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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김창균 조선일보 논설주간] 조국의 극진한 ‘자기 사랑’, 나라에 毒일까 藥일까

작성일 21-06-0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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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전체가 의혹 합리화
위선마저 궤변으로 감싸
與 주자들 조빠 눈치보며
민심 걱정하는 당과 엇박자
자신만 생각하는 曺 행태가
정국엔 어떤 영향 주게 될지



조국 전 법무장관의 회고록 ‘조국의 시간’을 읽는 내내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했다는 ‘나르시스’를 떠올렸다. 책 서문의 절반이 자신을 응원해준 지지자들의 모습이다. 건물 승강기에서 “힘내세요”라고 안쓰러워한 시민들, 누군지 알아보고 요금을 받지 않은 택시기사, 밥을 먹고 나오는데 주차장까지 따라와 편육과 김밥을 차 안에 넣어 준 식당 주인, 포장 주문을 찾으러 갔더니 “몇 개 더 넣었습니다”라며 봉투를 건넨 빵집 할머니… . 가슴 찡한 사례가 수십 건 열거돼 있다.

그는 자신과 가족에 대한 의혹을 검찰, 언론, 야당 카르텔의 창작품이라고 했다. “보수 카르텔이 마음만 먹으면 그 칼날을 피할 수 있는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다. 우선순위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조국 자신은 검찰 개혁의 깃발을 든 괘씸죄 때문에 우선순위 맨 앞자리로 끌려나온 희생양이라는 주장이다.

잘못을 인정한 대목도 있다. ‘과거 진보적 학자로서 했던 말과 실제 삶이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방점은 ‘완벽히’라는 단어에 찍혀 있다. 99%는 언행 일치했지만 1% 그러지 못한 대목도 있었다는 거다. 차고 넘치는 내로남불과 위선만은 철벽 방어가 어렵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조국이 죗값을 온전히 치를 사람은 아니다. 자신을 감싸준 한겨레 신문 칼럼에서 양형 감경 사유를 찾아냈다. “역설적이지만 위선이야말로 선을 닮고 싶은 우리의 또 다른 본성을 증거한다. 위선은 역겹지만 위선마저 사라진 세상은 야만이다.” 위선에 대해 “그래도 최악은 아니다”라고 한 수 접어주는 얘기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본다. 위선도 조국과 한 몸으로 묶인 덕분에 팔자를 고쳤다.

조국은 자신의 희생 제물 이미지를 반사해 줄 거울이 필요했다. 조국은 주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똑 같은 일을 겪고 있다”고 위로했다고 한다. 조국은 자신에 대한 수사가 ‘공소권 없음’으로 귀결되기를 희망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주장도 회고록 속에 담았다. ‘공소권 없음’은 피의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때 수사가 중단되는 상황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그렇게 종결됐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일’에 책 서문을 쓰게 돼서 감회가 남다르다고 했다. 마치 우연히 날짜가 겹쳤다는 투다. 자신의 처지가 노무현과 닮은 꼴이라는 연상 작용을 독자들에게 반복적으로 주입시킨다.

노무현이라는 거울 하나로 성이 차지 않았던 걸까. 회고록에는 천주교 신앙 때문에 고초를 겪었던 18세기 실학자 정약전이 등장한다. “나는 정약전의 처지가 됐다. 정약전이 흑산도로 귀양갔을 때 왜 물고기만 연구하며 자산어보를 썼는지 이해가 간다”고 했다. 정약전을 소재로 한 영화 ‘자산어보’가 개봉됐을 때 아들과 보러갔다고 한다. 영화가 끝나자 아들은 “우리 집 이야기 같네요”라고 했다. 그래서 아들의 등을 두드리며 영화관을 나왔다는 것이다. 21세기 내로남불 거사의 동병상련 파트너로 소환된 정약전의 심정이 궁금해진다.

조국은 회고록을 “전국에서 개최된 촛불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바친다고 했다. 그 규모가 수백만명이라고 했는데 여권 사람들 들으라는 무력시위다. 그 효과는 당내 경선 사정이 다급한 대선 주자들 반응에서 곧장 확인된다. 이낙연 전 총리는 “가슴이 아프고 미안하다”고 했고, 정세균 전 총리는 “가슴이 아리다”고 했다. 본선 민심을 더 신경 써야 하는 당 사정은 다르다. 송영길 당 대표는 허겁지겁 조국 사태에 대한 사과 입장을 밝혀야 했다. 여당 사람들은 사석에서 “야당에서 이준석 돌풍이 부는 최악의 시점에서 조국 회고록이 나왔다”고 속을 끓인다. 문 정권이 ‘조국의 시간’이라는 늪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교보문고 판매대에 놓인 회고록이 모두 팔려 카운터에 비치된 견본을 들고 왔다. 조국은 판매 하루 만에 10만부가 팔렸다고 자랑하는 글을 올렸다. 정가 1만7000원의 10% 인지대만 받아도 벌써 1억7000만원 수익을 확보했다. 조빠들이 회고록 판매 부수로 그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몇 권씩 구매하며 인증샷을 올린다고 한다. 앞으로 20만, 30만부 고지를 넘을 때마다 조국의 나르시시즘은 어김없이 소셜 미디어를 타게 될 것이다. 선한 의도가 좋은 열매를 담보하지 못하듯, 좋은 열매가 반드시 선한 의도에서 싹트는 것도 아니다. 조국의 극진한 ‘자기 사랑’이 나라 전체로는 독(毒)이 될지, 약(藥)이 될지 궁금해진다.

원문보기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1/06/03/ZQ3VMFQLUJH5LL7RNGO2H355ZI/?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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