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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 칼럼/10.14] 오키나와에서 본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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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559회 작성일 2013-10-1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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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미군의 요충지 오키나와

‘탈기지’를 갈망하지만 동북아 정세는 그들의 꿈과 멀다

한때 해상강국이었던 오키나와 국제질서 속 그들의 오늘은

他力에 대한 경계와 역내 협력의 필요성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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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 논설위원실장



“구조적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오키나와의 주권 회복이 필요하다. …도쿄의 중앙정부는 오키나와의 이익을 대표하고 있지 않다. 오키나와 대표가 참가하지 않은 합의에 오키나와인이 구속당할 이유는 없다.”(12일자 류큐신보 3면)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미국의 외교, 국방장관이 이달 초 도쿄에서 개최한 ‘2+2’ 방식은 안 되고, 오키나와 대표를 더해 ‘2+2+1’ 회의를 만들어야 한다는 현지 신문 칼럼의 일부다.



일본 47개 도도부현 중 하나인 오키나와 현이 주권 회복을 말하고 중앙정부의 대표성까지 부정하는 것은 자칫 ‘독립’을 의미하는 것으로 비치지만 오키나와에선 그리 과격한 표현도 아니다. 2000년 선진 8개국(G8) 정상회의가 오키나와에서 열렸을 때도 현지의 대학교수가 “오키나와는 독립하는 게 낫다”고 한 말에 놀란 적이 있지만 그건 나의 무지에서 비롯됐을 뿐이다.



우치난추(오키나와인이 자기들을 부르는 오키나와 말)가 야마톤추(오키나와인이 본토 일본인을 부르는 말)와 정서가 다른 이유는 분명하다. 거슬러 올라가면 독립 해상왕국 류큐국(琉球國·1429∼1879년)을 일본이 무력으로 강제 병합한 때문이고, 가깝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최후의 결전장으로 10만 명이 넘는 주민이 희생을 당하고도 27년간 미군 통치를 받은 데 이어 지금도 주일 미군기지의 74%가 오키나와에 밀집돼 있어서다.



그럼 오키나와 문제는 미국만의 책임인가.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에서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오키나와의 ‘식민지적 상황’을 ‘시스템’화하고 있는 데는 야마톤추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이다. 일본과 일본인이 국토 면적 0.6%, 인구 1%에 불과한 오키나와에 과도한 희생을 강요하고도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오키나와를 의식조차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2013년 한승동 번역, ‘돌베개’ 발행의 같은 책).



현재 오키나와의 최대 현안은 후텐마 기지의 이전과 수직이착륙수송기 오스프리의 배치 문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자신들의 운명을 타인의 손에 맡겨야 했던 뿌리 깊은 울분의 일부일 뿐이다. 오키나와의 ‘몸부림’은 출구를 찾을 것인가. 지난주 요코다(공군), 요코스카(해군), 후텐마(해병) 등 일본에 있는 핵심 미군기지들을 둘러보고 느낀 소감은 회의적이다.



첫째, 중국의 급격한 대두와 북한의 불확실성 때문에 주일 미군기지의 중요성은 여전하고, 오키나와보다 나은 곳을 찾기는 어렵다. 둘째, 미국은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지지하며 일본은 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셋째, 미국과 일본의 이런 공통 이익을 트집 잡을 명분도 딱히 없다. ‘내일’까지 내다보는 견고한 미일동맹에 ‘오늘’을 얘기하는 오키나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너무 좁다.



일본의 현 하나와 주권국 한국을 비교하는 게 적절치는 않다. 그러나 오키나와에서 바라본 동북아의 냉엄한 국제질서는 ‘불편한 질문’을 하게 만든다. 중국의 대두를 우리는 ‘내일’의 관점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한반도 유사시 후방기지 역할을 할 일본을 안보 면에서도 경시할 것인가. 한미동맹을 위해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정답을 말하긴 어렵지만 우리만의 시각에서, 우리에게만 듣기 좋은 답변을 끌어내봤자 소용없다는 건 분명하다.



슈리성(首里城)은 류큐의 왕궁이었다. 1458년 이곳 정전(正殿)에 아담한 종(鐘)이 하나 걸린다. 조선 중국 일본은 물론이고 한때 인도네시아까지 진출했던 해상강국 류큐의 자부심이 양각돼 있다. 그중 네 글자가 종의 이름이 됐다. 만국진량(萬國津梁). 여러 나라의 나루터와 다리, 즉 세계의 가교가 되겠다는 꿈이었다. 그러나 꿈의 자리에 망국이 들어앉았다. 종을 달기 29년 전 통일을 이루면서 국책(國策)으로 무기를 모두 녹여 쟁기를 만든 것도 화근이었다.



1879년 일본이 류큐를 오키나와 현으로 강제 편입시킨 뒤 밀어붙인 동화정책은 조선병합 이후의 그것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천황신격화, 교육칙어, 오키나와어 사용 금지, 창씨개명, 단발령, 신사 건설, 왕족의 도쿄 거주 강제…, 그리고 오늘. 오키나와는 여전히 일본 속에 있고, 한국은 독립했다. 무엇이 운명을 갈랐는가. 우리의 독립의지와 역량은 아무리 상찬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자력(自力) 과신을 경계하고 타력(他力)의 냉혹함에도 대비해야 내일이 있음을, 오키나와는 말하고 있다.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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