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칼럼-남궁창성 강원도민일보 이사 겸 미디어실장] 윤동주와 가모강(鴨川)
작성일 25-02-1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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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내 동네처럼 유유자적 돌아다닐 수 있는 외국의 몇몇 도시 가운데 하나가 일본 교토(京都)다. 시청을 기준삼아 한바퀴 돌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가모강(鴨川)에 가로놓인 다리를 건너면 기요미즈데라(淸水寺), 헤이안신궁(平安神宮), 교토대학을 둘러볼 수 있다. 시청 앞에는 혼노지(本能寺)가 있다. 북서쪽으로 다섯 개 블록 뒤에는 메이지유신 이전까지 천황이 생활했던 고쇼(御所)가 자리하고 있다. 그 바로 뒤에 사립명문 도시샤(同志社)대학이 있다.
시인 윤동주(1917~1945년)가 1년여 동안 공부한 대학이 도시샤다. 그는 1942년 3월 일본으로 건너가 성공회가 운영하는 도쿄 릿쿄(立敎)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중퇴후 그해 10월 도시샤대 영문학과에 편입했다. 개신교 학교인 도시샤는 그가 좋아하던 시인 정지용이 다닌 대학이다. 당시 윤동주는 일제에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찍혀 감시를 받고 있었다. 1943년 7월 체포됐고 2년여 동안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됐다. 그리고 1945년 2월16일 새벽 옥사했다. 꼭 80년 전 일이다.
도시샤대가 지난 16일 서거 80주기를 맞아 시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이 대학이 고인(故人)에게 학위를 수여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재학 중 일제에 체포돼 숨진 시인을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사죄의 마음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학위 수여식에는 시인의 조카인 윤인석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참석했다. 이 대학은 1995년 교내에 윤동주 추모시비를 건립했다.
윤동주는 일본 작가인 이바라키 노리코(1926∼2006년)가 고인의 시를 인용하며 쓴 수필이 교과서에 실리면서 유명해졌다고 전한다. 교토시내 시인이 생활했던 옛 하숙집 터에도 시비가 서있다. 또 시인이 친구들과 마지막 사진을 남긴 우지(宇治) 강가에도 교토 시민들이 2017년 ‘기억과 화해의 비’를 건립했다고 한다.
하늘과 바람, 그리고 별을 노래하던 시인 윤동주는 지금쯤 불화했던 과거와 악수를 했을까?
남궁창성 미디어실장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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