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칼럼-강병균 부산일보 논설실장]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바라며
작성일 25-02-0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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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속 맞은 입춘
새봄이 와도 희망을 찾기는 힘들 듯
여야 정쟁, 법치주의 흔드는 모양새
경제난·서민 어려움 방치하는 수준
정파 이익보다 국익·민생 앞세우길
나라가 태평하고 국민은 편안해야
지난 3일은 한 해 24절기 중 첫 번째이자 봄의 시작을 알린다는 입춘. 이날 이후 주택 대문과 상점 출입문에 행복이나 안녕을 기원하는 입춘첩이 부착된 곳을 쉽게 볼 수 있다.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따뜻한 기운이 도니 경사가 많아지기를 바란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매년 입춘을 맞아 춘축하는 대표적인 문구다.
간간이 눈에 띄는 또 다른 내용의 입춘첩도 있다. 국태민안(國泰民安), 가급인족(家給人足).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며, 집집마다 살림이 넉넉해 사람들이 풍족해질 것이란 뜻이다. 이는 위정자들이 마음에 새기고 좇아야 할 덕목 같은 경구다. 개인적으로 문에 써 붙인 소원에 불과하면서도 온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어서다. 정치 행위가 존재하는 목적을 명확히 제시했다고 봐도 무방하지 싶다.
두 입춘첩의 바람과 달리 우리가 처한 현실은 춥고 암울하기만 하다. 이번 입춘이 봄기운은커녕 혹독한 한파를 몰고 왔다. 기세등등한 동장군은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겨울나기를 한층 힘겹게 한다. 독감이 유례없이 유행하는 가운데 병원과 화장장이 북새통이라고 한다. 며칠째 이어지고 있는 매서운 강추위는 12·3 비상계엄에 이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가뜩이나 움츠러든 국민들 마음까지 꽁꽁 얼어붙게 만든다. 서글픈 계절이다.
초유의 현직 대통령 내란 사태가 일으킨 파장은 크다. 국격이 추락하며 국가 경제의 불안을 불렀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바람에 한국 경제와 서민의 삶을 짓누른다. 올 경제성장률 전망은 거듭 낮춰질 만큼 비관적이다. 민생 경제의 큰 축을 이루는 자영업은 소비 심리 위축과 내수 침체 탓에 도산이 잇따르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 이 지경인데도 여야 정치권은 탄핵 정국에서 차기 대선의 주도권을 쥐려는 기싸움을 벌이며 정쟁에 몰두할 뿐 경제와 민생을 방치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나라가 끝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이대로라면 한 달 뒤 따뜻한 춘삼월이 와도 국가 분위기와 국민의 심정은 희망 없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일 게 뻔하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보여주는 거센 다툼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거대 양당은 일부 강성 지지층을 등에 업고 사사건건 대립하고 충돌한다.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혐오를 키우고 국론 분열을 부추기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정권 연장 실패와 지난해 국민의힘의 4·10 총선 참패 원인은 여야의 불통과 독단에 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MIT 교수가 최근 “어떤 일도 타협하지 못하는 두 정당이 한국 위기의 뿌리”라고 지적한 이유다. “기업은 2류, 정치는 4류”라고 한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일갈은 30년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유효한 셈이다.
그런데도 여야는 뼈저리게 반성하거나 환골탈태할 줄 모른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치 쇄신 요구는 언감생심이 되고 만다. 계엄 선포로 생긴 정치 혼란과 불확실성 여파로 나라를 뒤흔들 만한 국정 공백과 경제 위기가 심화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지난 두 달간 여야는 조속한 문제 해결과 정국 안정화를 위해 만남을 갖고 허심탄회하고 진득하게 협의한 적이 없다. 경제와 민생 역시 챙기겠단 말뿐이고, 양측이 제대로 머리를 맞대지 않으니 실천될 리 만무하다.
대화와 협치를 잊은 정치가 이젠 국가 근간인 법치주의마저 흔드는 모양새다. 민주당이 헌법재판소에 대통령 탄핵심판에 속도를 내라고 압박하는가 하면 국민의힘은 진보 성향 헌법재판관들의 자격론을 운운하며 헌재에 공세를 펼친다. 정치적 득실이나 유불리를 따지며 사법부까지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행태다. 위헌적 내란과 수사 거부에 이어 혐의 부인과 궤변으로 탄핵심판에 임하는 윤 대통령, 자신의 비리 재판 지연에 혈안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검사·변호사 출신답게 법 앞에 겸허한 자세를 갖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이며 미래 세대를 위한 본보기다.
현 상황은 여야가 정파 이익을 국익과 민생보다 앞세워도 될 만큼 한가롭지 않다. 곧 있으면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부과 등 강압적 요구들이 들이닥치는 건 기정사실이다. 시급히 처리하고 성과를 내야 할 국내외 현안과 슬기로운 극복이 요구되는 악재가 산적해 있다. 정쟁으로 국력을 낭비할 틈이 없다는 말이다. 내주 초 거대 양당 대표와 대통령 권한대행, 국회의장이 참여하는 국정협의회가 열린다니 만시지탄이다. 여야정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은 국태민안이 최우선이라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 부디 협치와 통합의 정치에 나서주길 당부한다. 맹자는 경제적 생활 안정의 필요성을 의미하는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을 치국의 근본으로 삼으라 했다.
원문보기 :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5020617590842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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