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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봉 칼럼] 괭이의 날을 밟으면, 자루가 얼굴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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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114회 작성일 2015-03-1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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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완화·금리인하로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가계빚 무거워져서야 어찌 나라가 온전할까

전인미답의 세계경제, 안전판은 남겨둬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사고를 쳤다.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려 1.75%. 사상 첫 1%대 금리 시대다. 한국경제가 낯선 길로 들어섰다. 탄탄대로면 좋으련만 가시덤불이다. 힌트도, 예고도 없었다. 불과 얼마 전에 금리가 경제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정도로 충분하다 했다. 그런데, 왜? 전격적인 금리 인하 배경이 좀 야릇하다. 지난해 하반기 두 차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렸는데, 약효가 미미해서란다. 하니, 주사 한 방 더 맞아야겠다, 그런 이야기인가.



야릇한 것은 이뿐이 아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3.3%, 올해는 3% 정도로 잡고 있다. 경기 하방의 경향성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하나, 그것이 금리를 내려야할 까닭인지는 의문이다. 대내외 경제 여건은 극히 유동적이다.



미국, 일본에 이어 유럽과 중국도 금리 인하로 양적 완화에 가세했다. 세계 경제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원시림으로 들어서 혼돈이 가중된 상태. 게다가 미국이 양적 완화를 끝내고 곧 금리 인상에 나설 예정이어서 한 치 앞을 알기 어렵다. 한쪽에선 달러를 거두고, 다른 쪽에선 돈을 푼다. 환율이 요동치게 돼 있다. 이때 금리가 낮으면 달러 유출과 환율 급등으로 또 홍역을 치를 판이다. 이건 잘못하면 쓰나미다.



머지 않은 미래가 그렇다. 그런데도 갑작스러운 금리인하인가. 정말 아리송하다. 중앙은행의 핵심 기능은 경제의 안정적 운영에 있다. 과열되려면 식히고, 냉각되려면 적정한 온기를 제공한다. 이른바 선제적 대응이다. 자칫 오해하기 쉬운데 목적은 경기 부양이 아니다. 한데, 지금 한은 총재의 모습은 마치 경기 부양에 나선 경제 관료 같다.



그래, 딱 그 모양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로 눈을 돌려 보자. 부총리가 되자마자 내놓은 게 부동산 대책. 대출의 빗장을 풀어 빚 내 집 사라고 흘러간 옛 노래를 불렀다. 1000조를 약간 넘던 가계 부채가 이후 급증했다. 1년간 68조 늘어 지난해 말 1089조. 올 1, 2월에도 4조4000억 원이 늘었다. 가계 빚이 국내총생산(GDP)의 80%에 육박한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다. 그래도 감당할 만한 수준이어서 괜찮다는 게 우리의 정책 당국이다.



건축으로 경기 부양하겠다는 건 언 발에 오줌 누기다. 병의 근원을 두고 대증요법이라니…. 대수술이 시급한 중병 환자에게 영양제 투여란 엉터리 처방을 내려 무슨 효과가 있을까. 하도 떠들어 대니 그제서야 구조 개혁 이야기를 꺼냈다. 한데, 처방이 또 틀렸다. 공공, 노동, 금융, 교육 등 4대 개혁을 내세운 것이다. 암 환자를 놓고 팔 다리 주물러 치유하겠다는 게 말이 될 턱이 없다.



최근 들어서는 더욱 가관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들고 나왔다. 노동의 유연성 운운하더니 이젠 임금 인상이란다. 최저임금이 OECD 중위권이라니 좀 올리는 건 틀리지 않다. 한데, 그게 무슨 경기 부양책이 되겠는가. 그러더니 이번엔 한국판 뉴딜 정책이란다. 정부와 민간이 부담과 이익을 함께 나눈다? 도대체 뭔 뜬구름 잡는 소린지.


처방전은 많은데 백약이 무효다. 그래, 바로 이 지점이다. 경제 부총리로 안 되니 한은 총재가 대타로 나선 모양새다. 갑작스러운 금리 인하가 뜨악한 건 그런 이유다. 경기 부양은 박수에 목마른 정부의 전유물이다. 한은은 거꾸로 가야 한다. 경기가 미약하지만 마지막 카드를 쓸 정도로 최악인 상태는 아니다. 그렇게 버텨야 한은답다. 정부가 엑셀러레이터라면 한은은 브레이크에 해당된다. 제동기가 가속기 역할을 하면 그게 정상인가.



단정적으로 말하면 이번 금리 인하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왜 그런가. 잠시 금융시장이 화색하고 기업들이 반길 것이다. 그것뿐이다. 잠깐의 웃음 뒤엔 진한 후유증만 남는다. 이자율의 하락은 대출 급증과 부동산 투자로 이어진다. 은퇴자들도 벼랑으로 향하는 대열에 끼어든다.



문제는 그 뒤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달러 회수는 시기 선택만 남았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한미 간의 금리 격차가 좁혀져 달러가 썰물을 이룬다. IMF사태 때 그 위력은 실감한 바다. 피해를 줄이려면 우리도 금리를 올려야 한다. 거대한 솜뭉치를 진 가계에 물을 부으면? 파산밖에 더 있겠는가. 괭이의 날을 밟으면 자루가 얼굴을 친다. 그걸 모르는가.



금리는 경제의 안전판이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마지막 카드다. 아직은 위기가 아니다. 지금, 금리 카드를 소진한다? 보릿고개 넘기자고 종자를 삶아먹는 꼴이다. 금리의 둑이 터지면 가계빚은 폭탄이 된다. 국민 개개인의 합이 국가다. 가계가 무너지고서야 어찌 나라가 온전할까.



저성장의 늪은 산업적 한계 때문이다. 주력산업을 대체할 신산업, 그걸 찾는 데 실패한 탓이다. 멀리 있는 물로는 불을 끌 수 없다고 했다. 근본의 개혁 없이 변죽을 울려서야 해법이 되기 어렵다. 지금은 경제의 뼈와 살을 바꿔야 할 시점이다. 부동산, 금리로 처방전을 내는 건 돌파리 의사나 하는 짓이다. 한은 총재는 경제의 수문장답게 마지막 보루인 금리의 안전판만은 지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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