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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다르다고 틀린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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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250회 작성일 2013-05-2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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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 휴교령이 내려 모든 대학이 문을 닫았다. 전날 밤 학생회 간부들은 대부분 체포됐고, 남은 사람은 잠수했다. 그 이전에 대학생들 사이에선 ‘휴교령이 내리면 그날 몇 시 어디에 모인다’는 사발통문이 이미 돌았다. 낮 12시 서울 영등포역 앞. 시위도 벌였다. 그러나 잠시였다. 스크럼을 짜기도 전에 흩어졌다. 총칼로 무장한 군인들은 전경들과 달랐다.



 그날로 서울에선 대학생들의 저항이 거의 사라졌다. 계엄군에 검열당한 신문은 녹슨 바리캉으로 깎은 머리같이 군데군데 허연 자국을 남긴 채 배포됐다. 자취방에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전화로 들었다는 광주 소식은 무엇이 진실이고 헛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참혹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11185022.html?cloc=olink|article|default\"0\"



 광주에서의 시작은 서울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광주 학생들은 신군부의 총칼에 물러서지 않았을 뿐이다. 누가 퍼뜨렸는지 모르는 북한군 개입설은 당시에도 일부 떠돌았다. 그러나 계엄군의 바리케이드가 걷히면서 함께 사라졌다. 국회 광주청문회, 전직 대통령 재판을 통해서도 실상이 확인됐다.



 그런데 이제 와 웬 뜬금없는 북한군일까. 특정지역에 대한 모욕적 표현도 아무 거리낌 없이 쏟아낸다. 그날의 공포와 절망, 눈물을 안다면 같은 국민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 통합 노력을 아는 보수세력이라면 해서는 안 될 언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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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분명한 사실을 보도하고 논평한 것도 일부에는 이상하게 보인 모양이다. 기념사업회 측은 중앙일보에 감사 인사를 했다. 일부 완고한 보수진영에서는 변절이라 비난했다. 인터넷에선 편을 갈라 공방을 벌였다. 신문을 머리에 뿔 달린 도깨비나 특정 정파의 애완견 정도로 오해한 건 아닐까. 하긴 공동 작성해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노태우 대통령 해외순방 기사를 두고도 어떤 시민단체가 보수 신문과 진보 신문의 보도가 얼마나 다른지를 장황하게 비교한 글이 한 언론단체 회보에 실린 적이 있다. 진영 논리에 빠지면 성추행을 비호하고, 음모설을 믿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진다.



 물론 이런 편가르기와 편견의 가장 큰 책임은 언론 자신에게 있다.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최근 언론계에서는 미디어가 위기에 놓였다고 입을 모은다. 관훈클럽, 언론재단 등이 연구보고서를 냈다. 공통으로 지적되는 문제는 뉴미디어의 등장이다. 그럼에도 가장 큰 원인과 해법은 결국 언론의 신뢰로 귀착된다.



 사실관계의 왜곡보다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한 불관용이 언론에 더 심각한 상처를 입혔다. 이런 편협함은 사회 전반적 풍토가 됐다. 독자의 신뢰는 무너졌다. 다양한 의견이 허용되고, 활발하게 토론이 벌어져야 건전한 공론의 장이 발전할 수 있다. 건전한 보수와 건전한 진보는 공생관계일 수밖에 없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신문 중에서 진보적이다. 그럼에도 보수 논객을 특별 관리한다. 닉슨의 연설문을 쓰던 윌리엄 사파이어를 1973년부터 무려 33년간이나 칼럼니스트로 모셨다. 대표적 보수 논객인 데이비드 브룩스도 2003년부터 매주 두 번 뉴욕타임스에 고정칼럼을 싣고 있다. 같은 신문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과는 수시로 충돌한다. 양극화를 두고 브룩스는 ‘노동자 계급의 도덕적 부패’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크루그먼은 ‘경제적 불평등의 결과’라고 반박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복지정책에 대해서도 브룩스는 ‘실행될지 의심스럽다’고 조롱하고, 크루그먼은 ‘더 과감하게 추진하라’고 주문한다. 그런다고 뉴욕타임스의 입장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우리 독자는 보수진영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어제부터 한겨레와 중앙일보가 같은 주제의 사설을 비교해 싣는 공동기획을 시작한 것은 그런 취지에서다. 필자의 스펙트럼을 넓히려는 노력에 더해 일주일에 한 건이긴 해도 다른 시각의 사설을 읽고 비교해 볼 기회를 독자에게 제공하려는 것이다. 독자는 현명하다. 이런 기획에 혼란을 느끼기보다 자신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좀 더 잘 이해하는 기회로 삼을 것이라고 믿는다.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생각이 늘 옳은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겸손함이 민주주의의 기초다. 대화와 타협은 거기서 시작된다. 좌든 우든 전체주의는 한 가지 의견만 강요하는 데서 나온다. 신문에는 다른 신문 사설과 비교되는 것이 사실 왜곡과 논리적 비약을 경계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좀 더 다양한 입장을 둘러보고 심사숙고하는 자극제도 될 수 있다. 나와는 다른 생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고 차이를 좁혀 가려 노력해야 공론장이 살아난다. 그런 정신이 우리 사회, 특히 SNS 세계로 퍼져 나가기를 기대한다.



김진국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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