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칼럼-이진우 매일경제 논설실장] 트럼프의 엉터리 경제학
작성일 25-02-19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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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부활에 우선순위
韓제조업 구조개편 시급
노동유연성이 개혁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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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의 경제정책은 앞뒤가 안 맞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무역수지가 총공급과 총수요의 차이라는 점, 국내 저축이 투자보다 적으면 무역적자가 난다는 국민소득 항등식의 원리를 무시한다. 그러니 관세폭탄에 거리낌이 없다. 관세만 때리면 미국 경제가 다 좋아질 것처럼 말한다. 과거 한국의 어떤 정부가 추진했던 '소득주도성장'만큼이나 황당한 시각이다.
제프리 색스 교수는 2017년부터 "경제학과 1학년생도 하지 않을 거짓말을 한다"며 트럼프를 비웃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도 "결국 본인도 실망하게 될 것"이라며 트럼프의 무지를 꼬집었다.
문제는 경제 현실이 이론과 다르게 흐를 때가 많다는 점이다.
관세 인상의 이론적 부작용은 물가 상승이다. 실제로 지난 1월 미국 소비자물가가 예상치를 웃돌면서 트럼프노믹스의 몰락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똑같이 고관세 정책을 폈던 트럼프 집권 1기를 떠올리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1기 내내 물가는 안정세가 유지됐다.
요즘에는 관세 인상이 장기적인 물가 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유전 개발로 기름 값을 낮추고, 강달러로 수입품 가격을 떨어뜨리며, 관세를 세금 인상처럼 인식시켜 소비를 억제시키면 물가 상승은 걱정할 게 없다는 논리다.
물론 트럼프 1기에 미국 경제가 태평성대를 누렸던 건 아니다. 고물가처럼 경제학자들의 강달러, 고금리 예상은 깨졌지만 재정·무역수지는 악화일로였다. 다만 트럼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마 트럼프 2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예상 중에는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는 여전히 그 결과에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노리는 치트키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 치트키는 제조업이다. 미국 입장에서 제조업 복원은 중국과의 패권 경쟁을 단박에 판가름 낼 필승 카드다. 기술 혁신을 사실상 독점한 미국이 제조 기반까지 갖추면 다른 나라의 도움 없이도 압도적인 국력 신장을 이룰 수 있다.
그래서 트럼프에겐 관세가 중요하다. 물가 상승도 기꺼이 감수한다. 보호무역주의의 온갖 폐해를 뒤집어쓰더라도 제조공장을 미국에 끌어다 놓는 게 미국 국익에 부합한다는 계산에 마뜩지 않지만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런 트럼프를 한국은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싹싹 빌어본들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공장을 미국으로 모조리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숙련 인력이 모자라고 임금 수준이 높은 미국 현지 사정도 따져봐야 한다.
사실 해결책은 이미 나와 있다. 많은 전문가가 미국 현지에 제조업 직접투자를 늘리되, 마더 팩토리를 국내에 둬 핵심적인 제조, 연구개발 역량을 유지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또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스마트 공장으로 미국 내 공장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충고한다.
중요한 건 실행인데 이런 전략이 통하려면 한국 제조업 전반에서 AI 중심의 구조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려면 노동 유연성이 전제돼야 한다. 저성과자 해고는커녕 고소득 연구직에 한해 주 52시간 예외를 적용하는, 그 정도 미세 조정도 불가능한 이 나라에서는 언감생심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다. 트럼프의 경제학적 모순은 제조업 부활에 원인이 있고, 그것에 적응하려는 한국은 산업구조를 개편해야 하는데 꽉 막힌 노동 규제 때문에 옴짝달싹도 못 한다. 트럼프의 모순이 돌고 돌아 한국 노동시장의 모순으로 치환되는 셈이다.
폭설이 내리면 남 탓, 하늘 탓을 하기 전에 자기 집 앞의 눈부터 치우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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