할 필요가 있다. 산업계에는 부산항 기반의 북극항로 활성화를 겨냥한 기술 개발과 비즈니스 발굴이 요구된다.
한편으로는 국내 쇄빙연구선이 ‘아라온호’ 1척뿐이라 자칫 북극 개척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 우려된다. 세계적인 K조선 능력으로 쇄빙선을 충분히 늘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산을 북극항로의 거점도시로 키우며 미래 먹거리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신성장 동력으로 만드는 데 시가 적극성을 보이고 전폭적인 정부 지원이 뒤따르길 바란다. 부산항을 세계 1위 고부가가치 항만으로 견인할 북극항로를 한국 경제의 새 해양영토로 삼자. 대망의 북극항로 시대가 열리려고 한다.
관련링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