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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2.27] 박정희가 되면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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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1,892회 작성일 2013-02-2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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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그제 청와대로 들어갔다. 1979년 11월 21일 청와대를 떠나 꼭 33년 3개월 3일을 밖에서 보내고 돌아간 셈이다. 그가 취임 연설을 하는 동안 터져 나온 박수 소리는 33번.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18년간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을 18대 대통령이 되어 다시 들어간 것이다. 숫자의 조화가 의도된 조작처럼 척척 들어맞는다. 시중에는 이런 식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를 숫자로 연결해 신비주의로 포장한 글들이 돌아다닌다.



 박 대통령에게 아버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이 억지로 갖다 붙이는 것만 아니다. 박 대통령 스스로 아버지의 그늘을 지우려 하지 않는다. 그는 취임사에서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약속했다. 박정희 시절 ‘한강의 기적’을 본뜬 미래 구상이다. 시대적 소명을 잘못 짚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지금 국민들이 가장 다급하게 원하는 것도 먹고살 걱정을 면하는 것이다. 그것이 복지고, 일자리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미래성장산업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보면 박 대통령의 취임사는 매우 현실적이다. 선거 당시 표심에 흔들려 과장됐던 약속들도 차분히 정리되어 가고 있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아버지로부터 배운 통치술을 과제 선정뿐 아니라 실행 방법에까지 적용하려 하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다. 우리 사회와 주변 환경은 이미 전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국민 모두가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다짐하는 박 대통령의 취임사를 들으면서 ‘10월 유신’ 당시 한 팸플릿을 떠올렸다. 72년 10월 개헌을 앞두고 정부는 국회를 해산한 뒤 엄청난 홍보전을 펼쳤다. 서동요처럼 아이들은 유신 찬양노래로 고무줄놀이를 했다. 그때 집집마다 돌린 팸플릿에 ‘농촌에도 집집마다 자가용을 갖게 된다’고 약속한 부분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시골 중학생이었던 나에게는 ‘수출 100억 달러’ ‘1인당 소득 1000달러’라는 추상적인 숫자보다 당시 최고의 인기 만화가가 그린 노란 자동차 삽화가 더 인상적이었다.





 결국 박정희의 약속은 지켜졌다. 정치적 억압에 대해 비난은 받지만 후진국이 짧은 기간에 근대화한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G2로 부상한 중국도 사실 박정희 모델을 차용해 경제건설을 해낸 경우다. 개발도상국에선 한국이 흉내 내고 싶은 발전 모델이다. 그래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한 모양이다. ‘결과로 심판 받겠다’는 고집을 압축해 보여주는 표현이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이 하는 일에 신념이 강했다. 그만큼 저항도 거셌다. 78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대통령 취임식 날 대학생이었던 필자도 잠을 못 이루고 동료들과 폭음한 기억이 있다. 그런데도 18년간 밀어붙일 수 있었던 건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만 통한 힘이다. 돈이 있고, 초법적인 공권력이 있었다. 당시 야당의 정치자금도 권력자가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불법적인 사찰과 연행, 폭력, 고문이 권력자의 손에 있었다. 그럼에도 시대가 변하고 권력의 피로가 쌓이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이제 그 시절과는 완전히 다르다. 정치에서 돈도, 공권력도 거의 사라졌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김윤환 의원이 구시대의 마지막 정치조율사가 아니었을까. 그런데도 대통령에게 돈과 폭력을 휘두르던 시절의 전지전능한 정치력을 기대한다. 기대에 맞추기 힘든 대통령은 아예 대화의 문을 닫아걸기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에 이르고,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시위로 취임 초부터 국정의 동력을 잃어버린 것이 대표적인 예다.



 박 대통령도 벌써부터 심상치 않다. 북핵 같은 외부적 요인을 들먹일 것도 없다. 허니문이 취임도 하기 전에 꼬리를 감추기는 처음이다. 장관 청문회는커녕 정부조직법도 표류하고 있다. 사회 각 부문에서 일찌감치 깃발을 들 태세다. 서울 시내 시위가 가능한 장소는 이미 예약이 꽉 찬 상태라고 한다. 자칫 촛불이 재연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당선 이후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불안하다. 인사를 봐도 여론에 개의치 않는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처럼 법안 통과를 위해 야당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고, 설득하는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당이나 참모진에도 큰 그림을 그리는 전략가나 소통을 할 융통성을 보이는 사람이 없다. 성실한 일꾼만 보인다. 배신과 음모 속에 보낸 세월과 여성이라는 성적 차이가 더 높은 절벽을 쌓은 것 같다. 어딘가 숨구멍을 뚫지 않으면 질식하지 않을까 겁이 난다.



김 진 국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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