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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9.26] 메르켈과 독일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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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463회 작성일 2013-09-26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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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이 총선에서 승리한 이유로 파이낸셜타임스(FT)는 구제금융(bail out)을 결코 허용하지 않은 건전재정 운용, 부채탕감 거부, 빚을 수반한 정부지출 불허 등 3가지를 꼽았다. 그는 남유럽 국가들이 도와달라고 하면 \"당신네들도 독일처럼 국가부채 상한제를 도입하라\"고 딱 잘랐다. 납세자들의 부담을 늘리는 EU 회원국들의 그 어떤 정책제안도 거부했다. 디벨트지(紙)는 \"앙겔라 메르켈은 정당 없이 승리했다\" 하고 쥐트 도이체차이퉁은 \"메르켈은 유로 위기 속에서도 자린고비 같은 또순이 역할을 여태껏 가장 훌륭하게 해냈다. 이 점이 많은 독일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승리를 평가했다.



영국의 대처가 핸드백에서 수첩을 꺼내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에 나오는 구절을 자주 인용했듯 메르켈은 EU 대표들과 만나면 단위당 노동생산성 그래프를 그린 메모지를 꺼내 읽었다. `독일의 단위당 노동비용을 2000년을 100으로 할 경우 2012년 106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영국은 137, 이탈리아 134, 프랑스 138, 스페인 125로 올랐다.` 다른 나라 정상들의 얼굴이 벌게질 수밖에 없다. 12년 동안 6%밖에 올리지 않았다니! 이 거짓말 같은 숫자가 금융위기 5년간 독일이 세계의 우등생으로 우뚝 서게 된 비결이다.



현재 독일의 실업률은 5.4%로 EU 평균 12%의 절반도 안 되고 청년실업률은 8%로 한국보다 낮은 것 같다. 스페인, 그리스가 50% 이상인 것과 비하면 천국이다. 한국이 내년 25조원 재정적자를 내는데 독일은 흑자이고 국가부채도 낮아지는 추세다. 독일과 프랑스 간 경제력 갭은 사상 최대다.



이런 독일 모델은 전 세계에 흠모의 대상이다. 이 시점에서 한국이 가장 벤치마킹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위의 임금상승 억제와 부채관리의 탁월함일 것이다. 아니, 한 번 크게 망할 뻔하다 놀라 완전히 고질병을 뜯어고친 대오각성이다.



2003년 금속노조는 주당 38시간 근로에서 35시간으로 축소할 것을 조건으로 대파업을 벌였다. 당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4%. 이러다간 2류 국가로 전락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정치도 노조도 반성했다.



지멘스는 직원 2000명 구제를 조건으로 주당 40시간 근로로 바꾸고 헝가리로의 공장 이전을 철회했다. 폭스바겐, 바이트뮐러, 트룸프, 보쉬그룹 등은 눈물로 뼈아픈 구조조정을 하고 10년간 임금을 동결했다. 국민들은 연금 수령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실업급여 지급기간은 32개월에서 12개월로 깎아내는 고통을 참아냈다.



그들은 고용률이 낮은 나라는 위기를 겪는다는 점에 착안했다. 2003년 하르츠개혁 당시 독일의 고용률은 68%에서 현재 76.7%로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그리스(55.3%) 스페인(59.3%)의 초라한 고용률을 보라.



메르켈이 총리 3선에 성공하면서 `유럽은 어디로 가는가=독일은 뭘 원하는가`와 동의어다.



헨리 키신저는 일찍이 \"독일은 세계 속에선 너무 작은 나라이고 유럽 속에선 너무 큰 나라\"라고 갈파했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세계 최고의 꿈이 꺾인 독일은 이상할 정도로 `소국(小國) 자세`다. 메르켈이 견지해온 긴축, 부채탕감 거절은 좀체 바뀌지 않으리란 관측이다. 3선의 메르켈은 이제 막 회생하기 시작하는 유럽경제를 바탕으로 장차 유럽합중국으로 가기 위한 은행동맹, 정치연합을 어떻게 일궈낼지 궁금하다.



독일은 이번 선거에서 탁월한 리더십과 폴로십을 세계에 증명했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팩트는 국민의 인내심이다. 유럽의 병자 신세를 벗어나기 위해 10년간 급여를 안 올리고 연금도 미루는 건 아무나 못 한다. 국민이 이렇게 독하게 나오니 정치꾼들이 포퓰리즘으로 설치지 못한 것이다. 복지 축소를 사과하는 대통령에게 어르신들을 배반했다며 유치하게 힐난하는 야당은 없었다. 이것이 독일과 한국 정치의 차이다. 독일을 닮을 필요가 없는 부분 하나. 미국의 TGIF(트위터, 구글, 아이폰, 페이스북) 같은 창의성 있는 기업을 보유하지 못한 체질이다.



[김세형 매일경제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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