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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1.9] ‘철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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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0,517회 작성일 2013-01-0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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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상영된 영화 ‘철의 여인(The Iron Lady, 2011)’은 1979∼90년 영국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 스토리다. 대처 역의 메릴 스트립은 정신과 의사가 “요즘 기분이 어떠세요” 하고 묻자 “요즘 정치인들의 문제가 뭔지 아십니까. 대중의 기분만 묻는다는 겁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는 묻지 않고요”라고 답했다. 음미해볼 만한 대사가 또 있다. “생각을 조심하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하라,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하라,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하라, 성격이 된다. 성격을 조심하라, 운명이 된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된다.”



대처는 1982년 4∼6월 아르헨티나와 치른 포클랜드 전쟁에서 전시(戰時) 리더십을 발휘했지만 임기를 통틀어 본다면 ‘평시(平時)의 지도자’였다. ‘철의 여인’ 칭호는 고복지·고비용·저효율·경제추락으로 요약되는 영국병(病)을 강한 의지와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수술해낸 데 대한 시대의 훈장이었다. 포클랜드 전사(戰史) 속의 대처는 또 다른 ‘철의 여인’이었다. 포클랜드는 아르헨티나 대륙부에서 500km, 영국 본토에서는 1만4000km 떨어진 남대서양의 작은 섬이다. 거기 아르헨티나군이 상륙하자 대처는 “이역만리에 있지만 그 땅은 우리 땅이다.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공격은 영국 본토 공격과 같다”고 잘라 말했다. 절친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영국의 역공 중단을 권유하자 “알래스카가 적에게 침공당했고, 탈환을 위해 미국민이 나섰어요. 그런데 누군가 협상을 제안했다면 당신도 이걸 수용하진 않을 겁니다” 하고 되받았다. 대처는 영국군이 사상자를 내며 밀리고 있을 때 “난 그들에게 말할 거예요. 포클랜드에서 헛되이 숨진 대영제국 군인은 아무도 없다고!”라고 외쳤다. 지금은 아르헨티나 여성 대통령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영국은 식민주의를 끝내고 포클랜드 섬을 반환하라”고 외교공세를 펴고 있다.



대처 이전엔 1969∼74년 이스라엘 총리였던 골다 메이어가 ‘철의 여인’으로 불렸다. 그는 이스라엘 건국의 주역이자 국권 수호의 영웅으로 남았다. 메이어는 중동문제의 외교를 통한 평화적 해결에 노력했지만 이스라엘 주권과 영토를 겨눈 위협에는 단호했다. 그는 1973년 10월 이집트와 시리아의 기습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4차 중동전쟁의 초기 열세를 골란고원 대혈투를 통해 뒤집는 데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과 세계에 교훈도 남겼다. 정보야말로 ‘안보의 야전(野戰) 중 야전’임을 실감케 했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비밀정보기관 ‘모사드’가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전쟁 계획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음에도 이스라엘군 수뇌부는 사다트의 전쟁 도발 가능성을 믿지 않는 오판을 했던 것이다. 0\"







지금 세계에는 여성 지도자 20여 명이 활약하고 있다. 글로벌 영향력 1위의 여성 지도자는 단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다. 그는 2005년 집권 이래 독일경제 부활과 유럽경제 위기 진화에 리더십을 발휘해 ‘독일의 철의 여인’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메르켈도 평시의 지도자다. 독일은 냉전과 동서 분단을 극복하고 이미 1990년 통일을 이루었다. 유럽에선 전쟁의 그림자도 사라졌다. 세계의 다른 여성 지도자 대부분도 안보 위협 앞에 직면해있지는 않다. 그러나 박근혜 대한민국 18대 대통령 당선인은 ‘비상시(非常時) 지도자’의 숙명을 헤쳐 나가야 한다.



남북한은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다. 북은 핵과 미사일과 군사적 도발을 포함한 비정상 수단으로 살아남으려 할 뿐, 정상 국가로의 자발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김일성의 딸 김경희는 세습 3대 김정은과 공동권력으로 박 당선인을 시험하려 한다. 김씨 일가는 내부 불안정 때문에 당분간 위장 평화공세를 펴겠지만 총구를 내려놓을 리 없다. 북한-중국 동맹은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정치적 야심과도 결부돼 한미 동맹 이완의 틈새를 응시할 것이다. 중국이 북한체제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고,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 불성실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한미 동맹은 ‘예정을 바꾸지 않는다면’ 박 당선인 취임 33개월 뒤인 2015년 12월 1일 전시작전통제권 한국 이양 및 한미연합사 해체로 ‘낮은 단계화’한다. ‘더없이 좋은 한미관계’는 동상이몽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안보 공짜의식과 위기 대응을 발목 잡는 종북적 국론분열 책동이 상존한다. 일본의 독도 망집(妄執)과 군사력 현실화 시도 또한 만만찮은 풍운을 예고한다. 어느 의미에서 대한민국은 사방이 안전하지 않다.



설혹 국가 안전에 결정적 위협을 받지 않고 금후 5년을 넘긴다 하더라도 현상유지에 눌러앉으면 자유통일의 길은 더 아득해질 것이다. 섣부른 통일론도 경계해야 하지만, 차기 정부가 자유통일의 기틀을 다지지 못하면 중국이 한반도 운명의 열쇠를 쥐는 날을 앞당길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평시가 아니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비상시다. 박 당선인은 비상시의 지도자로 동아시아의 ‘아이언 레이디’가 될 것인가. 박 당선인의 지도자 의식 속에는 메르켈도, 대처도, 메이어도 뛰어넘을 ‘철의 의지’가 자리 잡고 있을까.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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