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칼럼-정용관 동아일보 논설실장] 그래도 대통령임을 보여줄 마지막 기회
작성일 25-02-1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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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헌재 최후 진술은 역사에 남을 것
‘최고의 公僕’다운 진정성 보여줄 때
일각의 전격 하야론 ‘가능성 제로’인 건지…
지지층에 “헌재 결정 100% 수용” 메시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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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응엔 결정적 차이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스스로 주저앉았다. 직접 싸우려 하지 않는 장수 옆에 군사가 남아 있을 리 없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았는지, 원래 성정(性情) 자체가 다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윤 대통령은 싸움의 길을 택했다. “야당은 반국가 세력” “광란의 칼춤”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이란 작년 12월 12일 대국민 담화는 사실상 ‘내전(內戰) 선포’나 다름없었다.
그 뒤 2개월여 벌어진 과정은 지켜본 대로다. 여론조사만 놓고 보면 윤 대통령으로선 계엄 실패 직후의 ‘2 대 8’도 안 되는 불리한 정치 구도를 ‘4 대 6’ 안팎의 구도로까지 바꾼 듯 보인다. 보수 저변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반감이나 두려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무능, 헌재의 정치화 논란 등 여러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지만 적어도 대통령 자신이 싸울 의지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금 차가운 감방에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다고 믿는지도 모른다. ‘복귀의 희망’이다. 여권과 지지층을 향해 “당이 자유 수호 운동을 뒷받침해야 한다” “모래알이 돼서는 안 된다” 등 연일 여론전을 독려하는 옥중 메시지를 내놓는 것도 그 일환일 것이다.
헌재 재판관 8명 중 보수 성향 누구의 판단에 따라 최종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는 둥 이런저런 예상이 난무하지만 그건 이 글의 주제는 아니다. 다만 탄핵 심판은 일반 재판과는 다른 정치적 속성을 띠지만 그렇다고 ‘여론 재판’도 아니라고 본다. 헌재는 헌정 수호라는 준거에 따라 엄정한 사법적 결론을 내릴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좌우 이념에 따라 갈려선 안 될 것이다.
윤 대통령의 머리 위엔 칼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형국이다. 그의 운명도 운명이지만, 나라가 찬탄 반탄이란 두 개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상황 자체가 우려스럽다. 마치 나라 전체가 거대한 콜로세움의 흥분한 군중처럼 피를 보고 쓰러져야만 끝나는 검투사 게임에 몰입해 들어가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탄핵이 인용되면 좀 시끄럽다가 조기 대선 국면으로 넘어갈 것인가. 아마 그럴 공산이 크지만 박근혜 탄핵 때와는 다른 양상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보수 일각의 바람대로 ‘5 대 3’으로 기각되면 공권력에 의해 강제로 체포되고 감방까지 갔던 대통령이 최고 권력자로 복귀하는 영화 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후유증의 질과 크기는 다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그 파장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이 와중에 최근엔 어느 보수 원로가 윤 대통령의 하야 가능성을 공개 언급한 걸 계기로 하야 논쟁이 제기됐다. 이른바 체제 전쟁을 벌이며 나름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윤 대통령이 자진 사퇴할 가능성은 ‘제로’일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다. 여권에서도 “끝까지 버티다 산화(散華)하는 게 대선에 더 도움 될 것” “탄핵의 멍에는 벗는 게 나을 것” 등 득실 계산이 엇갈리는 듯하다. 야권에선 탄핵 심판 중인 윤 대통령에겐 ‘하야의 권한’이 없다고 선을 긋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으로선 하야 옵션은 남는 장사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끝까지 가야 일말의 활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내란 혐의나 명태균 문제 등의 ‘법적 봉인’을 보장받을 길도 없다. 탄핵 반대 강성 지지층들로부터 비겁하다는 힐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이런 정파의 득실이나 정략적 셈법을 떠나 하야는 윤 대통령도 한번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선택지라는 생각은 든다. 여론이 그나마 호전된 지금이라도 자신의 오판으로 빚어진 국가적 혼란에 대해 스스로 최고 수준의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결자해지의 모습은 역사적 의미가 있다.
닉슨의 하야 성명서를 다시 찾아봤다. “지금도 임기 만료 전 떠나는 것에 내 본능은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위기에 몰렸을 때 부통령 애그뉴가 비리 혐의로 사임한 것과 관련해 닉슨이 자신의 탄핵을 막기 위해 애그뉴를 먼저 ‘속죄양’ 삼은 것이란 평가도 있다. 그렇게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 했지만 마지막 순간 닉슨은 본능을 억눌렀다.
윤 대통령은 곧 최후 진술의 시간을 맞는다. 역사에 남을 중요한 순간이다. 최고의 공복(公僕)다운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적어도 “탄핵 심리 과정은 유감이지만, 그럼에도 어떤 결정을 내리든 전적으로 수용할 것이다. 저를 지지했던 모든 분들도 100% 존중해 달라”는 명확한 메시지라도 나왔으면 한다. ‘그래도 대통령’임을 보여줄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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