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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10.10] 문재인과 ‘흥남 철수의 영웅’ 현봉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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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757회 작성일 2012-10-1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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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수석논설위원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양친은 함경남도의 항구도시인 흥남에서 대대로 살아오다가 6·25전쟁 중인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때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했다.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그의 부친은 북한 당국으로부터 공산당 입당을 강요받았으나 끝까지 버티고 안 했다고 한다. 남한으로 내려온 그의 부모는 거제도에서 피란 생활을 시작했다.



진영논리에 恩人 고마움 외면



흥남 철수는 6·25에 참전한 미군이 북한으로 진격했다가 중공군 개입 이후 전세가 불리해지자 1950년 12월 12일부터 24일까지 미군과 국군 병력 10만 명을 후퇴시킨 작전이다. 당초 미군은 북한 피란민들을 수송할 계획이 없었다. 영하 20도의 혹한에다 코앞까지 들이닥친 중공군의 공세 속에서 10만 병력을 옮기는 일만도 버겁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전을 지휘한 미군 10군단 사령관 에드워드 알먼드의 옆에는 한국인 통역 현봉학(1922∼2007)이 있었다.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한 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막 귀국한 28세의 젊은 의사였다.







그는 알먼드 사령관에게 북한 주민을 함께 데려가 달라고 요청했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알먼드는 현봉학의 간곡한 제의를 받아들였다. 일본과 부산에 수소문해 11척의 배를 불러왔다.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 24일 마지막으로 흥남 부두를 출발한 배는 미국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였다. 2000명 이상은 탈 수 없다던 이 배에는 1만4000명의 피란민이 가득 탑승했다. 미군은 군수물자를 포기하고 그 자리에 피란민을 태웠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훗날 ‘기적의 배’로 불렸다. 이렇게 남한으로 내려간 북한 피란민은 9만8000명에 달했고 그 안에는 문 후보의 부모도 들어 있었다.



문 후보는 1952년 피란지 거제도에서 태어났다. 미군의 흥남 철수라는 역사적 사건, 현봉학과 알먼드 같은 인물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유력한 대통령 후보에까지 오른 그의 존재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문 후보 자신의 가족사에 대한 기억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문 후보가 자신의 인생을 기록한 책 ‘운명’에는 6·25 때 피란민들을 잘 대해준 거제도 주민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는 말은 여러 번 나오지만 부모를 구해준 미군에 감사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정작 피란민들은 미군이 자신들을 어디로 데려가는지도 몰랐다’며 은근히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외가 쪽 친척들이 아무도 남한으로 내려오지 못했는데 미군이 흥남으로 들어오는 다리를 막아 그렇게 됐다고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통합 말하면서 ‘편 가르기’ 행보



문 후보가 노무현 정부의 실세로 있었던 2005년 5월에 거제도 피란민들은 자신들이 처음 정착했던 곳에 ‘흥남 철수 작전 기념비’를 세워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기념비에는 ‘흥남 철수는 세계전쟁사에서 가장 인도주의적인 작전이었다’고 적혀 있다. 현봉학 알먼드 등의 이름과 업적도 기념비에 새겨졌다.



문 후보가 다른 피란민들과 달리 까칠한 기억을 드러내는 속내를 정확히 알 길은 없다. 그러나 그가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부상한 이후 행보를 보면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문 후보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에는 가지 않았다. 나중에 “권위주의 시절의 정치세력이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한다면 참배하겠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기준이 모호한 데다 단기간에 충족되기는 힘든 조건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지난해 10월 “세상에 무슨 이런 조약이 다 있나”라며 한미 FTA 협상단을 향해 “친미를 넘어 숭미, 종미라고 할 정도”라고 성토했다.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 친미와 반미를 명확히 구분해온 야권의 진영논리와 ‘편 가르기’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문 후보는 2일 “대통령에 당선되면 참여정부에서 다하지 못한 과거사 정리를 마무리하겠다”고 공언했다. 노무현 정부의 집권 5년 동안 8000건의 과거사를 정리하면서 우리 사회를 이편저편으로 갈라놓았던 일을 다시 벌이겠다는 얘기다. 4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직후 “참여정부 때 한미 FTA의 선결조건으로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는 문제 때문에 영화계와 갈등을 초래했다”면서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던 영화인들이 무척 난처했을 것”이라며 사과한 것에서도 ‘반미 코드’와 함께 영화계의 진보 세력을 향한 손짓이 느껴진다. 그는 지난주 “진보 보수의 편 가르기에서 벗어나 국민통합을 이루겠다”고 말했으나 실제 행동과 큰 거리가 있다. 만약 당선될 경우 ‘반쪽 대통령’의 그림자가 벌써부터 어른거린다.



문 후보는 경쟁자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5·16과 유신에 대한 역사인식을 비판했다. 국민은 문 후보의 6·25 등 현대사 인식과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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