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칼럼-정용관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덕수 출마론… 얼마나 설득력 있을지
작성일 25-04-16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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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모델 노리는 듯
韓 ‘경륜’ 장점이나 ‘尹과 한묶음’ 본질적 한계
‘대선 경기장’ 바로 옆까지 온 듯 보이지만
직접 선수로 뛰기엔 ‘상식’이란 장애물 만만찮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전후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소재로 한 칼럼을 연이어 쓰게 될 줄은 몰랐다. 필자는 탄핵 선고 닷새 전 “이러다 韓 대행이 尹 임기 다 채우겠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헌법재판소 재판관 8인의 법의 잣대에 따른 ‘지혜로운 결정’이 속히 나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헌재의 만장일치 파면 결정은 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상식’의 확인이었다.
한 대행은 대통령 파면 직후 잘 준비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굳건한 안보태세 유지” “통상전쟁 등 당면한 현안 대처에 만전” “대통령 선거 관리에 최선”. 정치권과 국회를 향해 국가 미래를 위해 차이를 접어두고 힘과 지혜를 모아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건조하지만 50년 공직 생활의 내공이 담긴 담화문이었다. 그런데…. 며칠도 안 돼 ‘한덕수발(發)’ 파문이 일었다. ‘대통령 몫’ 헌재 재판관 후보자 2명 지명에 이어 대선 후보 출마설이 급부상한 것이다.
한 대행의 재판관 지명은 필자의 정치적 상상력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행사 범위를 넘었느니 안 넘었느니 하는 법적 논란을 떠나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통치권을 상실한 대통령의 권한대행이 그 대통령을 대신해 고유의 인사권을 행사할 것이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6년 임기’의 재판관을 ‘60일 권한대행’이 정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을 벗어난 것이고, 이는 누가 당선이 되든 후임 대통령의 권한을 침해한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2명 중 1명인 이완규 법제처장은 계엄 사태 전부터 윤 전 대통령이 일찌감치 헌재 소장으로 염두에 뒀다는 소문이 법조계에 파다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평소 무리하지 않는 스타일의 한 대행이 왜 이런 정치색 짙은 인사를 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다만 장님 코끼리 만지듯 취재를 해보니 한 대행도 처음엔 이 처장 등의 재판관 지명을 내켜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정권이 넘어가면 입법 행정 사법에다 헌재까지 진보가 다 장악한다”는 ‘누군가’의 강력한 설득이 있었다는 얘기 등이 들리지만 결국 실행 여부는 본인의 몫이다. 한 대행은 무슨 의도였을까.
공교롭게도 재판관 지명 사고(?)를 친 8일은 ‘한덕수의 날’이었다. 그날 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28분 통화가 이뤄졌고, 곧이어 미국 CNN과의 ‘영어’ 인터뷰 내용이 공개됐다. 그리고 이틀 뒤 국내 한 언론에 트럼프 대통령이 한 대행에게 대선 출마 의사를 물었고 한 대행이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서 고민 중”이라고 했다는 단독 보도가 나오더니 이에 맞춰 국민의힘에서 한덕수 차출론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게 우연인지, 뭔가 잘 짜인 기획하에 큰 그림이 하나둘 그려지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 대행의 긴 침묵은 예사롭지 않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2002년 ‘반(反)이회창’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모델을 언급했다. ‘반이재명’ 연대의 한 축으로 한 대행을 활용하려는 흐름이 있고, 한 대행도 이 흐름에 발을 살짝 담갔다는 것이다. 즉, 한 대행을 중도 보수를 표방하는 국민 후보로 나서게 한 뒤 국민의힘 후보와의 단일화를 통해 컨벤션 효과를 노린다는 구상이다. 2002년엔 정 후보가 결과적으로 불쏘시개 역할을 한 셈이 됐지만 이번엔 한 대행이 최종 후보가 되는 것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시나리오 같지만 얼마나 현실성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 대행이 거대 야당에 각을 세우며 맷집이 세진 듯하지만 위험한 도박에 다걸기를 할 정치적 뱃심을 갖고 있을지엔 “글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그가 자존심이 아주 강하고 권력 야심(野心)도 있다는 평가도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공직 경험, 안정감, 통상 전문성, 출신 지역 등은 장점이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3년 가까이 한배를 탔던 탄핵 정부의 2인자라는 점은 ‘본질적’ 한계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내 권력을 유지하려는 친윤 주류의 도구로 이용되고 말 것이란 관측도 부담이다.
한 대행은 자의든 타의든 ‘대선 경기장’ 옆까지는 온 듯 보인다. 실제 선수로 뛸지는 본인의 판단이다. 아직 본격 무대에 오르지 않은 만큼 어느 정도 잠재력이 있는지 예측하긴 쉽지 않다. 다만 그의 출마 여부는 한 개인이나 특정 정파의 정치적 성패나 득실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본질적 책무를 중립적 대선 관리와 국정 위기관리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 대행 앞에 놓인 가장 높은 장애물은 돌고 돌아 민주공화정의 ‘상식’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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