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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칼럼/10.21] 전쟁과 외환위기,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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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675회 작성일 2011-10-24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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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논설주간

외환위기 오면 실업자·빈곤층 늘어나면서 정권 흔들리는데

변변한 통화동맹 하나 없어 위기 때마다 정부 허둥대

정치지도자부터 공부해 금융의 시대 꿰뚫어봐야


1997년 1차 외환위기 때 한국이 국가부도를 막으려고 급하게 빌려다 쓴 돈은 모두 302억달러였다. 많은 사람들이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갖다 쓴 구제금융 195억달러만 기억하지만 세계은행(IBRD)에서 70억달러,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37억달러를 더 빌렸다. 2008년 2차 외환위기 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서 빌려온 급전(急錢)은 410억달러였다. 1차 때는 44개월 만에 원리금을 상환했고, 2차 때는 15개월 만에 깨끗이 갚았다.



그전에도 달러가 없어 쩔쩔매던 시절이 있었다. 1차와 2차 석유파동 후에는 수입대금을 결제할 돈조차 부족해 국무총리와 외교부 장관까지 나서 구걸하다시피 했었다. 그러나 1997년과 2008년의 외환쇼크가 한국경제사(史)에 공식 기록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1996년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으로 가입한 후에 벌어진 파동이기 때문이다. 선진국 행세를 하려다가 두 번 다 외국자본의 공격에 무너지고 말았다.



한국이 연달아 패퇴한 배경에는 외환거래나 환율을 경제문제로만 생각하는 정치지도자들의 잘못된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위기 전 징조나 방어체제 구축 필요성 등 어느 것을 보더라도 외환파동은 군사적 전쟁과 다를 게 없다. 위기 후의 참상(慘狀)은 더욱 그렇다. 어느 나라든 외환파동을 겪고 나면 실업자가 늘고 빈곤층이 커진다. 계층 간 갈등이 폭발하면서 정권교체가 거의 100% 이루어진다는 게 IMF 분석이다.



\'외환전쟁\'에 응전(應戰)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아르헨티나는 2002년 외환파동 때 예금인출 소동으로 모든 은행이 문을 닫았다. 견디다 못해 외채 상환 중단(디폴트)을 선언했고, 결국 30% 안팎만 갚는 선에서 끝났다. 러시아도 1998년 외채를 못 갚겠다고 드러누워버려 서방 은행들은 원리금을 절반 정도 챙기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런 불량국가들에 비하면 한국은 모범생이다. 원금과 이자를 짧은 기간 내에 다 갚았다. 그들이 탕감해 주지도 않았거니와 우리도 한 푼도 떼어먹지 않았다.



우량고객에게는 돈을 더 갖다 쓰라고 강권하는 게 금융회사들의 마케팅 전략이다. 온 국민이 나서서 금 모으기까지 해가면서 빚을 갚은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외국자본들은 틈만 나면 한국으로 달려와 돈을 더 쓰라고 판촉활동을 벌인다. 그래서 우리 외채는 줄곧 늘어나고, 금융위기가 닥치면 그들은 한국에서 달러를 빼내가곤 하는 것이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한국은행일본은행 간에 700억달러 통화교환(SWAP)에 합의했다. 미국과 필요할 때 달러 유동성을 지원받기로 합의한 것도 좋은 소식이다. 덕분에 3차 외환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20% 이하로 뚝 떨어졌다.



그런데도 환율은 안정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미덥지 않은 구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책대응이 늦어지는 정권말기인 데다, 경제팀이 약체(弱體)이고, 권력 상층부의 금융에 대한 이해와 식견이 높지 않다고 시장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경제에 무식했던 대통령이나, \"경제 좀 안다\"던 대통령이나, \'경제대통령\'을 표방한 대통령이나 똑같이 금융위기에 무능하다는 것을 시장은 알고 있다.



통화교환 협정만 해도 OECD에 가입할 때부터 시도했어야 했다. 당시 외환시장을 너무 빨리 개방하는 게 아닌가 걱정하면서도 통화동맹(同盟)이라는 안전장치를 만들지 않았다. 그때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고 치자. 그 후 두 번 쓴맛을 보고 나서도 역대 정권들은 그대로 지나쳤다.



영국·프랑스·독일·스위스는 1962년에, 일본은 1973년에 처음 미국과 통화교환 협정을 맺었다. 미국은 그 후 2001년 9·11 테러나 금융위기가 오면 이들 선진국과는 통화협정을 자동적으로 재가동해왔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엔 허둥지둥 쫓아가 매달려야만 문을 조금 열어주는 사이로 지내고 있다. 북한이 침공하면 미군이 자동개입하는 안보동맹처럼 서울에 외환위기가 닥치면 미국이 자동개입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통화동맹 구축보다 더 절박한 것은 정치지도자들이 금융과 외환을 공부하는 일이다. 반도체 공장 몇 번 시찰한 경험으로 경제대통령 다 된 듯 뽐내는 정치인은 자격미달이다. 전 세계에서는 하루에 거래되는 상품 무역 금액보다 10배, 20배 많은 돈이 금융부문에서 오간다. 돈과 돈이 싸우고, 돈이 실물경제를 지배하는 금융의 시대다. 이걸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인물이 또다시 대통령에 뽑히면 우리의 외환위기는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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