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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구 칼럼/5.14] 제2, 제3의 윤창중을 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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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121회 작성일 2013-05-14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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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 성추행 사건으로 남양유업 파문이 슬그머니 사그라졌다. 엽기적인 윤창중 추문에 눈길이 더 가는 거야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남양유업 사건을 적당히 덮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어찌 보면 윤창중의 성추행과 남양유업의 욕설 파문은 우리 사회 고질병인 갑을 문화의 이란성 쌍생아라 할 수 있다.

불평등한 갑을 문화는 우리 사회 전반을 촘촘히 얽어매온 그물망이다. 수많은 을들은 천대받는 을의 처지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쳤고, 갑이 된 자들은 거머쥔 권력을 맘껏 과시하며 휘두르곤 했다. 청와대 대변인이란 ‘슈퍼갑’인 윤창중이 임시로 고용된 여성 인턴을 성추행한 것도 이런 폭력적 갑을 문화와 궤를 같이한다.

불공정한 갑을 문화가 존속하는 한 너와 내가 더불어 살아간다는 공동체 의식은 고사하고 기회만 있으면 상대방을 헐뜯고 짓밟으며 그 위에 올라서려 할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다양한 정치세력의 공존과 경제적 공생, 그리고 사회적 협업이 더욱더 요구된다. 지금 같은 일방적인 갑을 문화 아래서는 이런 가치가 구현되기 힘들다.

약탈적 갑을 문화 개선을 위해서는 제도적인 측면과 의식적인 측면을 분리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남양유업 사태에서 드러난 밀어내기 관행은 현행 제도 아래서도 개선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런 불공정 행위를 철저히 단속해 엄벌만 했어도 지금 같은 사태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아르바이트생들의 문제나 원청과 하청업체 간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것은 갑의 횡포에 눈감은 정부의 직무유기 탓이 크다. 남양유업 사태를 계기로 국회에서 관련법 정비 움직임이 있는 것은 다행이다. 밀어내기 관행을 개선하는 데 그치지 말고, 사회 전반의 약탈적 갑을 문화를 총점검해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대적인 제도 정비에 나서길 바란다.

최근 경제권력을 기반으로 한 갑들의 횡포가 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는 정치권력이 절대 갑이었고, 그들이 을인 국민에게 행사한 물리적 폭력은 한마디로 극악했다. 하지만 정치민주화의 진전으로 정치권력에 대해서는 제한적이나마 민주적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경제권력에 대한 사회적 통제는 오히려 느슨해졌다. 역대 정부가 경제 성장을 위해 친기업 정책을 펴오면서 기업들의 ‘갑질’에 대해 적당히 눈감고 왔기 때문이다.

정부의 비호와 묵인 아래 비대한 갑이 된 경제권력은 하청업체, 아르바이트생, 대리점, 대형마트 입주업체, 납품업체 등 경제적 을들을 맘껏 유린하고 약탈해 왔다. 지난해부터 우리 사회의 화두로 급부상한 경제민주화도 이런 약탈적 갑을 관계를 청산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반영된 것이었다. 경제민주화를 더욱 강력하게 추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제도를 보완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한다고 갑을 문화가 완전히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갑들의 근본적인 의식 변화 없이는 공정한 갑을 관계를 기대할 수 없다. 남양유업 사태 이후 기업마다 기존의 불평등한 갑을 문화 개선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있다. 예절교육을 상례화하고, 아예 본사를 ‘을’, 협력업체를 ‘갑’이라고 표현하는 곳까지 있을 정도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동등하고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하고, 그에 합당하게 응대하는 것이다. 정치·경제적 차이나 성별 차이를 빌미로 인격적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최근 차별금지법 제정 무산은 타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얼마나 후진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상징적 사례였다. 이처럼 ‘네 안에 내가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한 불평등한 갑을 문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회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우연이건 필연이건 그때그때 주어진 시대적 과제를 성공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불공정한 갑을 문화도 그중 하나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제2, 제3의 윤창중을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른다.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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