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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시론/6.29] 제대로 분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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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547회 작성일 2011-06-2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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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논설위원



“한달 되어 의식을 찾은 내 아들. 파편 때문에 대장은 망가졌고, 소장은 일곱 군데 꿰맸다. 척추 왼쪽에 큰 파편이 있고, 오른쪽 어깨에 총알이, 배속에는 파편 조각 100개가 더 있다고 한다. 다리가 없는 걸 알았는지 왼손으로 엉덩이 쪽을 만지며 흐느낀다. ‘엄마 내다리 어디 갔어? 잠에서 깼더니 없어졌다.’”



9년 전인 2002년 6월29일 제2연평해전에서 중상을 당한 박동혁 병장의 어머니 이경진씨가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아버지 박남준씨는 84일째 되던 9월20일 “우리 애를 더는 힘들게 하지 말라”며 심폐소생술을 재시도하려는 의사를 만류하고, 그나마 성한 아들의 코에 입을 맞추며 박 병장을 보냈다. 시신에서 3㎏이 넘는 쇳조각이 나왔다. 윤영하 소령,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는 교전 현장에서 전사했고, 키를 놓지 않았던 한상국 중사는 참수리357호 인양 때 숨진 채 발견됐다. 6·25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이 “1인치의 땅도 그저 얻어진 것은 없다”고 했듯이, 서해 북방한계선(NLL)도 이렇게 해서 지켜지고 있다.



대한민국 영해와 해군 함정이 공격 당했음에도 군통수권자인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그날 저녁 월드컵 3·4위전을 보며 환호했고, 다음날 결승전 관람을 위해 일본으로 갔다. 미국과 일본이 한국 안보상황을 더 걱정했다. 7월1일 열린 현장 전사자 4명의 합동영결식에 대통령과 김동신 당시 국방장관은 물론, 한 사람의 국무위원도 참석하지 않았다. 2003년 새해가 되자 주한미군사령관은 유가족들에게 위로 편지를 보냈지만, 김대중 정부에서는 전화 한 통화 없었다. 제2연평해전은 김 전 대통령의 ‘선제사격 금지’지시, 이것을 이용한 북한군의 의도적 NLL 침범과 기습 전술의 합작품이었다. 그 뒤 국가정보원기조실장 내정자는 ‘서해교전’에는 김정일의 책임이 없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군복무에 대해 “썩는다”고 했고,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은 “NLL은 영토개념이 아니다” “서해교전은 반성해 볼 과제”라고까지 했다. 어느 나라의 대통령·장관들인지 의심스럽다.



1999년 제1연평해전 대승을 이끌었던 박정성 제2함대사령관은 ‘슬기롭게 대처하라’는 지시를 못지킨 셈이 되어 좌천됐고, 제2연평해전 당시 정병칠 사령관(2009년 6월19일 별세)도 ‘격파사격’을 명령했다는 이유 등으로 한때 보직 해임 조치를 받았다. 그럼에도 김대중 자서전은 제1연평해전 승리를 자신의 공으로 자화자찬하고, 제2연평해전은 해군의 대응 잘못으로 왜곡하고 있다. 참수리 6용사, 천안함 46용사의 고귀한 희생을 모독하는 대북(對北) 저자세·편들기 행태와 거짓 주장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서점가에서는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라는 책이 화제다. 제목이 단순명쾌하고 소책자인데다, 현재 94세인 저자가 레지스탕스 활동과 체포, 극적인 탈출, 유엔 인권선언문 작성 참여, 프랑스 사회당 입당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어서 좌파 진영에서 특히 관심이 많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동문’이라고 자처한 추천사를 통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상황에 분노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가 진정으로 앞세운 주장은 인권과 자유·평등·박애 등 보편적 가치를 위해 분노하라는 것이다.



제2연평해전의 교훈은 분명하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자유민주주의를 선호한다면 김정일 정권의 반(反)인류적 범죄에 우선 분노해야 한다. 프랑스는 사회당 정권 시절에도 반인권을 이유로 북한과의 수교를 거부했고, 지금도 유럽의 다른 여러 나라들과는 달리 수교하지 않고 있다. 그 다음에는 친북·종북주의를 앞세우며 한사코 대한민국을 폄훼하는 세력에 분노해야 한다. 안보 파괴세력, 안보 포퓰리즘에 분노해야 한다. 수많은 사람의 피땀으로 60여 년 동안 이뤄낸 성취에 기생하면서 아들딸 세대에 엄청난 빚을 물려줄 ‘퍼먹기 포퓰리즘’에 분노해야 한다. 국내정치적 입장 차이에 따른 분노는 그 다음이다. 큰 분노는 외면하고, 작은 분노만 앞세운다면 위선이다. 제대로 분노하는 국민이라야 선진국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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